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은주 외 8인 |
출판사 | 갈무리 |
판형 | 131mm x 188mm |
페이지 | 368쪽 |
카테고리 | 비문학 |
출판연도 | 2024 |
포스트 메트로폴리스는 포스트 모던적 조건을 넘어 인간과 비인간의 혼종적 연결인 포스트 휴먼의 조건으로의 이행이며, 디지털 기술과 매개된 도시이자 새로운 도시 공동체의 형상인 디지털 폴리스로 칭해질 수 있다. 디지털 폴리스는 디지털 매체로 작동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디지털 매체가 되는 도시이다. 이러한 디지털 폴리스의 공간은 사물과 사물이나 인간과 사물의 인터페이스로 기능한다. 디지털 폴리스에서 도시의 삶과 경험, 문제 인식과 해결은 디지털 플랫폼상에서 진행되는 디지털 도시성으로 나타난다.
이 책은 디지털 기술로 인한 인간 존재의 변화와 디지털 도시성의 변화가 어떻게 공동체를 달라지게 했으며, 어떤 공동체가 생겨날 수 있는지에 관한 탐구이다. 동시대 도시에서의 삶이 새로운 기술로 인해 급격히 변화하는 지금-여기에서 도시 인문학의 통섭적 접근은 디지털 폴리스라는 새로운 개념을 둘러싼 다양한 이론적, 학제적, 방법론적 접근과 간학제적 담론을 생산하고 디지털 폴리스의 사회적 결과물들을 인문학적 지평에서 제시하려는 노력이다.
출판사 서평
디지털 폴리스란 무엇인가
‘디지털 폴리스’는 우리 시대 도시의 다양한 면모를 포착하는 용어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네트워크 연결성이 확대되면서 교육, 교통, 정보, 통신 등을 통과하는 기술 매개 경험이 도시의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기술 매개로 인해 도시 공간, 도시 문화, 도시 병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이 인간의 조건에 미친 영향과 도시성 자체의 변화를 포착하는 개념이 디지털 폴리스이다. 이 책은 디지털 폴리스를, 디지털 매체로 작동하고 디지털 매체가 되어가는 도시 공동체와 인터페이스로 제시하면서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의 연결, 경계, 사이를 디지털 폴리스의 측면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코로나19를 거치며 ‘디지털 폴리스’를 경험했다. 예를 들어, 줌 미팅 같은 비디오 커뮤니케이션이 교육, 회의, 비즈니스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화상 소통이 보편화되면서 우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좁혀지는 경험을 했다. 디지털 폴리스의 또 다른 예로는 자전거, 자동차 등의 모빌리티 플랫폼의 대중화와 쇼핑, 음식 주문 등을 실시간으로 가능하게 하는 도시 기반의 온라인 플랫폼 경제의 활성화를 들 수 있다.
디지털 폴리스는 스마트시티 유토피아인가?
디지털 폴리스를 기술만능주의의 낙관과 결합하는 사람들은 ‘효율이 극대화되는 자동화된 스마트 시티의 미래’가 펼쳐지리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스마트 시티와 디지털 폴리스를 동일시할 경우, 도시의 재난과 위험을 조절한다는 명목으로 디지털 기술을 도시 통치술의 도구 장치로만 사용하고, 그로 인해 폐쇄적인 안전을 지향하는 빗장 공동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저자들은 본다. 실제로 디지털 폴리스에서 창출되는 부의 상당 부분은 플랫폼을 소유, 통제하고 데이터를 수집할 권한을 가진 자본과 권력이 가져간다. 스마트시티는 현란한 수사로 포장되지만, 거기에 의존해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주기도 한다. 디지털 폴리스는 과거보다 더 촘촘하게, 삶의 모든 부문과 시간을 통제하면서 더 많은 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며, 소통보다는 고립을 초래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디지털 폴리스에 대한 기술 낙관론은 디지털 기술을 작동시키는 인프라에 관한 논의를 삭제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또한 디지털 기술의 쓸모와 지향이 소위 ’인간‘으로 규정된 근대 문명의 수혜자를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성장을 지향한다는 점도 비판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본다. 디지털 기술을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데이터 센터의 전기 사용 증가와 기후 위기의 관계, 점점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아웃소싱되는 노동, 광물 채취 등이 야기하는 전쟁 등도 낙관론 뒤에 숨겨진 디지털 폴리스의 긴급한 현안들이다. 또 이 책은 트랜스 휴머니즘을 중심으로 주류 과학 담론이 표방하는 기술 낙관론과 근대적 인간중심주의를 유지하려는 시도에 관한 비판적 검토 역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디지털 폴리스 속 공동체의 가능성
이 책의 부제는 “디지털 플랫폼, 유토피아, 공동체”이다. 책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은 민주적이지 않다. 이 책은 디지털 기술이 경제 구조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공동체의 ‘사회 정치적’ 의미를 재가치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과 네트워크 기술의 결합은 친밀성의 관계에서 사회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미래의 인간관계와 공동체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실은 지구 행성이라는 거주지와 도시의 연결성을 이해하면서 생태 위기, 기후 위기를 인식하고, 포스트 휴먼의 관점에서 동시대 도시 공간의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양상을 분석·성찰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 책이 사용하는 유토피아는 기술낙관론에 기반한 유토피아 개념과는 다르다. 이 책은 디지털 폴리스가 인간을 위한 어떤 유토피아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유토피아 개념이 지닌 두 가지 의미인 ‘좋은 곳’(eu-topia)과 ‘없는 곳’(ou-topia)의 의미 모두를 부각하고자 한다. 나아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강화되는 좋은 곳으로서의 유토피아가 누구를 위해 좋은가라고 이 책은 질문한다.
