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금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하기 시작한 행동은 ‘고백하기’였다. 별의 별걸 다 고백했다.
‘사실-‘로 시작하는 고백들은 대체로 유치하고, 사소하고, 어이없고, 귀여웠다. 그 고백들은 대체로 실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악하기도 했다. 거절이나 곤란함의 사인을 보내지 않을 거란 예감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만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내가 ‘사실-‘이라고 말하는 습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5년쯤 전이었나. 일기장 상자를 뒤져보면 나오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다. 5년 전에 쓴 글은 반드시 나를 당황하게 할 테니까. 얼마나 당황스러울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지만 찾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거짓말에 능숙한 사람이라서 그걸 보고도 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한 채로 이 글을 마칠테니까.
얼마 전 친구와 대구에 다녀오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날 누구의 차로 갈지 친구에게 물어봤다. 내 차로 갈 확률이 높은 걸 알면서도 물어본 건 운전이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내 차로 내가 운전해서 경주에 다녀왔으니 이번엔 네 차로 네가 운전해서 가는 게 어떻겠냐는 속셈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질문처럼 생겼지만 질문이 아니라 유도신문이었다.
친구는 내 차로 가자고 했고, 내심 싫었지만 마지못해 알겠다고 했다. 그날 밤이 새도록 운전이 하기 싫었다. 아침이 돼서도 운전이 하기 싫었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가는 동안에도 운전이 하기 싫었다.
친구가 차에 타자마자 나 운전하기 싫어! 허리 아파! 고속도로 타는 거 싫어! 소리를 지르다가, 그치만 너니까 한다. 나 허리 아프다고 종일 우는소리 할 수도 있는데 짜증 내지 말고 허리 두들겨 줘. 야무지게 투정까지 부린 뒤에야 출발했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꺼내는 일. 그것이 불만이든, 슬픈 마음이든, 애정이든 꺼내서 보여주는 일. 그런 건 얼마나 중요한가. 그걸 잘 못 하고 살았다. 그냥 참고 숨기면 되는 줄 알았다. 어느 순간 없어지기도 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연습을 했다. 고백하는 연습을. 그럴 때 우리 사이에 더 크게 자라나는 ‘그래도 될 것 같은 마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일매일 고백할 것이다. 가끔은 실패할 거라는 예감이 들 때도. 조금 실망하고 조금 슬퍼져도 다음에 또 고백할 수 있는 나와, 그 고백을 빠짐없이 들어주는 당신을 발견하기 위해.
고백하는 연습, 그건 또 얼마나 나를 더 자라게 할까. 또 우리를.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