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느슨함이야 말로

by 유재필

‘늘 마무리가 왜 그래?’ 하고 물었다.

창피하지만 내 글을 읽은 아내의 말이다. 알고 있다. 잘 알고 있기에 ‘왜 그러긴, 뭐가 왜 그래?’라고 애써 반박하지 않는다. ‘늘 마무리가 얼렁뚱땅이네’ (뭐 그렇게 얼렁뚱땅 대충 쓰진 않았어~) ‘늘 끝에 힘이 없어’ (사는 게 피곤해서 그래~) ‘그래서 글 끝에서 뭐 어쩌라는 거야’ (뭐 어쩌지 않아도 돼, 누구한테 어쩌라고 쓴 거 아니야~) 하고 늘 이렇게 마음속에서 아내의 말을 조용히 맞받아치고 있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늘 마무리가 이 모양인 걸 말이다. 늘 그런 고충에 눌려서 얼굴 생긴 것도 이 모양인가 싶다. 하지만 다행인지, 아니면 저주인지 어떻게든 첫 문장은 시작한다. 그렇게 어려운 첫발을 떼고 달려보지만, 마지막엔 항상 어딘지도 모를 산에 올라서 한숨을 뱉고 있다. 마치 태어났으니 살긴 열심히 살았는데, 어쩌다 책방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 내 인생처럼 말이다.

지금도 이 글의 끝 무렵엔 또 어떤 산속을 헤맬지 걱정이다. 그럼에도 쓰고자 하는 마음은 변함없지만, 이런 마음 역시 다행인지 저주인지 혼란스럽다. 대체로 첫 문장은 기술적인 면보다 마음의 문제여서, 머리가 안 따라줘도 마음을 힘껏 밀어 보면 어떻게든 나아간다. 그리고 매 순간 막막하지만, 중간 지점도 어떻게든 흘러가게 된다. 그런데 마무리가 문제다. 멱살 잡아 겨우 끌고 온 글을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지 괴롭기만 하다. 야구 경기처럼 마무리 투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잘하면 승리도 바라볼 수 있을 듯한 경기인데 마지막에 고꾸라지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부디 승리로 마무리 지어 줄, 내 글에서도 그런 마무리 투수가 있었으면. 줄곧 벤치에서 앉아 체력이 비축된 구원 투수처럼, 내 글의 마지막에서도 상상력이 풍부하고, 머리가 팔팔하게 돌아가는 마무리 투수가 자리에 대신 앉아 변비처럼 막힌 글을 시원하게 뚫고, 깔끔하게 마무리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서글프게도 이 지긋한 순간에 나타나서 나를 구원해 줄 투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야구는 인생이 아니다. 인생도, 글도 구원 투수 같은 건 없다. 구원은 셀프다. 물도 셀프고, 글도 셀프, 마무리도 셀프다. 온통 셀프 천지다. 의지할 곳 같은 건 없다. 지금, 이 글도 도대체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지 모른 채 대책 없이 외롭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어쩌면 좋나. 그래도, ‘가야 해~ 가야 해~ 나는 가야 해~ 순이 찾아가야 해~’ (무슨 노래더라. 아! 훈아 형님 노래였구나.) 그래도 가야 한다. 순이 찾으러, 아니 써야 한다. 여기까지 읽어준 사람이라면, 이미 나에게 기대치 같은 건 없다는 말이고, 앞으로 또한 기대 없이 그런 느슨한 자세로 읽어주지 않을까.

‘느슨?’

그래, 나는 방금 문득 이 글을 이런 이야기로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슨함’ 말이다. 내가 아무리 용쓴다고 해서 글로 벌어서, 작게는 돈 고민 없이 교촌치킨을 시켜 먹는다던가, 나아가 동네 주민센터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 수상할 가능성도 개뿔 없다. 나름 성실히 연재한다고 해서, 내 글을 달력에 체크해가면서 기다린다거나, 연재가 며칠만 늦어도 항의할 그런 아름다운 사람도 없을 거다. 그런 상황에서 ‘아, 이 문장은 끝이 얼렁뚱땅이네’ 하고 휴지통에 버리고, 또 ’이 문장은 아름답지 않아‘ 하고 찢고 한다면, 그런 장면 상상만 해도 코미디 아닌가. 어차피 유재필의 글에 큰 기대가 없다는 것을 알고, 부담감을 내려놓을 줄 아는 느슨함이 필요하다. 나는 요즘 ‘느슨함’이야말로 글을 쓸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느슨함을 모르면, 허구 헌 날 완벽한 문장이 떨어지길 마치 기우제라도 하듯이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하여 하늘에서 미친 재능이라도 뚝 떨어뜨려 준다면 기다릴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결코 내가 원하는 바는 아닌 것 같다. 조금 느슨하면 어떤가. 완벽함이라는 허상을 좇다가 늙어 죽기에는 너무 아깝고 짧은 인생 아닌가. 어쩌면 느슨함이야 말로 구원이 아닐까.

이 글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따라주지 않는 머리 때문에 (늘 하던 식으로) 남의 글을 빌려 마무리해 본다. 과연 느슨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탁월한 마무리가 아닌가.

영화 『스톤』에서 내가 기억하는 명대사이다.
“타이틀이 없으면 어때서. 이세돌이만 프로기사고 박지성이만 축구 선수냐? 다른 축구 선수는 선수도 아니야? 다른 사람 인생은 인생도 아니냐?”

“좀 마무리가 얼렁뚱땅이고, 느슨한 마음으로 글 쓰고, 글이 좀 별로고 하면 어때서. 김영하, 김애란만 작가냐? 다른 사람들 글은 뭐 손으로 안 쓰고, 발로 쓴 대냐?”

오늘도 이렇게 발로 쓰며 얼렁뚱땅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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