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1층 구석에 위치한 택배보관함에 내 앞으로 온 택배를 찾으러 간 날이었다. 택배보관함 비밀번호는 층마다 달랐고, 나는 내 자리가 있는 8층의 보관함 비밀번호를 거듭 확인한 상태였다. 포스트잇에 적고 머리로도 외운 그 비밀번호를 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눌렀다. 하지만 보관함은 빨간 경고음만을 올렸다.
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경비아저씨가 소리쳤다. 거기 뭐 하는 겁니까! 나는 몹시 당황하여 대꾸할 말을 잠시 잊었다가 머뭇거리며 겨우 말했다. 제 택배를 찾으려고 하는데요. 비밀번호는 제대로 눌렀는데 이상하네요. 말끝을 흐리며 아저씨의 인중을 쳐다봤다. 아저씨는 얼굴을 붉힌 채 가까이 다가와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물어보지도 않고 비밀번호를 누르면 어떡합니까, 빨간 불 들어오면 골치 아픈데 짜증 나네 이거.
이 상황에서 누군가는 함께 언성을 높이거나 사회성을 발휘하여 상황을 모면할 것이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나는 경비아저씨의 월급을 생각했다. 그리고 소주 한 병을 사서 귀가하는 쓸쓸한 그의 뒷모습을, 그의 괴팍한 성정을 이기지 못해 떠난 가족들이 남겨 놓은 짐들을 대충 밀어놓은 채로 깡소주를 들이키는 굳은 살이 박인 손을 떠올렸다. 매달 어김없이 청구되는 각종 세금 고지세를 힘껏 외면해온 그 눈이 향하는 곳을, 그곳에 걸린 오래된 영광과도 같은 가족사진을 상상했다. 나는 아저씨의 푸석한 얼굴을 보며 생각을 이어간다. 아저씨는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새벽 출근을 해야 했던 거야. 잠을 못 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겠지. 사이렌 소리는 사람을 날카롭게 만들어.
아니면 이건 어떨까? 회사의 시스템은 불합리한 방향으로 세팅되어 있을 것이고, 그것은 건물 관리인에게 더욱 가혹하게 작동할 것이다.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에게 직접 화를 낼 수는 없으니까 오늘따라 운이 나쁜 저 여자에게 화를 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시스템의 수혜자에 가까워 보이는 저 여자, 그래봤자 젊고 나약하고 마음만 먹으면 다리 한 짝은 그냥 부러뜨릴 수 있는, 망가뜨리기 좋은 둥근 여자. 오늘 저 여자의 다리를 부러뜨릴 순 없으니 대신 그의 마음을 부수자고 마음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다른 생각이 불쑥 끼어든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폭발시키지 않았을 화를 만만한 젊은 여성에게 터트린 이유가 뭘까. 만약 지금 남성이 와서 비밀번호를 잘못 누르고 삐 소리를 낸다면, 그에게도 똑같이 화를 낼까? 사실 저 사람은 남자로 태어나 별다른 불합리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일지도 몰라. 그냥 여자가 싫은 사람일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경비라는 직업의 어려움을, 중장년층의 일자리 문제를, 사회의 온갖 부조리한 면들을 떠올리던 순간으로. 가만, 여기가 제자리가 맞나? 고민하며 아저씨의 인중을 마저 들여다본다.
아빠가 경비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위로를 건네듯 대꾸한다. 사람은 노동을 멈춘 순간부터 더 빠르게 늙는대요. 이 말을 하는 그들의 시선은 나의 인중이나 미간에 머무른다. 나는 마찬가지로 그들의 인중이나 미간을 보며 말한다. 정년 지나고도 일할 수 있는 거, 요즘은 그걸 말년 운이 좋다고 말하기도 한대요. 거짓말. 정년이 지나고 하게 되는 모든 일들은 결코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일뿐이다. 하지만 상대방도, 나도 눈을 보며 말하지 않았으므로 이 정도 거짓말쯤 모른 척하기로 한다.
아빠는 소리를 지르는 법이 없다. 대신 간결한 말과 행동으로 보복하는 사람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보복이 아니다. 눈에는 눈코입을, 이에는 이와 혀와 잇몸까지 망가뜨려야 끝나는 보복이다.
