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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동그라미

12,000

품절

저자 박수진
출판사 시옷과 리을 사이
판형 110mm x 180mm
페이지 206쪽
카테고리 문학
출판연도 2023
책 소개

사사로운 일상을 기록하고
수더분히 살아가는 힘

동그라미를 잘 그리는 데만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 그려놓은 행복을 종이에 옮겨 적으며 나도 그 비스무리한 걸 잘 그리고 있다 착각했다. 누군가에게는 그 크기가 작을 수도, 누군가에게는 그 모양이 네모날 수도 있다. 거기에 묻어있는 사연들에 뼛속 깊이 닿을 수도 그 마음을 온전하게 만져볼 수도 없다. 인스턴트처럼 넘쳐나는 위로들을 따라서 붙들고 버텨본다 한들, 거기에 쓰인 건 내 삶이 아니었다. 지금 내 안에 그려진 그것은 어떤 모양인지, 얼마만큼의 크기인지 들여다본다. 들여다보고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적어도 나만은 나의 동그라미를 그렇게 여길 수 있기를. — 본문 중에서

제주로 도망 온 지 일 년이 지났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나를 갖다 놓고 싶었습니다. 육지에서 살 적에 기록했던 일상을 모아 정리하며, 그때는 세모라고 생각했던 기록들이 제법 괜찮은 동그라미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동그라미들을 매만지고 정리하며 부쩍 다시 살아갈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잘 지내려 부단히 애썼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지냈던 날들이 담겨있습니다. 한데 엮어둠으로써 또 언젠가의 나를, 어쩌면 누군가를 일으키는데 손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를 아프게 한 것들을 천천히, 티끌 만큼씩 밀어내고 있습니다. 살던 대로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관성을 뿌리치기 쉽지 않지만,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 가려 움직이고 있습니다. 쉽게 기대하지 않고 굳이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려니. 최면 같지만 마법의 주문이라고 해두고요. 조금 씁쓸하지만 나도 좀 살고 싶었습니다. 다시 살아가야 하니까요. 연연하지 않고 이제 일인용의 동그라미 안에서 대체로 ‘나’일 수 있는 법을 다시금 연습하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대체로 동그라미인 순간들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