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눈을 바라본다는 것

by 유재필

2022년 8월 15일 토트넘과 첼시가 붙었다. 런던 더비인 만큼 치열했다. 이날은 경기 내내 선수들도 선수지만, 특히 양팀 감독 사이에 신경전이 거셌다. 경기 결과는 2-2로 끝났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건 경기가 끝나고 감독, 선수들이 인사를 나누는 상황이었다. 첼시의 투헬이 토트넘의 콘테와 악수를 하다가 갑자기 콘테 손을 거칠게 붙잡고 놓지 않으면서 순식간에 돌발행동을 했다. 거의 육탄전 코앞까지 갔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소동이 끝나고 투헬이 인터뷰에서 ‘나는 악수를 할 때 서로 눈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콘테의 생각은 달랐다’라고 말을 했다. 투헬을 볼 때마다 그의 얼굴에 독버섯 같은 광기가 번져있다고 느꼈는데, 역시나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말하자면 괴인이다.

‘서로의 눈을 바라봐야 한다’니, 혹시나 나도 주변에서 투헬 같은 인간을 만난다면 재수 없게 콘테 꼴을 당하는 건 아닐지 살짝 걱정했다. 고백하자면 나도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때 대체로 눈을 바라보지 않는 편에 속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눈을 바라보지 않는 일’을 평소에는 의식할 때가 없었는데, 스스로가 사람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걸 비교적 최근, 그러니깐 책방을 시작하면서 알았다. 나는 손님을 맞이할 때 눈빛의 레이저가 내 눈을 조준하고 있는 듯한 사람을 만나면, 그 상황을 꽤 부담스러워하며 눈을 피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런 부담스러움을 아내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아내는 사람 눈을 피하는 것도 실례라고 알려주었다. 눈 마주치기가 정 그렇게 어렵다면 차라리 상대방의 미간이나, 인중에 시선을 두라는 조언도 해주었다. 그런 방법도 있었구나. 나는 나이가 마흔 살이 되도록 그런 ‘실례’도 모르고 그동안 사람들에게 잘도 ‘실례’를 범하고 살았구나. 정말이지 창피했다.

아무튼 어린 시절부터 눈을 마주치는 일은 내 인생에 두 가지의 경우에 불과했다. 어쩌다 갈아 마셔야 하거나, 조져버려야 할 치를 두고 ‘야릴 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연인에게 사랑을 ‘지저귈 때’이다. 즉 내가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눈을 바라볼 때는 ‘야리거나, 지저귀거나’였다. 이 두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 그리고 (못 배워서 창피하지만) 사람의 눈을 마주 봄이 하나의 예의라는 개념이 없었다. 내가 사랑을 지저귀는 상황도 아닌데, 어느 여인의 눈을 끈적거리게 바라보는 건 괜히 치한으로 몰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길 위에서 수컷들이 던지는 눈빛에 일일이 대응하다간 원치 않는 싸움에 휘말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님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건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손님하고는 싸울 일도 없고, 사랑을 나눌 일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참, 이런 말을 하기에는 손님하고 사랑도 나누었고, 결혼도 해버렸네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눈을 바라보는 것과 관련해 오래 묵은 불쾌한 기억도 있다. 이십 대 후반에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지낼 때이다. 오랜 기간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동창이 SNS 메신저​로 불현듯 연락이 왔다. 자기가 운영하는 사업의 웹사이트 디자인을 의뢰하려는데 만날 수 있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고향에 내려가 그 친구를 만나서 상세한 이야기를 나눴고, 대략의 견적을 일러주었다. 그런데 친구와 이야기하는 동안 어딘가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뭔가 했더니 이 녀석이 대화 내내 부담스러울 만큼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하는 것이다. 그 순간도 역시 두 가지 경우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던 나였기에 ‘이 녀석 뭐지? 게이인가?’ 또는 ‘싸우자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그 불편함을 꺼내지 않았는데 마침 대화가 끝나고 친구 녀석이 그것에 대해 먼저 말했다. 자신은 사람을 마주하고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그렇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면 이놈이 사기꾼인지, 거짓말하는지 눈을 보면 모두 파악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깐 이 녀석이 내 눈을 노려본 이유는 (나를 사랑했던 것도 아니고, 나와 한판 붙자는 의미도 아니고) 내가 견적을 말하면서 사기를 치는지, 아닌지였다. 참 한심한 새끼네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그 친구는 견적에 대해 고민해 보고 다시 연락해 주겠다고 하더니, 결국에 연락이 없었다.

앞에 말한 친구처럼 상대방이 사기꾼인지 구분하기 위해 눈에 집중하는 치들도 있고, 또는 대화의 올바른 자세로 아이컨택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상대의 속내를 샅샅이 간파하기 위한 아이컨택이든, 상대방을 향한 매너로서의 눈빛이든 어느 의미로든 눈을 마주하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 마음을 투영한다고 해서 섣불리 ‘저 친구 눈빛이 똘똘하구만’ 하며 신뢰하는 자세도 위험하다. 반질반질한 눈빛으로 머릿속에선 썩은 내로 가득 찬 놈들도 많고, 대다수 사기꾼의 눈빛은 세상 믿음직하게 반짝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눈을 바라보는 일도 적당한 수위와, 기술적인 부분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의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면 오히려 저 사람이 왜 저러나 불편하게 되고, 자연스레 대화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또는 눈은 바라보고 있다지만, 머릿속에선 본인이 할 말을 생각하고 있거나, 딴생각하는 것이 최악의 대화 자세가 아닐까. 정리하자면 눈을 바라보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대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열린 귀와 열린 마음이라고 생각하는데…(이 글을 읽은 분들이 앞으로 책방에서 제 눈에만 집중할까 봐 상당히 고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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