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모르는 번호

by 유재필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걸려오면 일단 긴장부터 한다. 평소 죄를 많이 짓고 살아서? (도 맞는 말이지만) 익명의 번호 앞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핸드폰에 모르는 번호가 뜨면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한다. 당연히 그 고민은 불안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저 번호는 누구일까? 저 전화를 받는 순간, 어떤 피곤한 일에 휘말려버리는 건 아닐까? 간단히 말해 뭔가 큰일 나는 거 아닐까 하고 두려워진다는 말이다. 늘 다방면으로 많은 사람과의 관계에 얽혀 지내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면, 그래서 평소 모르는 번호가 핸드폰에 수시로 울리는 인간이라면 이런 불안함 따위는 다소 덜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일주일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날 찾는 전화도 고작 두 번 정도는 될까. 내 핸드폰 역시 말 수 없는 그 주인을 닮아 아주 조용한 편이다. 내 삶의 무료함이 내 핸드폰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 걸려올까 말까 한 이 모르는 번호가 핸드폰에서 울리면, 도대체 누가 날 찾는 건가 하고 불안해진다. 저 전화를 받으면, 절대 열어보아서는 안 되는 금기의 항아리를 호기심에 기어코 열어보듯, 그 속에서 마치 뱀이라도 한 마리 미끄러져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나는 매번 그런 불안의 크기보다, 혹시나 모를 어느 여인으로부터 ‘오래전부터 재필 씨를 너무 좋아했어요…’ 하는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환상과 복권을 긁는 기분으로 전화를 받아버리곤 한다. 인간의 어리석은 환상이 불안 속으로 뛰어드는 보기 좋은 예다.

나는 전화를 받고, 딱 “여보세요” 말만 하고, 상대방의 말을 기다린다. 그리고 상대방의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를 듣고, 전혀 낯선 목소리인지, 아니면 내가 알던 목소리인지 기억해내려 힘쓴다. 이쯤에서 고백하건대 내가 모르는 번호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의 실체란 바로 이것이다. 이 모르는 번호의 정체가 내가 모르는 사람의 번호라면 괜찮은데, 혹시 이 번호의 정체가 나의 지인일까봐, 나는 그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딱 ‘여보세요’ 한마디만 하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그리고 내가 알던 목소리면 그제야 ‘어, xx야 오랜만이다. 어쩐일이고’ 라던가 ‘이야~ 살아있네~’ 하는 인사 따위를 한다. 무슨 말이냐고 하면, 나는 사실 그동안 핸드폰 속에 지인들의 연락처를 지우며 살아오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래, 밝히건대 나는 그런 인간이다. 나는 이제는 내가 찾지 않고, 이제는 나를 찾지 않는 한 때 인연이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핸드폰 연락처 속에서 지워오고 있었다. 한심한 인간으로 보일까 싶어서 나의 주특기인 변명을 늘어놓자면 나도 맨정신으로 연락처 속 지인의 이름을 삭제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술이 한껏 취한 상태에서 그런 일을 저지르곤 한다. 나는 이제는 연락하지도 않고, 이제는 나를 찾지 않는 이름들을 평소에는 못하다가, 매번 술로 무너진 정신 상태로, 거리에서 걸음을 휘청이듯, 허공을 향해 고성을 지르듯, 길바닥에 깡통을 성질껏 걷어차듯, 그렇게 조금은 볼썽사나운 꼴로 인연들을 하나, 둘 걷어차버렸다. 그래서 내 핸드폰 속 연락처에는 100명을 넘어본 적이 없다. 이 글을 적으면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정확히 62명이 전부다. 그것도 연락하는 사이가 아니지만, 회사 업무로 관계되어 번호를 지워서는 곤란한 사람들, 그리고 친척들 번호를 제외하면, 내가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고작 스무 명 남짓이다. 나도 취중에 연락처 속 이름들을 하나 둘 잘라내고, 며칠이 지나면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고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한심한 짓을 평소에는 못하면서, 한심하게 술만 취하면 흐리멍덩한 눈으로 핸드폰 속 연락이 끊긴 이름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그 이름을 마음속에서 찢어버린다. 그렇게 갈기갈기 찢은 이름들을 마음속 어딘가 흘러가는 강물 위에다가 버리는 것이다. 이것도 병일까. 아니면 차라리 우울함도 그저 볼썽사나운 버릇에 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이름들을 볼 때마다 매번 관계의 무상함에 쉽게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진다. 그렇게 어딘가 금이 가고, 부서진 인연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면 어쩐지 그 속에 내 얼룩들이 어지럽게 비치는 기분이다. 모든 경우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개 나는 그런 얼룩을 마주하기 불편해서, 연락처 속 이름들을 지워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한심하게도 나는 그처럼 어지럽고 우울한 인생을 살고 있다.

끊어진 인연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한때 그렇게 붙어 다니고 친했는데, 언제, 어느 순간에 이렇게 관계가 끊어질 수가 있는 건지. 나 역시도 한 시절 그렇게 좋아하고 붙어 다니던 사람을 이제는 거의 생각나지도 않고, 그 시절 서로를 이어주던 관계 속에 자리했던 정이라던지, 따뜻함이 어떻게 이처럼 쉽게 사그라질 수 있는 건가 하고 말이다. 옆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던 인연들이 어느 순간 돌아보니 사라졌다. 어디로 간 건지 알 수 없고, 사라진 인연이 남겨놓은 빈자리는 내게 많은 물음을 던진다. 내가 현재 만나는 사람, 하는 일들, 느끼는 감정 등 아름답게 반짝거리며 삶을 풍성하게 채워줬던 이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연락처 속 이름을 지우듯, 그렇게 처분하고 정리해야 할 날이 오는 게 아닐까.

연락처 속에 사람들의 이름을 저장하고, 삭제했던 이 일련의 되풀이하는 정리의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이런 정리가 무슨 의미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어쩌면 이런 정리의 시간 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연락이 끊어진 과거에 한 시절 인연들의 무상함 속에 자라난 삶의 비애를 잘라내고 정리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과거가 물어오는 질문들에 대해서 스스로 궁리할 수 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서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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