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좋은 대화

by 유재필

공격과 수비라는 측면에서 스포츠를 바라보면, 야구는 ‘너희 팀 공격’ 기회가 주어진 후, 삼진 아웃을 기점으로 ‘우리 팀 공격, 너희 팀 수비’ 이렇게 공수(공격과 수비)를 교대한다. 이처럼 일정한 패턴으로 공격과 수비의 기회가 오가는 시합이 있는가 하면, 축구 같은 경우 공격 시간과 수비 시간을 칼로 자르는 듯한 경계가 없다. 한쪽이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기도 하고, 한쪽은 경기 내내 수비만 하다가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다. 야구팬에겐 축구의 이런 모습이 마구잡이식의 공놀이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엔 축구 쪽이 훨씬 박진감 있고 흥미진진하다.

공격수도 때론 수비를, 그리고 수비수의 발에서도 예상 못 한 골이 터지기 때문에, (다른 스포츠라고 해서 극적인 요소가 없겠냐마는)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지는 느낌이다. 예컨대 토트넘의 센터백 로메로나, 반더벡이 상대 진영 골문까지 올라가서 헤딩 골을 넣기도 하고, 페드로 같은 풀백이 뜬금없는 위치에서 중거리 슛으로 골망을 가를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손흥민도 공격수라고 하여, 공격 진영에서 어슬렁거리며 동료의 패스만 기다리지 않는다. 드넓은 경기장을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몸을 내던지는 수비는, 뭉클한 감동을 안겨 주기도 한다.

나는 때때로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공격과 수비가 오가는 축구의 모습을 떠올린다. 말하자면 ‘운동장’이 아닌 ‘대화의 장’에서 공격수가, 그리고 수비수가 보이는 것이다. 대화에서도 말하는 능력이 탁월한 공격수 유형의 ‘호날두’가 있는가 하면, 듣는 자세가 뛰어난 ‘반다이크’ 같은 수비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두 유형 중에서 나는 어느 쪽인고 하니, 수비가 체질이라고 느꼈다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하기에 공격 포지션은 절대 아닌듯 했고,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보였던 듣는 쪽의 위치에서 쭈욱 수비수로서 지내온 것 같다. 그러면서 그동안 자연스레 이런저런 대화의 장에서 이런저런 공격수들을 만나왔다.

지난날 봐왔던 공격수를 떠올리면, 몇몇 훌륭한 공격수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문득 그들과 나눈 기분 좋은 대화가 그리울 때도 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 탐욕스러운 공격수도 있다. 주체할 수 없는 공격 본능으로, 늘 입이 근질근질한 모습이었던 공격수들. 자기 말만 하고, 결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수비에는 안중에 없던 안타까운 사람들. 패스 따윈 모르듯,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런 공격수 중에서도 특히 자신의 수입, 본인과 어느 유명한 사람과의 관계, 즉 돈 자랑, 인맥 자랑을 퍼붓는 선수를 상대할 때는 수비수로서 정말 곤욕이다.

수비가 체질에 맞아서 그동안 수비수 역할을 맡아왔지만, 수비수라고 해서 공격 기회가 없다면, 로메로도, 페드로도, 반더벡도 그런 경기는 뛰고 싶지 않을 거라고 짐작한다. 개인적으로 대화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공격과 수비의 비중이 있다면 공격 7: 수비 3이 적당한 것 같다. 가령 10분의 대화 시간이 주어진다면 7분 정도는 들어주는 입장, 즉 수비수로서 뛰어도 아무렇지 않지만, 그래도 3분 정도는 나도 말하고 싶다.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라는 말을 숱하게 들으며 살아왔지만, 속내는 3분 정도는 나도 공격수가 되어서, 나의 관심사, 내 생각,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화였으면 하는 것이다.

만약 축구에서 수비수는 오직 수비만 봐야 하고, 공격수는 공격만 해야하는 식의 스포츠였다면 훨씬 무료하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마주 앉은 사람이 잘 들어줄 것 같은 수비형 인간 ‘반다이크’ 처럼 생겼더라도 그의 가슴에도 뜨거운 한 방, 꿈틀거리는 이야기 하나쯤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이 호날두나, 홀란드 같은 화려한 스트라이커가 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할 거다. 그렇다고 대화를 혼자만 주도하려는 호날두보다, 공격하다가도, 내려앉아 수비도 볼 줄 알고, 배려와 섬세함을 바탕으로 타이밍을 살피면서 동료에게 패스도 넣을 줄 아는 손흥민 같은 선수가 운동장이 아닌 대화의 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더 멋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좋은 대화란 무엇일까. 유명인과 나누는 대화일 수 있고, 이득이 될 만한 정보를 얻는 대화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 중 화려한 달변가가 리드하는 웃음 가득한 대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랑, 인맥 자랑만 늘어놓는 식의 대화를 하는 사람과 있으면 정말이지 귀에서 피가 흐르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대화는 말하기와 경청이 적절한 배합으로 섞인 대화가 아닐까 한다. 일방적인 한 사람의 공격으로 장악한 대화가 아닌, 수비수도 골 넣을 기회가 있는 대화가 좋은 대화가 아닐지 생각한다. 그리고 별것 없다.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대화 내내 편안한 기분으로 말하고 듣다가, 다음에 이 사람과 또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좋은 대화가 아닐까.

아무튼 긴 글을 한 줄로 정리한다면 ‘호날두보다 손흥민이다’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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