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는 이어폰과 귀마개를 챙긴다. 폭신한 민트색 귀마개를 가방 속에 넣어두면 마음에도 쿠션감이 생긴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귀마개를 끼지는 않는다. 그때는 이어폰을 귀에 끼워만 둔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동안 바람에 날리는 바슬바슬한 풀 소리와 삐야삐요삐요뾰- 새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트는 것은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부터다. 무언가를 듣겠다는 목적보다는, 가감없이 넘어오는 생 소음을 가리기 위함이어서 주로 늘 듣던 것을 듣는다. <Ylang Ylang > 같은 연주 곡이라든지 쳇 베이커나 노라 존스 같은, 빡빡하기 짝이 없는 만원 지하철과 거리가 있는 여백이 있는 곡들로.
점점 지하철을 메우는 사람들로 인해 음악마저도 소음처럼 느껴지거나, 앞 사람의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이어폰을 넘어오는 지경이 되면 그제야 귀마개로 바꾸어 낀다. 손가락 끝으로 귀마개 끝을 돌돌 굴리다가 살짝 눌러 귀에 폭, 하고 끼워 넣는다. 곧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그 뒤부터는 내 숨소리만 들린다. 후~ 하. 후~ 하. 나도 못지않게 시끄러웠구나, 새삼 느끼며 정거장들을 지난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뒤통수를 본다. 그러고는 상상한다. 얼마나 많은 생각이 공기 중에 오가고 있을지. 눈앞에서 올라가는 닳은 신발 뒤꿈치를 보며 생각한다. 그간 어떤 걸음을 걸어왔을지. 오늘 하루만큼의 무게가 더해진 어깨에 시선을 얹어 보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한껏 측은해진다. 그 눈길을 하고서는 잠시나마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마음이 된다.
회사 건물까지 걸어 들어가는 길에는 늘 고개를 쭉- 빼 들고 가로수를 본다. 나뭇가지 틈으로 내리쬐는 햇빛과 새롭게 돋아난 이파리의 앳된 초록과 조금씩 수북해지는 숱을 헤아리며 어제 같은 오늘이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을 실감한다. 푸릇함으로 마음 한번 닦아내고, 심호흡으로 마음 한번 채우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나는 이런 소소한 습관을 잔뜩 가지고 있다.
언젠가부터, 삶은 뽀빠이 과자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와삭, 하고 어금니에 부스러지면 민낯 같은 설탕 맛이 퍼지면서 입 안 촉촉하게 침이 도는 별사탕 같은 순간, 삶은 그런 순간만으로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씹을수록 고소해지지만, 먹다 보면 목메기 마련인 팍팍한 라면땅이 생활의 모습에 가깝다는 것까지. 언제고 별사탕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삶을 뒤적여 별사탕 가루 같은 순간들을 찾기로 했다. 목메는 나를 챙겨주는 사람,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주는 사람, 힘들 때 기댈 곳을 내어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여야 한다는 것을 이젠 안다.
둥지에서 입만 벌리고 있는 새끼 새처럼, 별사탕 같은 순간을 누군가가 물어다 입에 넣어 주기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렇게 마냥 기대는 나에게 기꺼이 어깨를 내어준 이도 있었다. 하지만, 나만 그에게 기댈 수는 없는 것이었다. 관계라는 것은 수식처럼 공평했다.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는 조각들이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아무리 버틴다 해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네가 나에게 더 기댈 때 버틸 힘까지는 없더라도, 적어도 나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힘은 있어야만 했다. 나도, 너도, 우리도, 무너지지 않으려면. 계속 살아가려면.
알음알음, 나를 지탱하는 별사탕 가루 같은 순간들을 찾아 모았다. 나에게 확실한 불편을 피하는 최소한의 발걸음으로, 나에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사소한 손짓으로. 아무도 몰라 주어도 나만은 아는 순간들. 폭신한 귀마개를 끼고, 가다듬은 눈길로 사람과 나무를 살피는, 단비 같은 순간들로 나는 나를 살린다.
그날그날 기대할 무언가를 만들기, 점심시간에 평화로이 홀로 밥 먹기, 어처구니없는 일은 언젠가 쓸 글감으로 메모 해두기, 보들보들한 무릎담요 끝을 만지작거리기, 지하철에서 유쾌하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리면 바로 다른 칸으로 옮겨가기, 달짝지근한 아까시나무 향이 진하게 나는, 나만 아는 산책로에 서서 숨을 크게 들이쉬기, 도서관 서가 사이를 걸어 다니며 책에 파묻히는 느낌 만끽하기,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기, 남의 비위를 애써 맞추지 않기, 좋아하는 오이를 바로 먹을 수 있게 잔뜩 깎아 두기, 할머니에게 전화하고 서로 여러번 안녕~을 주고받다가 끊기, 보송보송한 강아지풀에 손 내밀어 쓰다듬기, 고요에 잠겨 명상하기, 요가하기, 귀여운 고양이 사진 찾아보기….
바지런히 별사탕 가루 같은 순간들을 모아 그때그때 털어 넣는다. 삶이 팍팍하지 않도록. 목메지 않도록. 촉촉하도록. 견딜 만하도록. 그리하여 무너지지 않도록. 계속 살아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