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구채은 |
출판사 | 파지트 |
판형 | 135mm x 201mm |
페이지 | 232쪽 |
카테고리 | 문학 |
출판연도 | 2023 |
‘읽는 인생’은 어떻게 ‘일하는 인생’을 구원하는가?
직장생활이 눈물 쏙 빠지게 힘들 때
그 눈물을 닦아주는 ‘활자들의 수고로움’에 대하여
어느 날, 오늘 하루만 나를 대신해 출근할 아바타를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단, 그 아바타는 책들 속 주인공으로 한정돼 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어떤 화자를 고를 것인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 『인간실격』의 요조가 회식 자리에 앉아있다고 상상해 보자. ‘익살’이란 가면을 쓰고 그 시간을 용케도 잘 버텨내면서 내면에 큰 수치심과 괴리감, 시대와의 불화를 느끼지 않았을까. 아니면 요조가 미친 척 발광에 실성한 척을 해대서 그 술자리는 일찍 파해 2차까지 가지 않아 다행스러울 수도 있다. 물론 다음날 내가 대신 그 민망한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고통은 있다.
아니면 『빨간머리 앤』의 주인공 앤을 보내 하루종일 수용초과의 투머치 토크를 건네, 상사가 다시는 당신과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되는 건 어떨까? 이 또한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책 속의 어떤 주인공이든 오늘의 나를 대신해 회사 생활을 한다면 일은 망치겠지만 하루를 망치지는 않겠다는 묘한 쾌감이 든다.
일터에서 비루해지고, 초라해지고, 남루해지며, 처참과 비참, 비탄을 느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삶의 장르 자체가 회색빛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근사하게, 당당하게, 멋있게, 직업윤리를 지키며 자아 성장을 도모해 줄 것이라 믿었던 무지갯빛 일터는 신기루처럼 흩어져버렸다.
바람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박은빈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다.
날카로운 굴욕과 치욕, 모멸과 너절함이 마음을 땅 밑으로 꺼지게 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과 생계에 대한 중압감이 허무와 절망으로 누를 때. 그럴 때 저자는 순전히 도피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할 줄 아는 게 읽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일 생각 좀 떨쳐버리고 싶었으니까.
이 책은 그런 때 눈물을 삼키며 읽은 ‘도망간 곳에서 찾은 활자’들의 기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