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나는 믿지 않았다.

by 김태춘

눈을 뜨고 방문을 연다. 예상대로 깨진 그릇과 접시들이 차가운 음식들과 뒤섞여서 널브러져 있다. 군데군데 담뱃불 눌린 누런 비닐 장판 위로 알람시계와 전화기가 박살이 나 있다. 텔레비전은 멀쩡하다. 엄마는 어두컴컴한 소마구 한구석에 다리가 부러진 송아지처럼 웅크리고 있다. 나는 한동안 문지방을 밟고 서서 어젯밤의 파편들과 얼굴까지 덮인 엄마의 이불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집어 들고 현관문을 나선다. 낡은 계단에는 화초와 분재들이 빼곡하고 그 위로 올려다보는 하늘은 참 맑고 푸르다. 이제는 쌀쌀해져서 아침 공기가 콧속을 할퀴면서 지나간다. 주택들이 빼곡한 골목을 빠져나가 동사무소, 새마을금고를 지나 붉은색 벽돌로 된 슈퍼 앞 건널목에서 멈춰서서 신호등을 뚫어지게 본다. 거기는 두 개의 큰 도로가 겹치는 곳이라 항상 긴 신호를 기다려야 하고 파란불은 유난히 짧아 발을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나는 주유소를 지나서 나오는 두 갈래 길에서 잠시 고민한다. 가끔은 둘 중의 하나를 고르는 일이 다섯 중의 하나를 고르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은 하천을 따라 간다. 하천은 물이 말라 누런 잡초들만 길게 자라있는 지저분한 웅덩이뿐이다. 반대편에는 개척교회 건물을 중심으로 남루한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다. 하천을 건너니 그늘진 학교 건물의 뒤통수가 보인다. 이른 시간인지 파리 떼처럼 애들이 꼬여있을 문방구 앞도 조용하고 모자를 쓴 고물상 아저씨만 외팔로 고물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정직, 근면, 성실. 정문을 지나 살구색 학교 건물로 향한다. 별로 깨끗하지 못한 실내화를 바닥에 툭 던져 신고 칠이 벗겨진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간다. 4층 복도 왼쪽 끝에 교실 앞문을 열어젖힌다. 교실엔 아직 아무도 없다. 낙서 가득한 책상에 가방을 걸고 걸상에 앉는다. 별의별 욕지거리에 외설스러운 그림들이 원한 맺힌 듯 책상 구석마다 깊게 새겨져 있다. 기둥에 걸린 시계를 보니 아직 여덟 시밖에 안됐고 황량한 운동장 너머엔 아까 끌고 다니던 고물들을 쌓는 외팔이 아저씨뿐이다. 나는 부연 칠판 앞에 서서 손가락으로 욕이나 애들 별명을 써보기도 하고 칠판지우개 옆에 놓인 하얀색, 분홍색, 파란색 분필을 상자에서 꺼내어 하나씩 분질러 보기도 한다. 창가 옆 선생님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일기장 하나를 집어 든다. 교단에 걸터앉아 일기장 맨 앞에 무지개를 밟고 별을 향해 달려가는 하얀 유니콘 그림을 잠시 바라본다. 손에 집히는 대로 일기장을 이리저리 넘겨보다가 사이에 깔린 내 일기장을 발견한다. 모든 일기의 끝머리엔 빨간색 동그라미 속에 ‘검’이라는 글자가 형식적으로 찍혀 있다. 오늘은 날씨가 어땠다느니, 무슨 책을 읽었다느니, 오늘은 엄마가 해준 반찬을 가족들과 맛있게 먹었다느니, 참 즐거웠다거나, 참 보람찼다거나, 참 좋았다로 끝나는 내 일기장엔 어거지로 지어낸 얘기들만 가득하다. 일기장을 덮고 고개를 들어 하나씩 둘씩 요란하게 학교에 오는 애들을 본다. 언뜻 보면 여기저기 흩어져 제멋대로 오는듯해도 입구에 와서는 정해진 길을 따라 아주 질서 있게 줄지어 들어온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1층 화단으로 침을 뱉는다. 침은 나의 기대와는 달리 순식간에 나뭇잎 사이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애들이 교실로 들어와 하나둘 자기 자리에 앉는다. 수업을 알리는 단조로운 음악 소리가 텅 빈 운동장에 울리고 파란 양복을 입은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들어온다. 차렷, 경례. 선생님은 오늘도 무표정한 얼굴로 애들을 내려다보며 수업을 시작한다. 