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일두 외 5인 |
출판사 | 글항아리 |
판형 | 111mm x 176mm |
페이지 | 200쪽 |
카테고리 | 문학 |
출판연도 | 2024 |
미루고 피해왔던 권태, 고독, 불안 그리고 해방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
누군가에겐 일상, 누군가에겐 비일상인 ‘그 밤’에 바치는 여섯 개의 진담
밤夜과 연관되는 단어를 떠올릴 때 술은 과연 앞줄에 놓인다. 이는 술을 마시는 이에게도 마시지 않는 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시는 이에게는 역시나 그 밤에는 술이 꼭 알맞기에 중요하고, 마시지 않는 이에게는 술을 멀리하거나 거부해온 장구하고도 지겨운 지난날을 상기시키기에 중요하다. 삶의 유희를 논하는 책을 들춰볼 때도, 맛을 논하는 유튜브 영상을 시청할 때도 술, 그리고 밤은 따로 떨어지지 않는다. 술 있는 밤이 구체적일수록 술 없는 밤의 형체는 모호하게만 느껴진다. 굳이 그 밤에 관한 이야기를 불러낸 이유다.
『술 없는 밤』은 작가, 번역가, 싱어송라이터,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6인이 통과한 술 없는 밤을 담고 있다. 이들은 술을 마시기도 하고 마시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려앉는 것. 그들은 매일 당연하게 찾아드는 그 밤 시간을 술이 없거나 있는 상태로 보낸다. 그러다 그 없는 찰나(혹은 일상)에 대한 정념을 붙잡아 글로 적었다. 그리하여 그 밤은 술 마시는 이들에게 자꾸만 안 마시겠다 거절을 놓아야 하는 밤, 술 취한 이들을 맨정신에 챙겨야 하는 밤, 그들의 주정을 보고도 잊어야지 다짐하는 밤, 술이 없어 불안이 증폭되는 밤, 벗어나고 싶은 내 내면으로 자꾸 불려 들어가는 밤이다.
숙취에서 깨어나듯, 짙은 농도의 알코올에서 세척되듯 건져올려진 그 밤에 저자들은 “가끔 눈치도 살핀다. 누군가 나한테 왜 술을 먹지 않느냐고 물을까 봐”라며 토로하고, “불안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럴 때는 늘 최악의 이야기가 쓰이고 만다”라며 울부짖고, “그와 헤어져서 내 방으로 돌아오는 그 길의 컴컴함과 시원한 공기가 내게는 무엇보다 야한 것”이었다 반추한다. 그들의 고난과 역경이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는 우리가 같은 밤, 같은 마음으로 술을 염원하거나 저주한 적이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모순을 안고 있다. 술의 ‘없음’에 집중할수록 ‘있음’이 강렬해지기 때문이다. 서한나는 한 인물과 포장마차에 방문했던 일화를 적으며 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모험과 그 시간의 관능에 대해 적는다. 김선형은 음주는 예부터 도피적 행위였음을, ‘나’와 세계 사이의 인식의 괴리를 잊기 위해 술로 도망친 수많은 예술가를 언급하며 증명한다. 오지은은 술 취한 지인들 주위에 드리워진 ‘알코올 우주’를 보며 그들의 주책맞음, 다정함, 잦은 웃음, 4절까지 이어지는 농담을 사랑한다. 오한기는 시 창작 수업에서 거의 드물게 만취한 뒤 ‘힙합 동아리’를 향해 고했던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일격을 후회한다.
그럼에도 책은 다시 술이 없는 세계로 돌아가려 한다. 술 있는 밤이 파놓은 함정을 정확히 주시하며. 저자 김일두는 책에 이렇게 썼다. “술은 주고 도로 뺏는 힘이 있”다고. 김세인도 자기 인식을 자꾸만 방해하는 술의 작용을 인식하며 아래와 같은 말로 그것을 견제했다. “술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게도 적당히 마셨을 땐 대화의 문을 활짝 열어주지만 그 ‘적당히’를 넘어서는 순간 아주 무섭도록 칼같이 사방의 셔터를 쾅 내려버린다. 냉엄한 셔터는 술을 마실 때는 물론이고 술을 마시지 않는 순간에도 점차 나를 고립시켜갔다.”
이 책은 얼핏 금주를 권하는 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는 있던 것이 없어진 밤의 공백, 그 어두운 빈칸과 나란히 눕고자 하는 사람들의 용기를 환기하는 책이다.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 없이 세계와 직접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배짱을 직시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