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설거지를 대신 해주는 식기 세척기라는 문명의 이기가 있다고 하지만 아직 써본 적은 없다. 나는 어제도 설거지를 했고 그제도, 오늘도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는 매일매일 하는 것 중에서도 꼭 매일매일 하는 일이다. 매일매일 밥을 먹기 때문이다. 어쩌다 외식을 해서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았어도 과일이나 물, 커피, 간식 같은 걸 먹기 때문에 설거짓거리는 늘 있다. 뭘 먹고 나서 그때그때 설거지를 하면 접시도 몇 개 안 되고 간단한데, 매번 그렇게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번 밥이나 후식 같은 것들을 먹고 나면 식기와 컵, 접시, 조리도구들이 싱크대에 꽤 쌓여있다. 그런 건 금방금방 쌓여버린다.
설거지는 늘 내게 말하자면 인생의 난제 같은 것이었다. 인생에는 어려운 일들이 정말 많은데 설거지도 그중 하나였다. 내가 겪어야 하는 필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라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밥을 먹었으면 설거지를 해야 함.’
필연적이고 근본적이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설거지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특히나 연속해서 같은 메뉴를 먹으면 약간 우울해지고 마는 나 같은 사람은 집에서 밥을 해 먹을 때도 점심과 저녁 메뉴를 다르게 먹고 싶어 하기 때문에 조리도구도 여러 가지를 쓰게 된다. 그만큼 설거지할 게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설거지를 하면서 문득 터득한 게 있다. 말하자면 ‘설거지를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요령’인데, 대단한 건 아니고 생각만 조금 바꿔보는 것이다. 평일 아침 방송에서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알려주는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꿀팁은 아니다.
그동안 설거지를 할 때 설거짓거리를 나는 설거지를 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봤었다. 그러니까 내 노동력과 시간을 써서 수행해야만 하는 과업으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다 요사이 어느 날에 설거짓거리 중 하나인 접시에게 말을 한번 걸어보았다. “덕분에 냄비째로 먹지 않을 수 있었어. 음식을 깔끔하게 담아 먹을 수 있었지. 잘 씻어줄게.”라고. (이상한가!?) 그런 다음 국자에게도 말을 걸었다. “덕분에 뜨거운 국을 숟가락으로 여러 번 뜨거나 맨손으로 뜨지 않아도 되었어. 넌 정말 유용해. 유능하고. 너도 말끔히 씻어줄게.” (!?)
물론 속으로 말했다. 소리 내 말하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동창회 같은 곳에 가서 친구 한 명 한 명 만나 인사를 나누는 것처럼 접시, 국자, 숟가락, 젓가락 집게, 냄비 프라이팬 등등 여러 설거짓거리들에게 말을 걸고 하나하나 씻어주다 보니 어느새 설거지가 끝나있었다. 조리와 식사에 필요한 도구들 하나하나를 살피며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기도 하고 제자리를 찾아 정리도 깔끔하게 해주고 나니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힘들고 귀찮기만 했던 설거지 시간이 나만의 힐링 타임이 되었다기보다는 덜 힘들고 덜 귀찮은 설거지 시간이 되는 경험이었다. 설거지는 여전히 힘들다. 아무튼 그 후로 종종 그들에게 말을 하며 설거지를 한다. 나름대로 효과가 있다. 기름기 많은 그릇이나 양념이 눌어붙은 프라이팬에게 다정하게 말하기는 아직 어렵지만.
아무튼 쌓여있는 설거짓거리를 보다 보면 언제 저 설거지를 다하지, 귀찮아서 인상이 찌푸려지지만 일단 싱크대 앞에 서서 접시1, 접시2, 국자, 숟가락1, 젓가락1, 젓가락2, 컵1, 집게, 냄비1, 냄비2, 컵2, 프라이팬… (숟가락2는 어디 갔을까)… 이렇게 하나하나 설거지를 하다 보면 어느새 설거지가 끝나 있다.
그렇게 설거지를 하며 알아가고 있는 게 있다. 무슨 일이든 하나하나 하면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인생이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