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은 잃어버린 후에야 돌이킬 수 있는 상실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잃어버릴 필요도 있다. 넓혀서 말하자면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처음부터 제자리란 건 없었다. 그러면 별일 아니라는 자세로 환기할 수 있다. 그동안 만나왔던 수많은 어려움은 사실 우리의 삶과 거리를 계속 조절해 가며 조금씩 스며들어 있고, 같은 크기의 행복과 불행에도 우리는 항상 불행을 조금 더 오래 떠올리고 있을 뿐이다. 늘 그렇듯 만남과 이별은 교차한다. 똑같은 크기의 상실은 없지만 매일 다른 크기의 사라짐만이 있다. 그러니까 어제와 똑같은 아픔은 한 번도 없다. 이것이 삶의 속성이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도 결국에는 내 마음속에 부유물처럼 떠다니는 많은 존재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과정 같기도 하다. 내가 타인에게서 상실되어 버리는 때도 있었는데, 서로가 깊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을 상실함으로써 나 역시 잃어버림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어떤 기억은 그냥 냉장고 구석에 그대로 두고 문을 닫아 버린 조금 오래된 채소 같았다. 나는 채소를 일부러 거기 두고 오래 꺼내지 않았던 날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