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천고

by 유재필

이 이야기는 오래전 연락이 끊긴 어릴 적 친구 J 아버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J의 말에 따르면 J의 아버지는 선천적으로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채로 태어났다고 한다. 당시 J의 말이 지금은 꽤 희미해져서 정확하지 않지만, 그 두 눈 때문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아버지는 일찍이 고아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 불행 속 다행인 건 기적적으로 어느 스님을 만나, 돌봄을 받고 자랄 수 있었다고 했다. 공부도 스님에게서 배웠다고 하는데, 국, 영, 수 같은 교과목이 아닌, 주로 명리, 사주, 역학 같은 공부였다고 한다. 스님의 혜안일까. 스님의 조기 교육 덕분에 J의 아버지는 성인이 되어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밥벌이할 수 있었다고 했다.

J의 아버지는 경남 마산에서 철학관을 운영했다. 철학관은 손님들로 붐볐다고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어릴 적부터 J는 티브이 속에나 봤던 국회의원들이 집으로 드나드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고 한다. 아버지 실력이 SNS도 없던 시절에 오직 입소문만으로, 전국 각지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고 했다. 한 번은 J의 사촌이 결혼을 앞두고 아버지께 궁합을 보러 온 적이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결혼 당사자들에게는 듣기 좋게 둘러댔지만, 사실은 J에게 저 둘 오래 못 갈 것이라 예견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아버지의 말처럼 그 사촌은 몇 년도 안 되어 헤어졌다고 한다. 그런 일들이 J에게는 일상이었다. J한테나 나의 눈엔 J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정말 (초)능력 있는 아버지였다.

어느 날 J가 나에게 ‘니 사주도 함 봐줄까?’ 하고 물었다. 당시 친구한테서 아버지에 대해 들으면 들을수록 무척 신기했었고, 점점 자연스럽게 친구 아버지의 능력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래서 친구한테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 분을 알려줬고 얼마 후 친구가 결과를 가져왔다. 그때 친구가 이런저런 풀이를 해주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귀에 꽂혔다. ‘아버지가 그라는데, 이 아는 천고가 끼얹네’ 이렇게 말하셨다고 한다. 나는 ‘천고가 뭔데?’하고 물었더니, ‘하늘 천(天), 외로울 고(孤). 한 마디로 좃나 외롭다는 거지’하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냐면, 그냥 외롭다는 말을 저렇게 한 자 두 개를 붙여놓으니 왠지 뭔가 있어 보이듯 들렸다. 그리고 당시 곽부성을 좋아했던 터라, 그가 주연인 영화 <풍운>에 빠져 여러 번 돌려보고 있었는데, 내 사주가 ‘천고’라고 하니, 어쩐지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 순탄치 않을 무협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멋있는 것 같다고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중학생 시절이었고, 그때는 유일하게 아무 걱정 없이 놀기 바빴던 만큼 그 말이 크게 와닿을 리 없었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친구 아버지가 해준 말을 담아두거나 하진 않았지만, 어쩐지 인생에서 각별히 외로운 길목으로 접어들 때마다 별일 없이 그 말이 떠오르곤 했다.

절망스럽고 지독히 외로울 때 자칫 망가질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는 건 나는 이것이 친구 아버지가 말해준 ‘천고’ 덕분이 아닐까 한다. 말하자면 이혼했을 때도 그렇다. 술의 힘을 빌려 스스로를 베란다 아래로 밀어 넣을 수도 있지만, ‘에라이 내가 무슨 결혼이냐, 이럴 줄 알았지’ 하면서 J 아버지 말 덕분에 무심하게 넘어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해본다. ‘천고라잖아. 좃나 외롭다고 했잖아’라면서 말이다. 이런 비유는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주사를 맞을 때도, 간호사가 다짜고짜 주삿바늘을 엉덩이에 푹 찔러버리면 놀라고 아프지 않은가. 그래서 바늘이 들어가기 전 ‘따끔~’ 한마디와 함께 엉덩이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는 것처럼, 그 당시 친구 아버지도 ‘천고~~’ 하면서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는 식으로 내 인생에 닥칠 우울에 대해 안심 시켜준 게 아닐까. 그런 어이없는 상상을 하곤 한다.

내 인생을 롱텀으로 봤을 때 어릴 적 만난 천고라는 말은 그런 식으로 들리는 거다. ‘자~ 이제 니 인생 좃나 우울할 거야~~ 이제 시작이야’하고 말이다. 이게 너무나 스스로를 부정적인 틀 속에서 가두는 식의 사고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제까지 내 삶에 묻은 불행을 그저 하나의 먼지처럼 훌훌 털어낼 수 있는 건 ‘또 이렇군, 어쩔 수 있나, 이럴 줄 알았지, 내가 무슨’ 하면서 모든 게 천고 덕분이 아닌가 한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어쨌든 천고 덕분에 그저 오늘 하루 살아있는 것과 살아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요즘 들어 부쩍 체감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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