일주일에 한 번, 우리 가족은 마트 나들이를 갔다. 장도 보고, 수다도 떨고 중산층 정상 가족이라면 으레 경험했을 그 시간을 우리도 충실히 지나왔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행복을 가장한 순간에도 아빠의 보복이 있었다는 점이다.
장 보는 시간이 길어졌던 어느 날, 지루함을 못 이긴 동생과 나는 가위바위보를 해 진 사람을 때리는 놀이를 했다. 그때 나는 걸핏하면 우리 반에 찾아와 친구들과의 시간을 방해하던 동생을 미워하고 있었다. 가훈이 보복인 집안답게 나도 동생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다. 처음 한두 대는 가볍게 주고받았다. 꺄르르 웃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판에서 나는 보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진심을 담아 동생을 때리고 말았다. 동생은 울면서 아빠에게 갔다. 아빠, 언니가 내 뺨 때렸어. 아빠는 말없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얼굴을 바짝 마주한 채 은밀하게 속삭였다. 너도 얼마나 아픈지 맞아봐. 그리고 암전. 뺨은 얼얼하고, 귀에서 삐 소리가 울렸다. 택배보관함에서 요란하게 울리던 그 소리가 그날, 내 귀에서 울리던 그 소리와 같았다면 누가 믿을까.
한동안 나는 그날의 일을 묻어두었다. 그러다 더 이상 행복한 중산층 가족 행세를 할 수 없게 된 때, 가출의 근거로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가족들은 아무도 내 얘기를 믿지 않았다. 아빠처럼 점잖은 사람이 어떻게 그러니. 엄마는 눈을 흘기며 아빠의 지난날을 모욕한 딸을 거꾸로 모욕했다. 너는 없는 얘기 좀 지어내지 마. 아빠가 그럴 사람이니?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빠처럼 딸 예뻐하는 사람도 없다.
명확함을 규정하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일을 ‘믿지 못할 이야기’로 속단한다. 속단 당한 사람들은 중얼거리며 바깥으로, 저 끝으로 밀려난다. 그들이 돌아올 제자리는 없으므로 그들은 영영 바깥에서 중심을 흠모하며 때를 기다린다. 나의 이야기를 믿어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를. 하지만 이 세계의 명확함 분별 박사들에 따르면 지어낸 이야기를 지껄이는 불명확한 존재들에게 그’때’는 영원히 도래하지 않는다. 증명해야만, 박사들에게 증거를 내보여야만 이야기는 승인받는다.
내가 영원히 도래하지 않는 그때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경비아저씨는 소리치고 있다. 경비는 비밀번호를 정확히 입력했다는 내 말을 믿지 않고 딱 한 번 버튼을 눌렀다는 내 말을 믿지 않고 내 택배가 이 보관함에 있다는 사실까지도 믿지 않는다. 경비의 고성은 멈출 줄 모르고 울어대는 사이렌 소리처럼 반복적인 리듬으로 들려온다. 나는 크게 벌린 그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감당하며 서 있다. 꼼짝도 안 한 상태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투박하고 거친 저 손이 내 뺨으로 향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나는 아저씨의 외침이 꼭 우리 아빠의 보복 같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부적절하다. 어쩌면 저 사람은 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저 사람의 위치가 아니라 나의 위치를 떠올려야 해.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여자지만 남들 보기에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고 오랜 기간 중산층 행세가 가능했던 가족과 표면적인 불화 없이 잘 지내왔다. 당장 자살을 결심할 정도의 빚이 쌓여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 먹을 점심 메뉴를 떠올리며 종종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누군가는 내 삶의 단면을 보고 내가 제법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 문장 하나가 나의 삶 전체를 압도한다.
나는 말한다. 그날 아빠는 내 뺨을 때렸어. 그건 보복이었어. 아빠는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지. 마트에 가기 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어. 미술학원에 있는 동생을 데리러 간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아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내게 아빠는 아빠 기분 안 좋으니까 좀 닥치라고 말했거든.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어. 내가 지금 여기에서 울면 아빠에게 보복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거니까. 나는 아빠가 내게 더 심한 짓을 할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가, 얌전히 당하고, 아빠가 죄책감에 시달려 늦은 밤 내 방에 찾아 와 잠든 내게 이불을 덮어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릴 거야. 동그랗게 말린 등에 죄를 업은 채로 불을 끄고 나갈 때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짓겠지. 그리고 영원히 암전.
