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를 올리고 들어와 실내등을 켠다. 캘린더를 오늘 날짜로 맞추고 스피커를 켠다. 음악을 틀고 책이 놓인 매대를 살핀다. 창고에 가서 택배로 입고된 상자를 가져온다. 그 상자를 뜯고 책을 배치한다. 이렇게 몸으로 하는 큼지막한 업무들을 하고 나면, 그다음은 나지막한 업무를 할 차례다.
굴속으로 들어간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책방 메일로 접속한다. 광고메일도 있고 협업이나 인터뷰 요청에 관한 메일도 있다. 그중에 가장 많은 메일은 뭐니뭐니해도 입고 메일. 처음 일했던 2018년에는 하루에 5통 정도가 왔었다면 요즘은 하루에도 10통이 넘는다.
나날이 늘어나는 입고 메일들을 보면서 ‘이제 책 만드는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다. 몇 년 사이 독립출판이 많이 알려졌고 책 제작에 관한 수업들도 여기저기 생겨났다. 책을 만드는 작업 자체는 절차가 있어서 만들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방법 자체는 해볼 만하다. 내용은 페이지를 나누고, 표지는… 어렵다면 얼굴로 하면 된다. 호호호…
이 한 통의 입고 메일이 우리 책방에 오기까지를 생각해본다. 한 명의 생활자가 몸소 살아낸 이야기를 글 혹은 그림 혹은 사진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서 다듬는다. 인쇄하고 제본한다. 그 모든 과정을 무탈히 겪어낸 책 한 권이 입고 메일 한 통에 다시 담긴다. 한 통의 승부다. 어쩌면 이 일이 책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일 수가 있다.
입고 메일을 보낼 때, 자신의 책에 관한 내용을 첨부파일로 붙일 것이다. 그런데 메일을 열자마자 보이는 내용은 책 내용이 아니라 메일 내용이다. 책방 입장에서는 첨부파일을 보기 전에 메일 내용부터 읽는 것이다. 그리고 그 메일 내용이 우리 책방처럼 아담한 책방이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다. 가령, 책방 이름에 오타가 난다든지, 다른 책방 이름이 적혀있다든지, 텀블벅 링크를 통해 책 내용을 확인하라든지, 벌써 어디 신문에도 신간 소식이 실렸다든지 하면 부담스럽다. 그러면 나는 책방에 여력이 없어 입고를 거절한다는 답장을 보낸다.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라는 마음은 제작자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책방의 마음은 어떨까? 그건 바로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다’라는 마음이다. 좋은 책이란 건 무엇일까? 잘 팔리는 책? 오래 팔리는 책? 정해진 답은 없다. 책방마다 다르겠다. 다만 제작자의 만들고픈 마음과 책방의 소개하고픈 마음이 맞물릴 때, 책은 책방 덕분에 필요했던 애독자를 얻고 책방은 책 덕분에 필요했던 단골손님을 얻게 될 때. 그렇게 새로운 관계를 발생시키는 책이 좋은 책이 아닐까 한다.
“평소 좋아하는 책방인 스토리지북앤필름에 입고 신청합니다.”라고 운을 띄운 메일도 많은데, 읽어보면 ‘딱히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라는 반응이 들 때도 많다. ‘좋아하는’의 방향을 생각해본다. 좋아하니까 잘해줄게, 잘해줄 거니까 받아줘 같은 일방적인 마음이라면 관계맺기가 부담스럽다. 굉장히 부끄럽지만, 나도 예전에 사람을 좋아하는 일 자체를 좋아해서 한창 고백하고 다닐 때가 있었다. 돌아보면 그때는 내가 또 하나의 창의적인 고백을 했음에 만족하기 바빴지 상대가 필요로 하는 마음이 뭘까 생각할 줄은 전혀 몰랐다. 무지하게 무지했던 시절. 후회되기도 하지만 그때도 좋은 마음으로 그랬고 되돌릴 수 없다. 요 몇 년 사이에는 나의 무지를 알아차리게 되면 집으로 조용히 데리고 온다. 관련된 선구자들의 생각을 찾아서 읽고 보고 듣고 쓰며 내 무지를 조지곤 한다.
