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의 가장 끝에, 제일 작은 막내가 명왕성이라는 이름으로 있었다. 너무 멀고 작아서 제대로 된 사진도 없었던 명왕성은 2006년 더 이상 행성이 아니게 된다. 왜소행성으로 강등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어색하기 짝이 없게 ‘수금지화목토천해’에서 멈춰야 한다.
명왕성이 행성이 아닌 이유를 듣고 보면 또 그럴듯하다. 명왕성을 행성으로 간주한다면 앞으로 10번째, 11번째로 계속 늘어날 행성이 많아질 수 있다는 거다. 관측 기술이 발전하면서 카이퍼 벨트에 속하며 태양을 공전하는 명왕성 규모의 왜소행성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에리스다. 심지어 에리스는 명왕성보다도 컸다. 결국 천문학자들은 모여서 결정을 해야 했다. 수십 년간 우리의 식구와도 같았던 명왕성을 퇴출해야 하는가. 퇴출하지 않는다면 에리스를 10번째 행성으로 등극시켜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명왕성만 특별해야 하는가. 놀랍게도 당시 회의에 참여했던 천문학자 중 대다수가 퇴출 쪽으로 투표했다 한다. 그날로 명왕성 혹은 플루토는 왜소행성 134340이라는 번호를 부여받게 된다. 나름 카론, 닉스, 히드라 등의 위성을 거느리고 있었던 명왕성은 그렇게 지위가 하락한다. 물론 위성들 또한 이름을 빼앗기고 1343401, 134340II, 134340III, 이라는 번호로 식별되고 있다.
얄궂게도 명왕성이 행성 자격을 박탈당하기 6개월 전인 2006년 1월, 명왕성을 탐사하기 위한 뉴허라이즌스호가 지구를 떠났다. 명왕성이 좀 더 일찍 왜소행성으로 재분류 되었다면 이 프로젝트도 무산되었을까. 하지만 이미 뉴허라이즌스호는 지구를 떠난 상태였다. 그렇게 9년 동안 명왕성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2015년, 드디어 도착한 뉴허라이즌스호는 처음으로 제대로 찍힌 명왕성 사진을 보내왔다. 명왕성의 선명한 사진은 공개되자마자 화제가 되었는데, 표면의 얼음이 마치 거대한 하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를 버렸지만, 나를 찾아와준 너희에게 하트를 보내줄게.’ 차가운 우주, 태양계의 가장 먼 곳에서 막냇동생이었다가 이젠 남이 되어버렸다고 재분류한 지구인들에게 명왕성은 그렇게 말을 건넸다. 만약 뉴허라이즌스호 프로젝트가 좀 더 일찍 시작되어 천문학자들이 명왕성의 하트를 봤었다면, 그 결정이 달라졌을까. 아마 아니겠지.
명왕성은 여러모로 조금 특별한 존재다. 태양계의 암석형 행성(수성, 금성, 지구, 화성)을 지나 가스형 행성(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거쳐 다시 불쑥 나오는 암석형 행성이다. 또 황도 기준 17.8도 기울어진 궤도로 공전하는 행성이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기울어진 공전 궤도는 명왕성이 유일하다. 248년의 공전주기 중 20년은 해왕성 궤도 안쪽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사실 그때는 ‘수금지화목토천명해’였던 것이다.
명왕성은 1930년 클라이드 톰보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9개의 행성 중 유일하게 미국에서 발견된 행성이기도 했다. 하지만 플루토, 그리스 신화에서 하데스에 해당하는 저승의 신 이름을 붙인 건 영국의 꼬마였다. 그래서 잇따라 발견된 명왕성의 위성들에도 카론(죽은 사람의 영혼을 배에 태워주는 사공), 닉스(카론의 어머니이기도 한 어둠의 여신), 히드라(머리가 아홉인 뱀)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차갑고 어두운 태양계의 끝에서 외롭게 돌고 있는 암석 행성에 어울리는 명명이 아닌가.
