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자 | 사이토 아키요시, 니노미야 사오리 |
| 출판사 | 글항아리 |
| 판형 | 120mm x 185mm |
| 페이지 | 336쪽 |
| 카테고리 | 비문학 |
| 출판연도 | 2026 |
2017년부터 이어져온 피해자와 가해자의 왕복 서신
말하고 쓰며 책임을 언어화하는, 전대미문의 회복적 대화
가해행위의 책임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피해의 실태와 피해자가 처한 ‘그 뒤’를 알아야 한다
답을 구하는 쪽은 언제나 피해자다. 성폭력 피해 당사자인 니노미야 사오리는 오랫동안 질문해왔다. ‘왜 나였을까?’ ‘나여야만 했던 걸까?’ 사회가 이렇게 틀 지어졌기 때문이다. ‘짧은 옷을 입었어?’ ‘여지를 준 건 아니야?’ 그러나 그녀 안에서 답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이 질문에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답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진실 위에 서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들이 겪는 사건 ‘그 뒤’의 시간이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진실. 그러므로 이 대화는 시작도 전에 수없는 실패를 전제한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모르듯이 피해자 역시 가해자를 알지 못하며, 우리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알지 못한다. 니노미야는 그녀가 품어온 질문에 실제 성폭력 가해를 한 사람이 답한다면 비로소 괴로운 의문의 소용돌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같은 결단에 힘입어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전대미문의 대화가 시작된다. 그녀가 감행하기로 한 것은 가해자에게 확성기를 쥐여준다거나 그들의 호소를 감안해보자는 식의 감정적 배려와는 무관하다. 그보다 오히려 누구나 피해자-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냉정히 받아들임으로써 피해-가해라는 도식과 증오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결기이다.
사이토 아키요시는 3000여 명의 가해자를 만나온 가해자 임상 전문가로, 의존증 치료 시설 에노모토클리닉을 운영하며 회복적 사법이란 기치를 내걸고 재범 방지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니노미야는 2017년부터 이에 동참해, ‘회복적 대화’라는 특수한 임상 치료로서 한 달에 한 번 참가자와 같은 장소에 모여 이야기 나누는 대면 프로그램과 그녀가 편지를 쓰면 참가자가 답장하는 왕복 서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이토 아키요시는 지금껏 가해자 임상에 종사하면서도 본 적 없던 표정, 들은 적 없던 말을 몇 번이나 보고 듣는다. 그리고 가해자 측의 의식이나 행동이 변모하려는 낌새를 알아차리기도 하고, 니노미야가 힘겹게 꺼낸 말들이 가해자들의 머리 위로 공허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참가자 역시 프로그램에 꾸준히 오는 이가 있는 반면, 중도에 재범해 교도소에 들어간 이도 있다.
이곳에는 명백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 두 존재의 양식을 무화하지 않는 엄격함 위에서, 이들은 대화할 수 있을까. 대화를 밀어붙임으로써 성폭력 가해자가 변화할 수 있을까. 물론 대화만으로 행동 변화를 촉진할 수는 없다. 이를 사이토도 니노미야도 알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요인을 탐지하고 개발하며, 끄집어지지 않은 가해자성을 해부하는 일은, 실패한 대화조차 무용하지 않다는 믿음 위에서 이어진다. 타인과의 대화는 필연적으로 존재를 다시 쓰는 일이다. 이 또한 이 책에 도사리는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