수업은 마치 삼등열차처럼 정해진 궤도를 느리고 따분하게 지나가고 이름 모를 역에 정차할 때마다 책상 위에 교과서와 공책만 바뀐다. 나는 잎이 다 떨어진 커다란 나무의 잔가지 사이를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참새 같은 애들 뒤통수를 바라보며 아까 훔쳐봤던 일기를 떠올린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 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풍선에 물을 채워 교실과 복도에서 서로 던지고 피한다. 바닥은 터진 풍선조각과 물로 젖고 선생님은 화난 표정으로 나와 애들을 불러 세워 꾸중한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무섭지가 않다. 선생님도 내가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에게 더 소리친다. 작은 체구에 퀭한 눈을 가졌지만 아직은 젊고 짙은 곱슬머리를 예쁘게 넘긴 가엾은 선생님. 청소가 끝나고 다른 애들이 집에 간 후에도 나는 남아 순순히 바닥에 쪼그려 복도 마루를 걸레로 닦고 왁스 칠을 한다. 선생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복도의 반을 다 칠했을 때야 선생님이 나머지는 내일 하라고 한다. 교실로 들어가 책가방을 메고 창문 밖을 보니 몇몇이 종이 글라이더를 날린다. 한 계단 한 계단씩 밟으며,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내려간다. 쿵, 쿵, 쿵, 쿵.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 소리가 텅 빈 복도를 돌아 나에게 되돌아온다. 학교를 나와 정문 앞에서 백 원을 내고 콩콩을 탄다. 나는 있는 힘껏 두껍게 직조된 녹색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곤두박질칠 때마다 삐걱대는 스프링에 끼이는 상상을 하면서도 위로 쳐오르는 순간 그런 건 다 잊어버리고 더 힘껏 나를 아래로 내동댕이친다. 시간은 금방 가고 가방에 묻은 흙을 털고 신발을 구겨 신고 주춤거리며 걷는다.
집으로 갈 때는 철길 쪽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학교 앞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생각해 보니 학교와 이 길을 경계로 난 혼자 이 이상을 넘어 더 멀리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길을 건너 주산학원 건물이 있는 작은 길로 들어간다. 연립 주택과 2층짜리 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이 길은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고 길옆에 군데군데 서 있는 자가용들과 트럭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나는 주위를 살피다가 날렵하게 생긴 자가용 뒤로 가서 마크가 그려진 트렁크 열쇠 덮개를 손으로 꺾어서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넣는다. 주머니 속에 덮개가 따뜻하다. 길 끝에는 교회가 있다. 딱 한 번 애들을 따라서 교회에 간 적이 있는데 목사님의 설교 따위는 전혀 기억나지 않고 거기서 줬던 육개장에 밥을 말아 먹고 온 것만 기억이 난다. 왜인지 그전에 나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빵만 먹는다고 생각했다. 교회 앞에서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을 건너고 얕은 언덕을 오르면 철길이 나온다. 철길을 받치고 있는 나무는 간격이 한 개씩 딛기에는 너무 좁고 두 개씩 딛기에는 너무 버거워서 종종걸음으로 하나씩 딛다가 다리를 최대한 뻗어 큰 걸음으로 딛기를 반복한다. 몇 번을 그러다가 이번엔 좁은 선로 위에 발을 디디고 써커스 단원처럼 양팔을 뻗어 중심을 잡아보지만 몇 걸음 못 가서 발을 헛디디고 넘어진다. 작년에 키우던 병아리가 죽어서 여기 어디 묻었는데 지금은 어딘지 찾을 수가 없다.
