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나에겐 잊을 수 없는 비빔국수가 있다.

by 유재필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모서리를 접어둔 페이지처럼, 삶의 어느 지점에서 책갈피로 체크해 둔 순간들. 또는 ‘가장’, ‘최고’, ‘정말’로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삶에서 하이라이트 같은 명장면. 떠올리면 생각의 수면 위로 돌고래처럼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기억 말이다. 예를 들어 지난 무더웠던 수많은 여름을 떠올려보면, 유난히 ‘가장’ 지독했던 그해의 여름이 떠오르는데, 2018년 여름의 기억이다. 혹시 궁금하다면 그해 폭염을 검색해 보시길.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검색해 보니, 어느 블로그에서 누군가는 전설의 폭염이었다고 회자하고 있고, 나무 위키에서는 그해 폭염을 1994년을 뛰어넘는 극심했던 여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 지독한 폭염이 덮친 2018년 당시 나는 연신내 갈현동이라는 언덕 위 동네에서 책방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살던 집도 마침 책방 근처 옥탑이었다. 화가 잔뜩 오른 햇볕이 원산폭격처럼 옥상을 향해 맹렬하게 퍼부었고, 그야말로 집은 펄펄 끓는 가마솥과 다름없었다. 하필이면 에어컨도 없었던 탓에, 어느 하루는 나 자신이 마치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처럼 힘없이 흐물흐물 침대에 걸터앉아서, 젠장, 저것도 바람인가 싶은 뜨거운 열기나 실어 보내는 쓸모없는 선풍기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아 덥다… 너무 덥다… 더워서 죽겠다…’ 연신 중얼거리다 실제로 기절을 한 적이 있다. 완전히 졸도하듯이 침대에서 쓰러졌고, 시간이 한참 지나 의식을 차렸을 땐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 내가 왜 여기 누워있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정도였다. 말 그대로 졸았다가 아니라 졸도했다는 표현이 완벽한 상황이었다. 그 후에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LG 베스트샵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수중은 빈털터리였음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따위의 고민도 없었다. ‘우선 살고 봐야 할 거 아니냐’는 생존 본능으로 에어컨을 할부로 결제해 버렸다. 얼마나 더웠는가 말 다 한 거다. 그날의 기억을 더듬으면 할 말이 더 많을 것 같아서 다음 기회로 미뤄두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순간은 ‘가장 배고팠던 순간’이다. 아니 ‘가장 서러웠던 순간’이려나.

가장 배고팠고, 서러웠던 그 순간도 공교롭게 연신내에서 살 때이다. 삼십 대의 절반을 보낸 연신내를 돌아보면 나에게 참 진한 추억이 많다. 그런데 그 추억이 하나같이 서럽고, 힘들고, 배고픈 유별난 기억뿐이라 안타까울 따름이다. 2013년 정도쯤으로 기억한다. 직장도 없고, 돈도 없는 (지금처럼) 한결같이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를 조금 특별하게 기억하는 건, 그것은 바닥을 봤기 때문이다. 갑자기 바닥이라니. 집에서 보면 동전(잔돈)만 넣어두는 저금통 하나쯤 있지 않은가. 돈이 너무 없다 보니 휴면 계좌까지 뒤져서 돈을 짜내보기도 하고, 막판엔 더 이상 짜낼 곳이 없어서 최후의 보루 같았던 저금통 속 동전을 긁어서 하루하루를 연명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저금통의 바닥까지 보고 말았던 말 하자면 인생의 밑바닥을 기던 시절이었다. 저금통의 돈은 하루에 딱 이천 원만 꺼내 썼다. 당연히 그 돈은 생존을 위해 밥 먹는 데에 썼다. 다행히도 마침 집 근처 갈빗집에서 점심 한정으로 잔치국수를 이천 원에 파는 곳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매일 잔치 국수만 먹었는데, 사실 집 근처에는 삼천오백 원짜리 잔치국수를 파는 국수 전문집이 있었다. 그곳은 잔치국수, 비빔국수, 열무국수 등 갖가지 국수를 총망라한 말 그대로 국수 전문점이었고, 소문난 맛집이라 사람들로 항상 북적이던 가게였다. 어느 날 한번은 매일 이천 원짜리 잔치국수만 처먹고 지내는게 물렸다기보다는 너무 서러워서, 그동안 참아왔던 인내심이 무너지고 그만 방탕한 짓을 해버렸다. 저금통에서 이천 원이 아니라 천오백 원을 더 꺼낸 것이다. 그리고 국수 전문집의 삼천오백 원짜리 비빔국수를 먹으러 갔던 거다. 마침, 또 그날은 인생에서 기억에 남을 만큼 허기진 상태였던 터라 걸음이 급똥 마려운 놈처럼 빨랐지만, 도착해서 마주한 국숫집 입구의 광경은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 김빠지는 상황이었다.

배고파서 미칠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지. 줄을 서서 기다렸고,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겨우 자리만 차지했을 뿐, 5분이 흐르고, 10분이 흐르고, 20분이 흘러도 국수는 나오지 않았다. 또다시 배고픔의 후반전이 이어졌다. 배에선 꼬르륵거리며 울고 있고, 내 마음도, 내 얼굴도 눈물로 축축하게 젖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멀리서 서빙하시는 아주머니가 비빔국수를 들고 점차 다가왔는데, 배고픔에 영혼이 말라버린 탓일까. 그 모습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신기루처럼 현실감 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드디어 내 눈앞에 테이블 위로 국수가 놓였다. 국수가 눈앞에 보이기 무섭게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꺼내 들고, 면들 사이로 살벌하게 쑤셔 넣었고, 면을 한 젓가락 가득 힘차게 들어 올려 벌린 입으로 가져가서 한입 베어 물려는 그 찰나였다. 그릇이 움직이고 있었다. 뭐야? 그릇이 왜 움직여? 하고 당황하며 눈을 몇 번 끔벅거리는 사이 서빙 보던 아주머니가 내가 먹으려던 국수를 다시 뺏어 가더니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에게 줘버린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아주머니는 ‘아 내가 실수했네, (내 옆에 앉은 사람을 가르키며) 이 사람이 먼저 왔어~’ 하는 것이다. 나는 옆자리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아주머니가 뭔가 단단히 잘못 알고 있었다. 아까부터 함께 음식을 기다리고 있던 옆자리 사람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온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분은 나에게 그릇을 다시 슬쩍 밀어주면서 말했다.

