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대중교통이지만 택시와 버스, 지하철의 감각은 제각각이다. 지켜본 결과 지하철은 서울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는 대중교통수단이다.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려면 지하철로 이동하라는 조언을 꾸준히 들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약속 시간에 늦지않을 자신이 내게는 없다.
지하철에선 정말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몇몇 구간을 빼면 지상 풍경이 거의 없고 (기분상) 일직선으로만 달리는 데다 역명 표기는 결코 한눈에 알아볼 수 없도록 신묘하게 가려 놓아, 웬만큼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는 이상 탈출이 불가능하다. ‘이 노래 오랜만에 들으니 좋다’ 따위의 별 볼 일 없는 감상에 3초간 빠졌다가 번쩍 고개를 들면 전철문이 닫히는 광경을 보게 될 텐데, 그곳이 바로 내렸어야 할 역이다. 목덜미에 꽂히는 섬광 같은 불길한 예감에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라 엉덩이에 불화살 맞은 사람처럼 닫히는 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해 본 적 있는가. 그곳은 내렸어야 할 정류장이 절대로 아니다. 그 바로 직전 역이다. 역사는 어찌나 깊고 어찌나 긴지. 출구는 또 어찌나 많은지, 계단은 어찌나 많은지. 몇 대 마련해 놓지도 않은 승강기는 혹시라도 사람들이 이용할까 봐 가장 구석진 곳에 꼭꼭 숨겨놨다. 서울시는 아낄 걸 아껴라. 불법 스티커라도 배포하고 싶다. 불법이 뭔데? 이러면서. 내가 봤을 땐 이 계단이 더 불법이다. 이러면서.
내가 여전히 신기하게 생각하는 건 지하철이라는 이 난해한 문법을 완벽히 구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울 등 지하철을 보유한 대도시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철도를 상대해 온 ‘전철 네이티브’일 수도 있고, 출퇴근, 등하교라는 인텐시브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딥러닝을 장착한 이주민일 수도 있다. 내가 특히 관심을 가지는 건 딥러닝 부류다. 오전 7시부터 9시 사이, 오후 6시부터 8시 사이에 쏟아져 나오는 그들은 고개를 스마트폰에 직각으로 박고도 환승에 가장 용이한 6-2 플랫폼까지 1보 오차도 없는 574걸음 만에 당도한다. 다음 정거장에 내릴 사람이 앉은 자리를 찾아내 앞에 지키고 섰다가 그가 내리면 잽싸게 앉아 심드렁한 잠에 빠지곤 내릴 때가 되면 방금 눈 감은 사람처럼 눈을 뜬다. 그 누구에게도 시선을 두지 않는데,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 -초심자가 다가와 출구 위치를 묻는다든가, 내가 앉은 자리를 원하는 게 분명한 노약자와 눈이 마주친다든가- 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무표정하다. 무자비한 만원 전철 속으로 꾸역꾸역 밀고 들어갈 때면 모두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예상하겠지만, 실상은 무섭도록 아무 표정이 없는 행렬이다.
나는 이 무표정하고 능숙한 이용자들에게 약간의 원한이 있다. 20대 중반의 일이다. 한창 붐비던 저녁 8시경 합정역 2호선 역사를 통과하던 중이었다. 문득 속이 메스꺼워졌다. 체온이 빠르게 식어가고 그 속도에 맞춰 시야가 좌우로부터 안쪽으로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이러다가 기절했던 게 떠올랐다. 얼른 휴식을 취해야겠단 생각에 주위를 둘러봤지만, 앉을 곳은 안 보이고 방향도 모르겠고. 눈앞에 보이는 아무나 불러 세워 다급하게 여자 화장실 위치를 물었다. 두어 팀이 날 온몸으로 거부하며 사라졌다. 맨날 ‘창고 정리’라고 써 붙이고 구두랑 가방을 파는 매장 상인 역시 손이나 내저을 뿐이었다. 모두가 날 정신없는 취객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물론 술을 아예 안 먹은 건 아니었지만….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겨우 화장실을 찾아냈고 어찌어찌 기력을 회복한 후에 복수를 다짐하며 집에 갔다.