혹시 언젠가 혹은 다시 책방에 입고 신청을 하실 분들이 있을지 몰라 이 지면에 몇 가지 팁을 흘려보겠다. 우선 우리 책방은 “작갑니다~”하는 분들에게 매우 많은 부담을 느낀다. 대개 작가란 자신의 책이나 프로그램을 직접 다 만들어본 경험이 있고, 그 과정에서 동반되는 걱정과 열정을 모두 경험해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 책방에서 일하는 나와 나의 동료들도 모두 작가다. 하지만 그 경험을 내세우지 않는다. 작가라는 이름이 어떤 배지의 이름이라면, 그 배지가 독특한 지위를 상징하기보다 겸손한 내공의 표식이기를 빈다. 또 한 가지, 무턱대고 방문 입고를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책 입고하러 왔는데요.”라는 분께 “안녕하세요, 혹시 메일 주셨나요? 하고 답하면, “아, 다 받아주는 거 아니에요?”라고 되묻는 분들도 있다. 그러면 우리의 입고 방식을 안내해드리는데, 또 그런 분들은 그냥 책을 주고 가겠다는, 경우 없는 경우로 반응한다. 책방 일이 별로 일이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책방도 나름의 업무와 절차가 엄연히 존재한다. 한 권의 책이 소중하게 만들어짐과 같이 한 곳의 책방도 소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 절차를 건너뛰겠다면 우리도 그 책을 건너뛸 수밖에 없다.
책방직원이면서 동시에 제작자인 나 또한, 점점 더 알아가고 있고, 만들어가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다. 입고할 때 책방마다 안내하는 사항에 따라 문의하고, 입고가 승인되면 택배 혹은 방문으로 입고한다. 택배로 보낼 때는 메일로 발송했다고 소식을 전한다. 방문해서 입고할 때는 혹시 부재할 수 있으니 미리 전화를 드린다. “안녕하세요. 메일로 입고 승인받고 오늘 방문 입고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몇 시쯤 가는 게 편하실까요? 하고 말이다. 일하는 사람의 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입고하러 가는 제작자도 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 말 한마디로 마련하고 마련되는 친절. 과연 네모난 책이 사람 사이 도윽란 친절함보다 위에 있을까?
직원 입장에서는 택배든 방문이든 매일 책을 받고 뜯게 되는데, 이런 사소한 친절함 하나로 책이 기다려질 때가 있다. 그러니 우리 책방에 입고가 승인되고 직접 책을 맡기러 오실 거라면 오기 전에 꼭 전화를 주시길 바란다. 마련도 마련이지만. 막상 책방에 와서는 책방직원의 얼굴을 보고 말을 버벅대실 수 도 있으니 말이다. 책방직원치고는 내가 너무~ 여기까지 하겠다!
책을 보내는 택배 상자나 직접 가져온 가방 속에 음료수나 간식을 같이 넣어주시는 경우도 있다. 매우 많이 감사하지만 정말이지 그러실 필요가 없다. 그런다고 책이 더 팔리는 건 아니다. 물론 제작자 분들도 그 사실은 아실 테다. 아마도 책을 잘 부탁한다 이전에 ‘받아주어 고맙소’란 마음의 표현이리라. 그래서 빈손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감사하다. 그렇지만 부디 빈손으로 오시면 좋겠다. 대신 나가실 때 손을 채워가시면 좋겠다. 다른 책을 만나고 챙겨서 가시길 바란다. 그것이 가장 훌륭한 입고 센스다. 이분은 자기 책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 자체를, 동네서점과 독립책방과 작은 책방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시면 좋겠다. 책방에 필요한 것은 그런 분과 그런 기분이다.
그렇게 책을 구입해 가시면 이제 나의 차례다. 구입해가신 책 옆에 그분의 책을 진열한다. 사이좋게. 어울리게. 두 책을 함께 챙길 손님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