“아주머니가 착각했나 봐요, 먼저 드세요.”

나는 허공에서 한입 삼키기 직전의 국수를 강탈당한 후, 어쩔 줄 몰라 하며 갈 곳 잃은 내 입과 턱이 느낀 수치를 감추기 위해 애써 태연한 척하며, 옆자리 손님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먼저 드세요…”

또다시 국수를 기다렸다.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바닥일 거라고 굳게 믿던 개미에게 지하가 대기하고 있던 것처럼, 끝인 줄 알았는데 기다림의 연장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시간이 흐른 후, 아주머니가 국수를 들고 다가왔다. 이번에는 확신했다. 나한테 오는 거라고! 저 국수는 내 비빔국수라고!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분명 내게 다가오던 걸음이 절묘하게 (마치 영화 속 극적인 장면의 슬로우 모션처럼) 몇 걸음 앞에서 급턴을 하더니, 이번에도 역시 나보다 한참 늦게 온 손님에게 국수를 줘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보자 정말 ‘이건 진짜 아니지’ 하며 울분이 터져서 큰소리로 ‘아줌마 제가 먼저 왔어요~ 아까도 제가 먼저 왔다구요!’ 소리치고 말았다. 일순 국숫집 안에서 깜짝 놀란 여러 눈빛이 나에게 몰렸고, 아줌마도 나를 봤다. 그 말을 듣고도 아주머니는 조금도 흔들림 없이, 또 한 번 완강한 목소리로 “아니야 저 손님이 먼저 왔어요~” 이러는 거다. 이 정도면 전생에 저 아주머니께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게 분명했다. 매장은 오픈 주방이었기 때문에 국수를 삶고 있던 남자 사장님도 홀의 사태를 드디어 파악했다. 사장님도 아주머니에게 ‘(나를 가르키며) 아이고~ 저 남자 손님이 먼저 왔어!’ 이렇게 일러주었지만, 아주머니에게는 소용없었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신념을 굽혀본 적 없는 정치가처럼, 자신의 철학을 끝까지 지켜내는 고집스런 예술가처럼, 수십 년 전장에서 살아남은 백전노장처럼 다시 한번 말했다.

“아니야~ (다른 손님을 가르키며) 저쪽 테이블이 먼저 왔어~”

전생의 전생에서도 내가 아주머니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게 분명했다. 어떤 잘못인지 모르겠지만, 이쯤 되자 쌓이고 쌓인 마음속 울분은 댐을 무너뜨리고 폭포 같은 눈물을 방류하고 있었다. 우선 너무 배고파서 울고 싶었고, 너무 억울해서 울고 싶었고, 지금 넉넉한 상황이면 그냥 개운하게 성질이라도 내고 가게를 나왔을 텐데, 굳이 동전을 긁어서 온 가난한 손님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할퀴어야 하냐고, 울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이 서른에 서럽다고 아무 데서나 징징거릴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사장님께 말했다. “사장님 저 그냥 다음에 올게요…” 그 순간 사장님이 나를 보던 애잔한 눈빛은 십 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그 후로 그 국숫집엔 가지 않았다. 실수로 국숫집이 있는 골목에 들어섰다가, 뿌리치기 힘든 냄새가 나를 끌어안으며 유혹해도 끝내 외면했다. 쓰라린 기억의 장소여서인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고, 그 고집불통 아주머니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전생에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배고픈 사람에게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어찌 됐든 (이걸 감사해야 할지) 한 끼의 음식이 배고픈 영혼을 얼만큼이나 쥐락펴락할 수 있는지, 특히나 의식주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식’이 얼마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깊은 가르침을 따끔하게 새겨주신 인생의 선생님이다. 그렇게 인생에서 가장 서럽고 배고픈 순간을 떠올리면, 기억의 수면 위로 자연스레 아주머니의 얼굴이 소름 돋게 솟아오른다. 그리고 항상 어떤 대화도 안 통할 것 같은 으스스한 도깨비 같은 표정을 하고선, 국수를 줬다가 늘 베어 물기 직전에 뺏어가는 괴로운 장면이 리플레이된다.
그때의 사건을 영향으로 맛있는 한 끼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나름의 철학이 머릿속 깊이 단단히 뿌리내렸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의 배경에는 모두 10년 전 연신내 국숫집 아주머니 덕분(?)이 분명하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며 지내고 있을지. 또 어디선가 주머니에 동전을 짤랑거리며 들어온 배고픈 어느 사내가 한입 베어 물기 직전의 국수를 뺐고 그러진 않겠지. 그날의 국숫집에서 강고했던 아주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지만, 절대 미워하진 않을 것이다. 모든 일이 다 먹고 살자고 하다 보니 그런 거 아니겠나. 먹고 사는 건 너무 중요하니깐 말이다. 마지막으로 전생에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지만 이만 좀 푸시고, 내 죗값은 뺏어가신 국수로 퉁치면 안될까. 다음 생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맛있는 잔치국수나 한 그릇 함께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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