대충 10년 후, 복수 같은 건 잊고 잘 살던 내게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예의 그 허리 통증 때문에 압구정에 있는 병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 병원은 돌이켜볼수록 안 좋은 선택이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약수역에서 환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전에는 약수역을 싫어해 본 적이 없다. 어쩌다 한 번씩 강남권에 다녀올 때면 약수역 6호선에서야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이제부턴 아는 동네라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럴 줄 알았는데, 퇴근 시간대의 지하철 환승역은, 게다가 작은 충격도 큰 통증으로 보답받는 허리 디스크 환자의 입장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나는 수백 대 오토바이가 한꺼번에 달리는 방콕의 도로를 신호등 없이 건너야 하는 어리바리한 여행자의 처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때 알게 된 사실. 사람들은 퇴근 시간에도 출근 때만큼 맹렬하게 뛴다. 환승역에서 뛰는 자는 반드시 누군가를 치게 돼 있다. 다만 그들은 사람을 치고도 결코 미안해 하지 않는다. 마치 내게 이 바닥의 생리를 알려줬다는 듯 본체도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아픈 나는 느리고 굼떴다. 그 말인즉슨 방어 떼 같은 인파 속에 휘말린 말미잘, 해삼, 장애물이자 빈틈이었다는 얘기였다. 아무리 구석으로 붙어서 걸어도 뛰는 사람들은 반드시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갓길로 불법 추월하는 자동차와 같다. 나는 툭! 치면 야! 소리 내는 법을 그때 배웠다. 평소 순발력이 떨어져 걱정이었는데 좋은 훈련이었다 생각했을 리 없고, 실제론 “야!”라고 벼락같은 불호령을 내리긴커녕 “하! 저기요! 왜 쳐요! (들은 척도 안 하고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라고 내 심정에 비하면 너무 고운 소리를 내는 것에 그쳤지만, 아무튼 건드리면 반응했고, 성질은 점점 나빠져서 나중엔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쳐도 마치 내가 치인 양 화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식이었다. 혼잡한 에스컬레이터에서 실수로 앞 사람 뒤꿈치를 밟았다. 내게 밟힌 이는 별로 나이 들지 않은 남자였다. 그가 어이없단 듯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도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아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일일이 예민하게 굴 거면 이 바닥 어떻게 다니나? 같은 속내를 온 얼굴에 전광판처럼 띄우고, 미안하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나와 같이 있던 동생은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마음이 너그러웠는지 쓸모없는 시비를 트고 싶지 않았는지 허! 참! 하고 말던 그분께 지금 와서 참 죄송하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그때의 나는… 심연을 너무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도 나를 바라본다… 뭐 그런 게 아니었나 싶은 뭐 그런 거였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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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6호선 빌런은 나였던 것처럼, 듣다 보면 이해 안 가는 사연 없는 법이다. 매일 오전 7시에 2호선 전철을 타고 합정역에서 삼성역까지 출근하는 직장인인 절친한 친구1는 친구들과의 카톡 채팅방에서 벌어진 ‘지하철 옆자리의 싫은 사람’ 성토대회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옆에 누가 앉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앉으면 백 점, 못 앉으면 빵점일 뿐.”
모두가 잠시 카톡을 멈추고 눈물 흘리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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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좋은 마음으로 환승 구간을 걷는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함께 고교 시절을 보낸 한 친구의 에피소드를 떠올린다.고3을 앞둔 겨울 방학, 그 애는 방학 동안 서울에 머물며 유명 입시 학원의 특강을 듣기로 했다. 그날 아침 그 애는 학원에 가려고 서울 친척 집을 나서 지하철을 탔다. 이제 지하철 갈아타는 길이 좀 익숙해져서 제법 여유롭게 환승 통로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뛰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뛰는가 싶더니, 이젠 주위 모두가 뛴다. 앞에서는 뛰어가고 뒤에서는 뛰어온다. 그 애도 덩달아 뛰기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야.”
이 말을 하는 친구의 웃는 얼굴에 울컥 눈물이 차오른 그 애의 어린 얼굴이 겹쳤다. 무리로부터 슬그머니 빠져나와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엉엉 울어버리는 그 애도 보인다. 엄마. 있잖아. 내 방금. 사람들이 뛰어서. 따라 뛰었다. 나는. 지각도 아닌데. 그러면서.
그 얘기를 떠올리면 열일곱 살 적 그 애 모습이 함께 따라와 꼭 미소가 난다. 뭐가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자기만 바보 같았으려나. 이제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직도 어린애인 게 분했으려나. 생각보다 멀리 왔단 걸 깨닫고 덜컥 겁도 났겠지. 그 사람들은 열차 도착 시간이 다 돼 가니까 뛸 뿐이었을 텐데. 그냥, 매일 출근하고 매일 등교하니까 열차 시간에 익숙한 것뿐일 텐데. 폭이 한강의 절반밖에 안 되는 작은 강이 흐르는 남쪽 소도시. 작은 도시보다 더 작은 학교에서 제일가는 말괄량이. 목소리도 제일 크고 달리기도 제일 잘했던 여자애. 그 애가 울었단 이야기. 서울 어딘가에서 지하철 환승을 하다가 울어버렸단 이야기. 덜컥 멈춰 섰다는 이야기. 이방인이라는 고독, 타지라는 외로움, 그러니까 앞으로 셀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될 심정 앞에서 처음으로 멈춰 섰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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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면 자리부터 찾는다. 자리가 나면 잽싸게 앉는다. 핸드폰을 보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눈과 목을 쉬게 하거나 창밖을 보거나 한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마주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 내 앞으로 취한 얼굴, 잠든 얼굴, 피로한 얼굴, 들뜬 얼굴, 화난 얼굴, 걱정하는 얼굴, 부드러운 얼굴, 경직된 얼굴, 웃음을 참는 얼굴, 울기 직전의 얼굴들이 앉았다 간다. 약간은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너무 빤히 남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전에 시선의 초점을 창밖으로 맞춘다. 밤. 지하철. 어두운 굴속을 빠져나와도 세상은 밤이다. 물론 불빛이 있지만, 집마다 밝힌 노란 불빛이 도시의 야경을 반짝거리게 하지만, 그 모습이 참 예쁘지만, 저 따뜻해 보이는 거실들에도 자기만의 불행이 있을 것이다. 가장 미운 인간에게조차 애틋함을 선사하는 삶이라는 끈질긴 불행에 관해 생각한다. 질리지도 않고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