체육대회가 있던 날,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흐렸던 그날, 횡단보도에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의 바뀐 공기에서 조금 비린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그때 오른쪽 엉덩이 아래로 손길이 느껴졌다. 물컹하고 닿는 느낌. 나는 곧장 뒤를 돌아보지 못한 채 눈알만 굴렸다. 그러다 흘끗 돌아본 자리에 파리한 인상을 하고 안경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학교 반대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나는 그를 쫓아 뛰는 만용을 부렸다. 그는 점점 시야에서 멀어졌고, 나는 지각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우선 학교로 돌아갔다. 체육 선생님에게 횡단보도에서의 일을 말하니, 선생님은 체육대회에 참석하지 말고 구령대에 앉아 쉬라고 당부했다.
구령대에 앉아 엉덩이에 낯선 이의 손이 닿던 감촉을 복기했다. 끔찍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내 엉덩이가 꽤 보기 좋은가 하는 불순한 생각이 들었다. 저 선생님은 어떨까? 젊은 남자인 저 선생님도 내 엉덩이를 한 번쯤 쳐다봤을까? 선생님은 횡단보도에서 같이 서 있던 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횡단보도에서의 일을 묻는 중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벌어진 일을, 자신이 바로 곁에서 본 일을 이야기하면서도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그 아저씨가 재 옆에 딱 붙어있었던 건 맞는데 사실 엉덩이 만지는 걸 제가 보지는 못했어요. 선생님은 대꾸했다. 쟤 요즘 괜찮니?
과학 선생님은 매일 호통치고, 발바닥을 때리고, 물건을 집어 던졌다. 나는 반장이기 때문에 특별히 더 자주, 세게 맞았다. 하루는 과학 시간에 필요한 교구를 챙기려고 교무실에 갔다가 늦게 왔다는 이유로 뺨을 연신 맞았다. 두 대째에 휘청했고 세 대째에는 바닥에 엎어졌다. 선생은 다음부터 늦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은 뒤 씩씩대며 사라졌다. 그때 교무실에 있던 체육 선생님은 나를 일으키며 괜찮냐고 물었다. 씨발 저 년 죽여버릴거야 라고 읊조린 내 말을 들었던 걸까. 반질반질해진 교복 치마를 몇 번 가볍게 털고, 체육 선생님에게 목례한 뒤 교무실을 나섰다. 나는 그때부터 오랫동안 보복을 꿈꿨다.
체육 선생에게 다가가 그 아저씨를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육 선생은 일을 키우지 않는 게 좋겠다고 대꾸했고 나는 일을 키우는 쪽은 내가 아니라 그 아저씨였는데 왜 내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막 체육 선생 때문에 일이 더 커질 참이었다. 나는 울며불며 신고해달라고 소리쳤다. 황망한 얼굴을 한 선생은 내게 말했다. 증거도 없잖아.
경비 아저씨는 내게 택배 알림 문자를 보여달라고 말했다. 나는 선선히 그것을 보였다. 아저씨는 내게서 휴대폰을 앗아가 안경을 정수리 끝까지 올린 다음, 가늘게 뜬 눈으로 소리 내 읽었다. 사람들이 나와 경비 아저씨를 한 번씩 쳐다봤다. 아저씨는 비밀번호 할당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내선 번호를 남기고 자리로 돌아가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나는 그렇게 거짓말쟁이라는 죄명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옆자리 동료가 왜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웠냐고 물어봤다. 나는 이따 이야기해 주겠노라 말하고는 모니터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보복을 하기에 나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어.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거야. 지금 내가 보복을 한다면, 나는 그냥 미친 여자가 되고 말 거야.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다 아까의 일을 동료에게 털어놓았다. 동료는 동그란 눈을 한 채 거울 속 나를 바라봤다. 진짜야? 그분 되게 나이스하잖아. 믿기질 않네.
나는 아빠의 딸이기 이전에 보복하는 여자다. 누구보다 잔인한 상상을 하며 승리를 꿈꾸는 여자다. 앙심을 품고 매일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는 여자다. 하지만 보복은 언제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아니면 영원히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나는 나의 이야기를 믿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에게 벌어진 일들은 사실 모두 가짜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아니, 사실 모두 진짜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 대로). 지어낸 이야기 속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자신의 이야기조차 의심한다. 나도 이제 진짜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니 의심해도 좋다. 어차피 그 누구도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