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비가 내렸다. 새로 산 코트가 다 젖었다. 나는 바삐 걸었다. 문득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어떤 여자와 남자가 골목 모퉁이에 서서 서로를 마주 보며 있었다. 남자는 초콜릿을 들고 아이처럼 웃었다. 그런 일들이 눈에 밟혔던 게 언제였을까. 애인은 여전히 아이처럼 웃는다. 미안하게 자꾸만 웃는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자꾸만 우스워진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나는 젖을 줄 모르는 사람처럼 자꾸 눈물이 났다. 다다르니 처음 보는 길이었다. 어두웠고 무서웠다. 나약한 마음이 드니 등골이 낭떠러지처럼 깊어진다. 아무도 나를 위해 뛰어들진 않을 것 같고. 나도 나를 안아줄 수 없는 하루였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훌훌 털길 바란다. 나의 집. 작은 사막. 이따금씩 눈꽃보다 먼저 피는 애인과 이 겨울을 날 수 있다면. 그리고 계속 걷는다. 비는 환상이었나. 젖은 어깨는 무얼 위한 꿈이었나.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너무 오래 잠들어 있었던 다리를 일으켜야 한다. 영문을 모르는 사랑처럼, 아름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