각 장의 내용 소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9명의 필자들이 디지털 폴리스의 다양한 측면들을 분석한 글을 실었다.
1부 ‘디지털 플랫폼과 문화 생산’의 첫 번째 글 「기다리는 시간 제거하기 : 자동화된 노동의 가시성, 시간성, 취약성」(채석진)은 음식 배달 앱 경제 속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어떻게 가치 창출을 위해 재조립되며, 삶의 취약성이 심화하고 있는지 기술한다. 채석진은 ‘음식 배달 앱 이동 노동’ 현장 연구에 기반해, 플랫폼 경제의 작동을 ‘시간 줄이기’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 「매개된 유토피아와 진정성의 탐색 : 귀촌 브이로그를 통해 본 청년의 삶-노동 에토스」(홍남희)는 동시대 청년들의 귀촌 브이로그를 분석하면서 청년의 귀촌과 그것의 중계가 갖는 의미를 탐색한다. 이 글에 따르면 청년의 귀촌은 당대의 도시성 및 매체성의 변화와 결부되는 사회적 현상이다. 「가상 세계 대 ‘현생’, 혹은 다중 세계를 횡단하기 : 〈내언니전지현과 나〉와 유저들의 생존기」(배주연)는 “국내 최초 유저 제작 게임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구현하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관계를 살핀다. 또 디지털 장소로서 가상 세계가 갖는 의미, 장소 상실에 대처하는 유저들의 행위, 현실 세계 및 가상 세계와 관계 맺는 오늘날의 주체의 문제, ‘기술사회적 매개’로서의 동시대 도시 등을 살펴본다.
2부 ‘유토피아 이후의 “유토피아”와 재현’을 여는 첫 번째 글 「진보 없는 시대의 유토피아 : 타임루프 장르의 서사학적·기술문화적 맥락과 이데올로기 연구」(유인혁)는 한국 타임루프 장르의 문화적 의미에 착목한다. 저자는 이 형식이 탈근대적 조건의 시공간을 재현하고 있으며, 진보로 대표되는 근대적 시간관·역사관을 부정하는 측면이 있음을 논증한다. 「인류세 시대의 유스토피아와 사이보그-‘되기’ : 『지구 끝의 온실』을 중심으로」(이양숙)는 김초엽의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분석한다. 이양숙은 이 소설이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인간 중심적 과학의 사용으로 빚어진 행성적 기후 위기를 전제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중화미래주의, 디지털 유토피아와 테크노 오리엔탈리즘 사이에서」(김태연)는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중국의 이미지가 한편에서는 디지털 유토피아로, 다른 한편 서구에 의해서는 디지털 디스토피아로 그려지고 있는 현실을 진단한다. 저자는 이러한 상반된 견해를 ‘테크노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시각 속에서 점검한 뒤, 중국의 미래 담론 중에서 ‘중화미래주의’라는 개념을 탐구한다.
3부 ‘디지털 폴리스 그리고 공동체’의 첫 번째 글 「디지털 시대의 혐오 : 자아상실의 공포와 상상계적 봉합」(이현재)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두려운 낯섦”,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비체” 그리고 자끄 라캉의 “거울단계”를 분석하고 연결한다. 그러면서 혐오가 자아상실의 공포를 상상계적으로 봉합하는 가운데 행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기후 위기 시대의 인공지능 : 한국 SF에 나타난 AI와 기후 위기의 서사」(노대원)는 기후 위기와 AI의 문제를 함께 다룬 한국 SF 서사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 글은 세계에 대한 파국과 구원의 서사를 상상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기후 위기와 AI 서사의 강력한 서사적, 수사적 힘(효과)을 긍정한다. 「사물들의 플랫폼으로서의 디지털 폴리스와 블랙박스를 펼치는 사물의 정치」(김은주)는 인류세를 근대성의 산물로 이해하고 이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근대성이 상정한 선형적 역사의 발전상인 기술 유토피아라는 상에서 벗어난 디지털 폴리스의 상을 모색한다.
이 책은 2021년에 출간된 『포스트휴머니즘의 쟁점들』, 『디지털 포스트휴먼의 조건』에 이어 도서출판 갈무리와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의 협력으로 탄생한 세 번째 책이다. 2021년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은 인간중심주의 이후의 ‘인간’을 둘러싼 ‘포스트’ 시대의 다양한 쟁점들을 조망하고, 디지털 기술이 야기한 포스트휴먼의 조건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번에 출간되는 『디지털 폴리스』는 두 총서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으면서, 디지털 기술에 의해 그 자체로 매체가 되어가는 도시 공간과 도시 공동체의 측면에서 인간중심주의 이후의 ‘인간’ 그리고 이러한 인간이 비인간과 맺는 관계에 관해 확장된 사유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