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훨씬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해서, 더 이상 보관이 어렵게 되어 씁쓸한 기분으로 매일 책을 조금씩 버리고 있다. 설마 ‘내 책을 버리는 건가?’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건 아니다. 내 집에 있는 당신의 책이라면 알라딘에 팔 수나 있지. 버린다는 건 내가 쓰고 발행한 책들이다. 내 책은 알라딘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슬픈 일이다.
저 많은 책을 비좁은 집에서 몇 년째 미련하게 끌어안고 있는 건지. 무슨 생각으로 몇천 권씩 찍었을까. 정말 다 팔 수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했나? 진짜 그런 생각이었나? 이제는 저 종이 뭉치를 보기만 해도 숨 막힌다. 물론 저 책들 또한 숨 막히겠지. 주인 잘못 만난 탓에 주목은커녕, 벤치만 머무르다가 데뷔도 없이 은퇴하는 꼴이라니. 책들에도 면목이 없다. 이렇게 책이 안 팔릴지 몰랐고, 또한 이처럼 인생이 안 풀릴 거라곤 예상 못 한 일이다.
더 이상 책은 안(못) 만들겠다는 생각을 곱씹고 있다. 책에 들어간 제작비와 노동이 아까운 건 둘째 치고, 좋은 글을 쓰지도, 책을 잘 만들지도, 잘 팔지도 못해서,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책장에 품어지지 못한 채 처분할 도리밖에 없다면, 결과적으로 환경 파괴인 셈이다. 나무만 아깝다. 환경 문제를 두고 한 번도 심각해 본 적 없다가, 책을 버리면서 지구를 염려하다니. 환경 문제를 직시하게 만드는 내 책이 새삼 기특해 보인다. 나도 먹고 살기 위해서였지만 어쨌든 그동안 이런 쓰레기를 생산해 와서 지구에 송구할 따름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동안 내 글을 좋아해 주셨고, 책을 구매해 주신 분들은 뭐가 되나? 하고 문득 걱정이다. 뜬금없이 이런 글을 적어서 손에 꼽을 고마운 그분들을 괜히 쓰레기나 사버린 사람으로 만들어서 어쩌자는 건가. 그래서는 안되지. (이렇게 그분들 핑계를 대면서) 뭐, 언젠가 초판 100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남긴다. 가능한 책은 안 만들 것 같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나중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나이 들면서 확실히 배운 건 확신 같은 건 하지 말자는 것이다. 어쩐지 나이 먹고 비겁한 것만 몸에 익은 기분이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이다. 동네 의류 수거함 속 옷들이 팔만한 것들만 업자들이 팔아 치우고, 나머지 대부분은 흘러 흘러 어느 나라의 바닷가까지 떠밀려가서 광대한 쓰레기 바다를 이루던 모습. 그리고 소들이 우적우적 옷을 씹어먹고 있는 충격. 그 장면이 뒤통수를 세게 때리면서 내가 먹고 살기 위해 생산한 것(책)에 대해 진지해졌다. 내가 버리는 책들마저 소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겠지만, 내가 버린 책(생산)은 어디로 흘러갈까. 꼭 책으로 만들어야 할 글과 그림도 있지만, 블로그만이라도 좋은, 책으로 만들기에는 자제해도 충분한 글이 있는 듯하다. 물론 나도 내 글이 (자제해야 할) 그런 글이라는 게 무척 아쉽지만 말이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생산 보다 가치 있는 비생산도 있기 마련이다. 저 많은 책을 보며 한숨만 나오는 밤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으로 싸는 건 이제 화장실에서만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