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레코드>라는 책 서문을 읽던 중 이런 부분이 있었다. 일본의 미니멀리스트 곤도 마리에는 물건을 버릴 때 설렘이 기준이라고 한다. 그 물건에 더 이상 설레지 않을 때 버린다는 것이다. 그 말을 덧붙이면서 <아무튼, 레코드>의 저자도 ‘설레기 때문에’ 레코드를 버리지 못하겠다고 했다. 깊은 공감을 하면서 책에서 눈을 떼고 장식장에 꽂혀있는 CD와 LP로 시선이 옮겨갔다. 그들의 말처럼 설렜다. 이처럼 뿌듯함을 안겨주는 물건들이 또 있을까. 하나하나의 앨범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음악에 미쳐있던 지난날 내 모습이 흘러갔다. 그리고 땀과 노력의 흔적 그 자체인 앨범들이, 적어도 나한테만큼은 이를테면 손흥민의 땀으로 젖은 유니폼과 비교해도 경중을 논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앨범을 플레이하는 것만으로 어떨 때는 내 방이 그들의 진한 땀 냄새로 흥건히 젖는듯한 다소 변태적인 착각이 들기도 한다. 착각이라 할지라도, 그 물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이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손으로 만져야만 촉각이 전해지듯, 이것은 소유해야지만 이해할 수 있는 감각이다. 살면서 물건들로 너저분한 방을 보며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마다 많은 물건을 정리해 왔지만, 이제까지 레코드를 버릴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간혹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사인받은 레코드 매물을 볼 때가 있다. 사인받은 걸 팔다니. 그 사인을 해준 당사자가 내가 아님에도 서운함이 밀려왔다. 내가 이 정도인데, 사인해 준 당사자가 보면 어떤 기분일까. 만약 내가 사인받은 앨범을 파는 상상을 해본다면, 사인을 부탁하던 순간에 ‘팬이에요~~’ 했던 동동 구르던 목소리와, 감격에 차오른 표정이 모두 조작한 셈이 돼버려 마음이 영 개운치 않을 것 같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을 수도 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싫어졌을 수 있지만, 다행히 내 방에 모셔둔 앨범 중에선 싫어진 음악가가 없다. 그 음악가가 어느 날 내 앞에서 난데없이 코를 후비거나, 정신 나간 듯 비듬을 털거나, 거침없이 방귀를 뀌어대는 일만 없다면, 또는 불미스러운 일로 사건 반장에 소개되지 않는 이상 싫어질 이유가 없다. 지나와서 생각해 보니 사람만이 나를 보살펴 주는 게 아니라, 마음이 위태로운 순간에 등을 쓰다듬어 주고, 혼자 소주를 따르던 처량한 날에 함께 있어준 존재가 바로 장식장에 꽂혀있는 음악들이다. 오래 사귄 친구나 오래 키운 반려견처럼 오랜 시간 들어온 레코드에는 깊이 스며든 추억이 있고, 가족 같은 친밀감이 자라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설레고, 살아있는 한 레코드를 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소중한 대상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문득 내가 죽은 후에 레코드는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죽으면서 세상에 홀로 남을 자식이 걱정되는 부모처럼 우습게도 레코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레코드 외에 물건은 곧 죽는 마당에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을 것 같지만, 레코드만큼은 걱정이 되었다. 만약에 자녀가 있고, 아이들도 음악을 좋아한다면 유산으로 물려주는 그림이 가장 좋겠지만, 아무래도 남은 인생에서 아내 혹은 자식이 생길 일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마지막에는 그 레코드를 좋아하고 잘 맡아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거나, 의미 있는 장소에 기증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김민기 LP와 카세트만큼은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죽을 때 들고 갈 것인가. 그래, 생각해 보니 죽을 때 가져가는 방법이 있구나, 왜 이제까지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죽은 후 내 시신 처리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다. 한 치 앞 모르는 게 사람 일인데, 이런 건 미리 생각해 두어야지 않을까 해서이다. 평소 화장 후 바다에 뿌려졌으면 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정정해야 할 것 같다. 관 속에서 김민기 레코드와 함께 묻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승과 헤어지는 일도 그렇게 쓸쓸하지 않은 느낌이다. 저승 가는 길에 김민기 노래와 함께 잠들 수 있다니. 음악가 김일두가 자주 했던 ‘좋은 음악 듣고 천국 가세요’라는 말처럼 운이 좋다면 천국에 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처럼 떠나려면 주변에 남은 친한 사람들보다 먼저 죽어야만 그런 부탁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친한 사람들 모두 죽을 때까지 오래 살아버리면 곤란해진다. 앞서 말했듯이 남은 생에 부인도, 자식도 없을 것 같아 이런 걱정이 괜한 호들갑은 아니다. 죽는 순간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조용히 방 안에서 썩다가 끔찍한 시취로 이웃의 코를 찌르면서 발견되거나, 관할 공무원 또는 임대인이 내 시신을 보며 골치 아파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혹시 그런 쓸쓸한 마지막을 맞이할지도 모르니,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을 무렵엔 짧은 메모를 적어서 옷 주머니에 항상 넣어두고 지내야 할 것 같다.
“초면에 실례입니다만, 유품으로 김민기 레코드만 곁에 묻어주십쇼. 사례금은 책상 첫 번째 서랍에 부족하지 않게 넣어두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