철길을 따라 동네를 도는 것도 지쳐서 결국엔 집으로 향한다. 주머니 속에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어두워진 골목길을 걷는다. 철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연다. 문을 여니 집이 조용하다. 신발을 조심스럽게 벗고 가방을 내려놓는다. 깨지고 부서진 것들은 다 자취를 감췄고 엄마는 눈이 부은 채로 누워있다. 나는 소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텔레비전을 튼다. 어디를 틀어도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하얀색으로 꿈틀거리는 아지랑이뿐이다. 텔레비전을 끄고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밑에 누워 지난번에 적어 놨던 유행가 가사를 펼쳐 나지막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내일을 향해서라면 과거는 필요 없지. 힘들은 나의 일기도 내일을 향해서라면. 내일을 향해서라면. 내일을 향해서라면. 밖에서 희미하게 계단을 밟고 오르는 느리고 묵직한 소리가 들린다. 현관으로 가서 아빠한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나는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아무 데나 펼치고 오른쪽 끝 모서리부터 검정 볼펜으로 칠을 한다. 칠할수록 하얀 종이 위에 글자들은 까만 바탕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간다.
문밖에서 테레비를 켜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밥 먹으러 나오라고 한다. 귀퉁이에 칠이 벗겨진 검붉은 상 위에 밥과 반찬, 숟가락, 젓가락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아빠는 별말 없이 텔레비전을 보며 밥을 뜬다. 나도 숟가락을 들고 밥을 씹어 삼킨다. 저녁 뉴스가 끝나고 광고 몇 개가 지나가더니 테레비 화면이 잡음과 함께 뒤엉킨다.

작아서 좋다! 강해서 좋다! 삼성카메라 퍼지 줌 슬림….. 쬐끄만게 쫙 당기네! 노래방 기계가 우리 집에 왔다고?? 가정용 노래영상연주기 아싸…. 영상, 가사, 음악이 버튼 하나로! 이게 바로 사는 재미 아니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당신의 이름은 아내입니다.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소중한 아내처럼 커피엔 언제나 프리마…… 비바처럼 올록볼록 재미나게 삽니다…… 대우자동차 서비스 받아 보셨습니까? 24시간 철야 서비스, 이제 저녁에 맡기고 아침에 찾아가십시오…… 남자는 남에게는 따뜻하고 자신에게는 차가워야 하는 거야. 가슴이 넒은 남자들, 결론은 버킹검…… 어릴 때 저는 잠시도 가만히 못 있었그든요. 어느 날인가 아버지께서 드럼을 사주시더군요. 그래, 한번 해봐라. 언제나 리바이스 정통 진….. 엄마요? 멋진 분이죠. 저는 엄마 정말 좋아해요. 언제나 리바이스 정통 진….. 난 나를 알아요. 그게 제 장점이죠. 통화자유! 행동자유! 금성통신 셀스타…… 잘 걸리고 잘 들립니다. 두뇌가 우리의 자원, 큐닉스 컴퓨터….. 단 한 번 여자의 마음이 열릴 때. 멋진 남자, 멋진 가구. 라자가구……

아빠는 테레비를 두드리며 브이자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린다. 테레비 옆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새 전화기가 침착하게 놓여 있다. 세련되게 각진 수화기와 절도 있게 뻗은 무선 안테나, 은은한 회색 몸체는 막 비닐을 떼서 기스 하나 없이 번들거린다. 얼마 못 가서 저 전화기도 산산조각이 나겠지. 그러고는 더 최신 전화기가 저 자리를 차지하고 또다시 부서질 테지. 이윽고 테레비는 잡음을 멈추고 일일연속극의 시작을 알리는 4분의 2박자 노래가 깔린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