또 다른 연결. 혹시 디즈니의 만화에 나오는 개 플루토를 기억하는가. 로브 라이너의 <스탠 바이 미>에서 꼬마들이 토론하듯, 디즈니 캐릭터 중 구피와 같은 ‘개’임에도 혼자 의인화되지 못하고 그저 애완견으로만 사는 묘한 존재. 그 풀루토도 명왕성이 발견된 바로 그해 1930년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행성과 캐릭터 사이의 정확한 관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소소한 것들투성이지만 이렇게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만큼 작은 존재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명왕성이 퇴출당하는 것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자기 손으로 퇴출을 선택했지만 천문학자들도 자신이 꼬마였을 때 외웠던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마지막 음절을 제거하는 것이 아무렇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뉴허라이즌스호가 명왕성을 촬영한 2015년, 내가 종종 가던 온라인 티셔츠 숍에서 느닷없이 뉴허라이즌스호 명왕성 접근 기념 티셔츠를 내놨다. 그전까지는 ‘맥주 줘!’ 이런 개그 티셔츠만 만들어오던 곳이 어쩐 일인지 명왕성을 앞면 한가득 박아 넣은 티를 만든 것이다. 물론 당장 샀다. 입을 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그거 달이냐,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은 그거 달이죠, 조금 더 디테일한 사람들은 <이티>에 나오는 바로 그 달이냐고 물어봤다. 그럴 때마다 명왕성이라고 대답하지만 “이젠 명왕성이 더 이상 행성이 아니고 왜소행성으로 강등되었는데 얘를 뉴허라이즌스호가…”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들은 이미 뒤를 돌아 가던 길을 갔다. 사실 왜소행성으로 강등된 명왕성에 짠한 감정을 갖는 인간들이라 봐야 지극히 소수일 것이다. 그러던 중 유일하게 회사 후배 H가 관심을 보였다. 에리스의 존재도 알고 있던 H에게 어떻게 에리스를 아느냐고 물으니 “우리는 명왕성 팬이니까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태양을 248년 주기로 공전하는 지름 2,370킬로미터의 암석 덩어리가 늘 다니던 길을 묵묵히 돌고 있는데 누군가 이름을 지어주며 자격을 부여했다가, 75년 만에 다시 자기네들끼리 쑥덕거리더니 자격을 박탈하고 이름도 빼앗는 것. 사실 우주의 나이로 봤을 때 그 자격이 부여되었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암석 덩어리는 자격이 있었건 없었건 여전히 자기가 다니는 길을 그저 오늘도 지나가고 있다. 지금도 검은 우주를 멀리서, 제법 큰 원을 그리며, 어쩌면 페일 블루 닷을 가끔 바라보며 태양을 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짠한 기분도 나 편하라고 갖는 일방적인 감상일 뿐이다.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긴 했지만, 코드가 맞아 대화 상대로 즐거웠던 H와는 퇴근 후 펍에도 종종 가곤 했다. 그중 아산에 있다가 서울로 상경한 브루어리304에도 갔었다. 그곳에 H와 간 이유는 단 하나, 플루토 블론드 에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플루토 블론드 에일은 브루어리304에서 양조한 고유 맥주다.
브루어리304가 아산에 있을 때부터 나는 플루토 블론드 에일이라는 작명에 매료되어 그 맥주를 어디서 마실 수 있는지 찾고 또 찾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내 반경에서 갈 수 있는 펍에 제법 납품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찾아가면 플루토는 없고 브루어리304의 다른 맥주만 있곤 했다. 그 맥주들은 특별하지 않았고, 때로는 실망스러웠다. 그러다 전주국제영화제 방문 중 객사길 거북선브루잉을 들렀는데 바로 거기 탭에 플루토 블론드 에일이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떨리는 마음에 아무에게도 권하지 않고 (누군가 맛없다며 산통을 깰까 봐) 혼자 그 맥주를 주문했고, 너무나 만족스러워 같이 온 사람들에게도 그제야 안심하고 추천했다. 그리고 그들도 만족했더라는 훈훈한 결말.
심지어 같은 해 6월,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무주산골 영화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 아산의 브루어리304에 가서 플루토 블론드 에일을 사오려고 SNS 쪽지로 문의했는데, 다음날 답이 왔다. 서울로 자리를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어 지금 아산은 문을 닫은 상태라고.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었지만 조금 기다리면 가까운 곳으로 올 테니 그건 기대가 되는 것이었다. 제발 강남만 아니어라. 그러더니 몇 개월 후, 서대문 영천시장 안에 브루어리304가 문을 열었다.
황금빛의 시트러스 계열의 향이 나는 화사하고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그 맥주를 왜 플루토라고 작명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명왕성에서 떠오르는 어떤 심상이 이 맥주와 일치하는가를 억지로 맞추려면 맞출 수도 있겠지만, 역시 그건 억지 같다. 다만 아산에 있을 때 주소가 304번지여서 브루어리304라 작명한 걸로 아는데, 304라는 숫자와 134340이라는 숫자가 어느 정도 애너그램으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어 그렇게 플루토를 소환했나 싶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것도 억지다. 잘 안다. 사장에게 한 번만 물어보면 해결될 것을, 그걸 하지 않고 있다.
후배 H와 나는 브루어리304의 마지막 손님이 나간 후까지 신나게 떠들며 맥주를 계속 마셔댔다. 한 해가 저물던 12월의 어느 날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둘 다 시장 골목으로 나섰다. 차가운 공기가 엄습했다. 근처 서대문역까지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아마도 술기운 때문이었겠지만 플랫폼까지 무언가에 관해 이야기하며 내내 웃다가 헤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후배와 다시 브루어리304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후배 H는 퇴사하고 다른 직장으로 옮겼다. 가끔 연락은 닿지만 사람 사는 것이 늘 그렇듯 잘 만나지 못하고, 연락의 주기가 길어지면서 서로 잊게 될 것이다. 지구에서 59억 킬로미터를 날아 명왕성에서 12,500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근접한 뉴허라이즌스호는 지금쯤 명왕성을 지나 카이퍼 벨트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가끔 명왕성과 뉴허라이즌스호의 조우를 상상할 때가 있다. 적막한 우주에서 한참을 떠돌던 우주선이 작은 암석 덩어리를 비로소 만나고, 허용하는 수준까지 가깝게 접근했다가 할 일을 다 한 다음 다시 각자 제 갈 길을 가는 시간. 그 후에도 하나는 여전히 태양을 돌 것이고, 하나는 앞으로 20년간 유영하며 성간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