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메추리알 조림을 조졌다

by 원재희

미역국 실패 전에 메추리알 조림 실패가 있었다. 뭐가 먼저고 뭐가 나중인지 헷갈리지만, 뭣이 중하겠는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 중하겠지. 이상하게 그쯤 나는(이십 대 초반) 독립적인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던 거 같다. 여행도, 영화도, 음식점도 그때 혼자 참 많이 다녔었다. 거기서 멈춰야 했는데, 감히 요리까지 넘본 게 안타까울 뿐이다.

달걀은 나처럼 요리 못 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요리 재료가 된다. 그래서 유독 달걀 이야기가 많았다. 이번에는 조금 색다르게 메추리알이다. 매번 달걀 요리 실패로 지겨웠을 여러분에게 메추리알이라는 재료가 조금이나마 신선함으로 다가오길 바란다. 이런 말을 굳이 한 것이 민망하고 머쓱하다(괄호에 넣지 않고 밝히는 마음이다). 젤리나 사려고 들린 슈퍼에서 1판에 20개가 들어있는 메추리알 4판을 아주 싼 가격에 판매하는 것을 보고 갑자기 간장에 조리면 아주 맛있는 반찬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맛없는 메추리알 조림을 먹어보지 못했으니 그런 가당치 않은 생각을 했던 거다. 오늘 맛보게 될 줄도 모르고, 겁도 없이 메추리알 4판을 사서 집에 왔다.

물에 넣고 삶기만 하면 되는 달걀 삶기. 기름을 써야 하는 프라이보다 훨씬 쉬웠다. 반숙은 좋아하지 않고, 너무 완숙되어 몽고점처럼 푸른 빛을 띠는 노른자도 싫은데, 그 중간 지점을 언제나 정확히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메추리알은 작으니까 달걀보다 쉬울 거라 여겼다. 이것도 제대로 못 삶지 않았을까 기대하셨던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별 탈 없이 메추리알을 삶았다. 메추리알만 삶아 놓고 할 말은 아니지만, 순조로웠다. 손이 굼떠 알알이 껍질을 까야 하는 일은 조금 고됐다. 그래도 맛있게 완성될 조림을 생각하니 이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껍질을 깐 메추리알을 흐르는 물에 씻은 후 물기를 탈탈 털고 스테인리스 냄비에 와르르 부었다. 간장도 와르르 부었다. 진간장을! 붓다가 줄어드는 간장 양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이렇게나 와르르 부어도 되나 싶어서 멈췄다. 이때 정말 잘 멈췄는데, 실행의 방향이 조금 잘못돼 버렸다. 어쨌든 메추리알 높이까지는 채워야 할 거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간장을 와르르 들이부었다. 가스 불을 켰다. 이제 조려지기만 하면 완성이다. 뚜껑을 닫고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꾸욱 참았다. 식탁에 앉아 보글거리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때였다. ‘부글부글’. 보글보글을 넘어선 소리와 탄 냄새. 뚜껑을 열고 메추리알 조림을 마주하자마자 당황을 금치 못하고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헉”

하얀 메추리알이 간장 체험이라도 하는 듯 간장색이 되었고, 미처 머리 끝까지 담그지 못한 메추리알은 강한 태양에 선텐을 잘못한 거처럼 담긴 곳은 구릿빛이고 그렇지 않은 곳은 그대로 하얀 상태였다. 냄비 바닥은 더 가관이었다. 메추리알이 처참하게 눌어 붙어 예쁘지 않은 동그란 무늬가 냄비 바닥에 생겼다. 이런 꼴을 보고도 맛을 꼭 봐야 했냐고 과거의 나에게 묻고 싶지만, 맛을 봐야만 사태의 심각성을 여실히 느끼는 나는 결국 또 맛을 봤다.

“헉”

다시 헉하는 소리를 내뿜었고, 메추리알도 내뿜었다. 조렸어야 했던 메추리알을 조져버렸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메추리알 조림인가 간장인가’. 그래도 먹어보려고 애를 썼다. 우메보시처럼 밥 한 공기 위에 메추리알 하나를 올렸다. 살짝 베어 물고는 숨도 쉬지 않고 곧장 밥을 먹었다. 몇 번 씹지도 않고 ‘퉤’ 뱉어 버렸다. 물 한컵을 마시고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꺼내 밥 한 공기까지 비우고서야 간장의 짠맛도 사라졌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뭐다? 엄마가 오면 꾸중을 듣는 일. 매도 자꾸 맞으면 매집이 생긴다고 하잖나? 생겨버렸다. 요리 실력 대신 매집이.

혹시라도 인터넷을 찾아보지 왜 할줄도 모르면서 인터넷을 찾아보지 않을까 궁금한 분들에게 말씀드리자면, 핸드폰 기능이 전화와 문자, 사진 외에는 딱히 없을 때이기도 했고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아봤지만 보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잘못된 후에야 다른 것이 눈에 보였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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