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나를 좀 도와줄 수 있어?

by 김지언

고통스러울 때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고통이 너무 커서 시야를 가로막는다.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고 아프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내 아픔은 대단히 깊고 크고 다르다고 느껴진다. 내 시야가 나로 가득 차면 타인이 설 공간이 없다. 가까운 사람이 무엇 때문에 오늘 참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너는 왜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든데 그런 이야기를 해?’라고 받아치며 싸운 적도 있다. 왜 하필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기에 네가 고통받을 수 있느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래서 힘든 사람 곁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단순히 예전처럼 잘 나가지 않아서, 즉 떨어질 콩고물이 없어서 떠나는 것은 아니다. 고통이 한 사람을 이기적이고, 예민하고, 공격적인 사람으로 서서히 바꿔놓기 때문이다. 누군가 도와주려고 할 때마다 오히려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에게 날을 세우게 된다. ‘당신 잘못도 있잖아요. 당신이 몰라주잖아요’라고 비난하게 되기도 하고, 그러다 그 비난에 대한 자책감에 빠져서 허우적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은 참 잔인하다. 아픔을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아픔을 극복할 자원인 관계까지 모조리 앗아가니 말이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으면 살짝만 스쳐도 따갑다. 따가우면 어떤 행동이 튀어나올까.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상대를 아프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공격적인 태도 뒤에는 사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그 고통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꼭꼭 숨어있다. 이렇게 공격을 원인으로 대하지 않고 결과로 대하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달라진다. 이 단순한 프레임이 모난 나를 대하는 태도도 뒤집어놓았다. 내가 좀 찌질하고 모나게 굴어도, 쉽게 단죄하지 않는다. 그 안의 아픔을 발견하고, 아플 때 아파할 수 있게 기다릴 힘을 준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단순히 ‘왜 저래’에서 그치지 않고, 혹시 그 안에 어떤 고통이 있는가 하고 들여다보게 한다.
며칠 전 예상치 못한 일에서 갑자기 언성이 높아지고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더 이상 싸울 힘도 남아있지 않았을 때 잠시 멈춰 숨을 골랐다. 내 가슴에 꽂힌 아픈 말에 집중하지 않고 이 상황의 번역기를 돌려본다고 상상해봤다. 말이라는 건 어떤 경우에도 그 사람의 모든 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되뇌면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떠나서 저 사람의 언어로 이 상황을 읽어보니, 딱 이 두 마디가 남았다.
“내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아줘.” “나를 좀 도와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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