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고민실 |
출판사 | 열린책들 |
판형 | 116mm x 188mm |
페이지 | 272쪽 |
카테고리 | 문학 |
출판연도 | 2024 |
일상의 불안은 고조되지 않고 고요히 누적되다 불현듯
재앙의 예감으로 변모한다. 고민실은 바로 그 예감이 실현되려는
문턱에서 시간의 흐름을 중단시킨다. 이미 지나온 이야기를 거슬러
갈 수 있지만, 생동했던 인물과 서사는 얼어붙었다.
독자는 비극의 카타르시스 대신 해소되지 않는 불안을 끌어안고
누구도 정지시킬 수 없는 시간 속에 버려진다. 그리고 곧 이 추방의
감각이 놀랍도록 익숙한 현실의 감각이었음을 깨닫는다. 멈춰 버린 이야기와 끊임없이 흐르는 현실의 낙차가 적막하게 아찔했다. ㅡ 천희란(소설가)
근원적인 삶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고민실의 첫 소설집
열린책들 〈한국 문학 소설선〉의 첫 번째 작가인 고민실이 자신의 첫 소설집 『홈 가드닝 블루』를 출간하였다. 고민실은 201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22년 장편 소설 『영의 자리』를 발표하여 고요하지만 섬세하고 깊은 파장을 지닌 소설로 평가받았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그동안 문예지에서 선보였던 단편뿐 아니라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뽑힌 등단작, 그리고 새롭게 쓴 글까지 총 여덟 편이다. 특히 「쓰나미 오는 날」은 황종연 문학평론가와 김인숙 소설가로부터 〈작중 인물의 감각적 지각을 통해 대상 사물들의 특징을 상세하게 전달하는 가운데 인물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가지는 근원적 느낌, 즉 그의 신체에 뿌리박고 있는 관념 이전의 느낌을 환기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라고 호평받았다. 고민실은 어떠한 인물과 그를 둘러싼 일상에 관해 덤덤한 듯 들여다보지만 우리는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이 삶이 나, 혹은 내 가족을 말하는 게 아닌지 서늘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고민실의 세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평범하다. 그들은 전세를 사는 빌라에서 로즈메리를 키우는 신혼부부로, 심각한 폭염 속에서도 냉장고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 젊은 주부로, 동생이 진 빚을 대신 갚아 준 누나로, 결혼식 부케를 받아야 해서 네일 아트를 하러 간 마흔 살 직장인으로, 거대한 쓰나미 예보가 있는 부산에 출장을 간 직장인으로, 생리통 때문에 생리컵을 처음 사용해 보려는 게임 개발팀의 팀원으로, 사무직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경력 단절 주부로, 의사에게 죽음을 선고받은 신용 불량자 오빠를 둔 동생으로 그렇게 우리 앞에 제각기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느 날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알 수 없는 불안과 홀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지만, 그들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한 절망과 슬픔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형태는 달라도 그 삶에서 느끼는 감정과 고민, 괴로움은 누구에게나 괴롭고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민실의 소설에서 대답을 찾으려 할지도 모른다. 갑자기 떠안게 된 균열된 삶을 어떻게 이어 갈 것인지, 과연 나 자신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과연 답은 있는지 말이다.
지연된 아포칼립스, 고민실의 작품 세계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파국의 장면에서, 끝나야 하는 곳에서 끝나지 않고 후일담처럼 살아남는다. 암이 발병하여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렵게 구한 직장에서, 〈진경〉이 나가겠다고 하자 사장이 이죽거리며 말한다. 〈어차피 갈 데도 없잖아.〉(「좋은 사람」, 216쪽) 이러한 저주 섞인 비아냥은 이 소설집의 인물들에게 마련된 궁지를 요약한다. 삶은 막다른 골목이다. 어차피 갈 곳은 없다. 그런데도 진경은 그만두고 전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으며 예전 직장에 재취업하는 데 성공한다. 이 소설은 여성 노동자의 취약한 기반을 스케치한 작품이기도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화되는 이른바 〈인적 자본〉이라는 기준에 맞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해가는 여성들의 고단함을 보여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가 끝까지 목격함으로써 가시화하는 지점은 바로 그 〈다음〉에 있다. 삶은 총체적이지 않으며 이들의 삶은 예정 조화 속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세상은 언제나 말세였다. 파국은 도래했거나, 도래하고 있으며, 도래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될 것이다. 상징도 총체성도 없이. 작가가 어떤 희망도 없이, 그러나 그 삶의 계속됨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적을 때, 우리는 알게 된다. 바로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ㅡ 양윤의(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