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토록 기다리는 연말, 누군가는 멀리하고 싶은 연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면 좋아하는 여행을 가기에도 힘에 부친다. 일단 겨울옷들은 두껍고 무겁다. 외출하게 되면 짐이 한가득이다. 눈이 오는 것도 반갑지 않다. 당장 내릴 때는 너무 예쁘지만, 질퍽한 땅도 곧 얼어붙어서 교통체증을 유발한다. 어릴 적 빙판에서 넘어져서 팔이 부러진 기억이 떠올라서 무섭다. 그렇다, 이런저런 이유가 길어진 만큼 나는 추운 겨울이 싫다. 그런데 최근 들어 겨울이 조금씩 기다려진다. 귀여운 스트라이프 바라클라바를 산 이후부터다. 추위를 녹여줄 겨울 아이템을 장만하니 얼른 겨울이 왔으면 싶다. 연말은 왠지 설렌다.
겨울에 결혼한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좋아하는 계절이라서 겨울에 결혼했다고 했다. 겨울이 좋은 이유가 눈이 내려서도 아니고 로맨틱한 연말도 아니고 귀여운 겨울 아이템도 아니고, ‘겨울나무’ 때문이랬다. 봄에는 예쁜 꽃도 피고 여름엔 초록 잎이 무성하고, 가을엔 단풍으로 울긋불긋 화려하지만, 잎이 지고 나면 겨울에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는 그 모습이 좋댔다. 어려울 때 자신 곁에 있어 준 그 사람을 반쪽으로 맞았다고 했다. 담담히 지난날을 고백하는 그녀의 용기가 곧은 겨울나무 같았다. 날것을 보여주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떠나거나 남거나. 소중한 사람일수록 날것을 보여주기가 두려울 수 있다. 내 옆에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니까. 하지만 진실한 관계는 날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진실한 사랑으로 주변을 채우고 싶다면 날것을 보여주는 걸 두려워 말아야 한다. 떠날 사람이었다면 상처를 주고 떠나겠지만, 어쩌면 더 진실한 관계만 남을 것이다.
인간은 겨울이 되면 찬 바람이 작은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올까 봐 한 겹이라도 더 싸매고 몸을 웅크리는데 나무는 겨울이 가까울수록 자꾸만 발가벗는다. 붙어있던 아름다움과 풍성함과 화려함을 모두 내던진다. 그리고 본연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간다. 잎사귀도 꽃도 열매도 없는 날것의 모양 그대로. 나뭇잎이 없어야 나무줄기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면서 어떤 모양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하늘을 곧장 바라볼 수 있다. 밝은 하늘에 그림처럼 가지들이 뻗어져 나온 모습을 대비해서 볼 때, 그 뻥 뚫린 모습에 마음이 환하다. 가지뿐만 아니라 곧고 단단하게 솟아오른 기둥을 똑바로 볼 수 있다. 나무 기둥이 반듯하게 서 있지 않는다면 가지도 힘 있게 뻗어나갈 수 없으며 흐물거리는 가지에는 이파리도, 꽃도 피지 않는다. 당연히 열매도 기대할 수 없다. 겨울만큼 곧고 단단한 나무의 모습을 낱낱이 살펴볼 기회가 또 있을까. 찬바람을 맞으며 나무를 응시하고 있노라면 마치 벌거벗은 채로 거울 앞에 선 기분이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책상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어서 선생님께 늘 칭찬받았다. 가끔은 나를 본보기로 지목하기도 하셨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90도라고 별명을 붙여줬다. 그런데 2년에 한 번 돌아오는 건강검진에서 의사 선생님은 충격적이게도 내게 척추옆굽음증-척추측만증에서 최근 명칭이 바뀌었다.-이 있다고 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는 게 여전한 버릇인데도 어쩐지 오래 걷거나 한 자세로 오래 앉거나 서 있는 날은 유독 허리가 아팠다. 사실 한 자세로 경직되게 있는 건 척추에 유익하지 않다. 척추가 호흡할 수 있게 유연하게 자세를 바꿔줘야 한다. 근본적인 것은 결국 드러나고야 만다. 나무에도 겨울은 거짓 없이 드러나고야 마는 그때다.
계절이 지나면 나무도 휴식기가 필요하다. 에너지를 계속해서 소비하기만 할 순 없다. 소비했으면 충전해야 하는 것처럼 나무도 순환하는 계절에 따라 쉬어가는 틈에 이듬해 봄을 준비할 수 있다. 겨울나무는 홀가분할 것이다. 머리에 무겁게 내려앉은 잎사귀며, 꽃들이며 귀찮게 하는 새들과 벌레도 찾지 않고, 열매는 노리는 인간도 없을 테니까. 앙상한 가지를 내보이는 겨울이 기다려질지도 모르겠다. 마치 용량이 꽉 찬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싹 밀어버리는 것처럼 개운할지도 모른다. 이전에는 쉰다는 것 자체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아닌지 불안했다. 쉬는 시간에도 무언가 바쁘게 해야 하고 열심히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라 착각했다. 쉬는 시간은 그런게 아니다.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고 다음 스텝을 위한 정비 시간인 셈이다. 땀을 닦고 목을 축이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또다시 뛸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의 웅크림은 분명 기지개를 켜기 위한 준비 자세다. 진실한 마음으로 나의 겨울나무를 바라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