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삶이 예술이 되는 풍경

by 이건희

​다시 월요일이다. 마을버스가 굼뜨다.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겨우 지하철에 올라탄다.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어 괴롭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정치 뉴스, 인기 드라마, 웹툰과 모바일 게임에 열중해 있다. 일요일에 미련이 남아 늦게 잠든 탓에 아침이 익숙지 않다. 졸음이 쏟아진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 침대 위로 쓰러져 한숨 자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이스커피로 겨우 피로감을 밀어낸다. 회의에 참석해 몇 마디 말을 보태고 꾸역꾸역 밀린 업무를 처리한다. 퇴근길에도 졸을 서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저녁을 먹고 어영부영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잘 시간이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다.
오늘도 내일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된다. 그러나 반복되는 보통의 삶 속에 언뜻 예술이 끼어있다.
어떤 날은 지하철 승객이 적다. 사람과 사람 사이 간격이 넓어 쾌적하다. 책을 손에 든 채 읽는 사람을 발견한다. 무슨 책을 읽는 걸까. 왜 하필이면 그 책을 골랐을까 궁금해진다. 홍대입구역 4번 출구로 나가면 외국인 여자를 마주친다. 그녀는 킥보드를 타고 시멘트 바닥에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내면서 내 옆을 스쳐지나간다. 나는 그녀가 영국에서 비자를 발급받고 한국으로 왔을까, 추측해 본다. 아일랜드나 호주, 그도 아니면 캐나다에서 왔을지도 모른다.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패션모델로 활동하거나 어쩌면 소설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그녀의 삶은 나름대로 세련될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한다.
애경 타워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지점부터 볕이 든다. 햇빛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 구석구석을 비춘다. 불결한 기운이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숲길의 입구가 보인다. 볼록거울 안쪽에서 목련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이 살살 흔들린다. 커피숍이 있는 1층 상가에는 택배 상자가 가득 쌓여있다. 공사장의 인부들이 서로 고함을 친다. 동교동 삼거리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얀 머랭 같은 구름이 떠 있다. 주차장 담벼락의 그라피티가 보인다. “UFO는 실존한다.” 락카로 쓰인 문장을 보고는 유에프오, 유에프오, 하고 중얼거려본다. 횡단보도에서 검은색 시스루 블라우스를 펄럭거리며 바쁘게 뛰어가는 여자, 민무늬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커다란 보더콜리를 산책시키는 남자가 생경하게 다가온다. 골목길 식당과 편의점을 지나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른다.
점심 도시락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메뉴가 매일 바뀐다. 날마다 어떤 음식을 먹게 될까 기대하는 설렘이 있다. 먼저 출근한 직장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한다. 지난 주말에 뭘 했는지, 요즈음 어떤 것에 푹 빠져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일이 잘 풀려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둔다. 홍보한 제품이 입소문을 타고 판매고를 올리고나 가볍게 던진 합작 제안에 긍정적인 답변을 받기도 한다. 계획한 프로젝트가 차질 없이 착착 진행된다. 마우스 전원을 끄고, 책상 안쪽으로 의자를 밀어 넣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회사 건물을 나선다. 아늑한 집에 도착해서는 햅쌀로 지은 밥을 먹고, 강아지와 함께 동네 한 바퀴를 걷는다. 수영장에 가서 수중 트레이닝으로 칼로리를 소모한다. 얼마 전에 지인이 추천해 준 영화를 보고, 다음날이 되면 영화 주인공처럼 시집을 꺼내 읽는다.
고만고만한 날들이라고 해도 자세히 살펴보면 제각기 다른 풍경을 품고 있다. 짜릿한 행운을 갈구하기보다는 싱거운 행복을 마음껏 향유한다.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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