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형 | 131mm x 203mm |
페이지 | 288쪽 |
카테고리 | 비문학 |
출판연도 | 2023 |
노동자들은 오늘도 길게 줄을 선다. 미증유의 그 줄은 내 생을 지탱하는 하루짜리 동아줄이다. 내 앞에 선 노동자에게서 어느 이름 모를 가장의 등을 본다.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어떤 아픔을 안고 있는지 모르지만, 열심히 살아가려는 한 소시민이 무거운 등짐을 짊어진 듯하다. 내 뒤의 노동자는 나의 등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사막의 쌍봉낙타를 닮았다고 여길까, 차마고도의 야크와 닮았다고 여길까. 우리의 등은 오로지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만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가족의 건사를 짊어진 채 비탈길에서 아슬아슬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람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가여워 보이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앞사람의 등을 보며 내 등의 모습을 유추한다. 앞사람의 등에서 그의 눈물을 읽고 있는 나처럼 내 뒤에 선 사람도 내 등에서 나의 눈물을 읽을까? 천근만근 무게에 짓눌리고 굽어 있는 등짝을 바라보는 일은 뭉근한 슬픔이자 무거운 절망이다. 긴긴 줄 서기는 이렇듯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등을 보여주는 일,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나의 고단한 삶을 동료가 알아주는 일이다.
30년 가까이 해온 직장 생활이 갑작스러운 조기 퇴직으로 끝나버린 뒤 일용직 아르바이트, 식당 주방보조 등을 전전하며 재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막노동판에 뛰어들어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어느 가장의 이야기.
초고령 사회로 빠르게 진입해가는 오늘날 한국에서 좌충우돌하는 기성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한편, 육체노동의 가치가 폄하되고 노동자의 삶이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에도 ‘땀은 정직하다’는 말을 매일같이 온몸으로 증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동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 책에서는 한겨울에도 막노동꾼의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 냄새, 하루의 피로와 고단함을 씻어내려 들이켜는 소주 한잔의 쓴맛, 그리고 퇴직 후 다시 만져본 인생 2막 첫 월급의 단맛이 모두 느껴진다. 이는 밥벌이의 기쁨과 슬픔, ‘단짠단짠’ 인생의 맛이자 누군가의 부모이며 누군가의 자식인 사람들 모두에게 전하는 희망과 응원이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조기 퇴직을 하게 되신 분.
인생 후반기를 진지하게 고민하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