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를 오랫동안 좋아해 왔다. 취미로 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장기판을 사오면서인데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 장기부에 들어 가면서부터다. 토요일마다 방과 후 과정으로 장기 수업을 들었다. 처음엔 장기를 가르쳐 주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장기부 부원들이나 선생님과 함께 대국을 뒀다.
장기는 상대방의 왕을 잡으면 승패가 나는 경기다. 승리를 위해 특정한 규칙으로 움직이는 말들을 사용해서 진행되는 게임이며, 한국의 체스라고도 불린다. 기물 총수는 32개. 장기의 독특한 특징은 처음부터 졸(卒)을 좌우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인데, 심지어 졸(卒)의 규칙은 앞으로 전진밖에 할 수 없으며 이 점 역시 상당히 특이하다. 더불어 다른 기물들은 모두 초기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만 마(馬)와 상(象)은 서로의 위치를 바꿀 수 있고 반드시 양쪽 측면에 마(馬)와 상(象)을 하나씩 나란히 두어 균형을 맞춰야 한다. 장기는 바둑과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따금 나이에 따라서 연장자가 한나라를 잡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국이라는 자리를 깔고 많은 사람 앞에서 경기할 때는 최대한 공평하게 대국을 진행하기 위해 실력이나 연령에 상관없이 진행되기도 했다. 다행히도 방과 후 수업에서는 선생님을 포함한 모두가 공평하게 대국을 치를 수 있었다.
장기는 모든 말들이 전부 기동성이 좋아서 작정하고 방어만 하면 뚫을 수가 없다. 나는 늘 공격하는 쪽보다 방어하는 쪽이 마음 편하고 좋았기 때문에 장기를 진심으로 즐길 수 이었다. 게다가 대장 기물이 궁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한번 위기에 몰리면 엄청 쉽게 끝난다는 점 역시 장기게임의 긴장감을 크게 줄여준다. 그래서인지 적당한 긴장감은 좋으나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장기가 체스나 바둑에 비해 가볍게 오래 두기에 좋았다. 체스의 경우는 왕이 밑도 끝도 없이 도망칠 수 있기 때문에 긴장감이 계속 유지된다. 반면에 장기는 대장이 도망칠 수 없다는 특징 때문에 다른 기물로 점점 수비벽만 쌓아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곤 한다. 물론 방어적으로만 게임을 하다 보면 답답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인생의 수비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임하면 이 게임의 진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다른 게임에선 왕도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데, 그것과 비교되게 장기에선 왕이 제대로 하는 것도 없이 매우 약하니 재미가 없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양쪽의 왕이 마주 보면 비기는 것도 장기에서만 가능하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게임에서 비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는데, 나는 비기면 반쯤 이기고 나머진 진 것 같은 그 아리송한 기분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발전해서 그 사람이랑 다시 한번 대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꼭 들곤 했다.
대국을 두다 보면 일부러 알을 세게 내리치거나 놓자마자 낚아채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상대방이 물러 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많고, 이런 태도로 인해 곤란해지는 경우도 은근히 많다. 상황이 악화되면 상대방의 신경을 긁거나 훈수를 두면서 결국 시비가 붙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이유로 옛날에 장기를 좋지 않게 보는 어른들도 많았다. 그래서 동네에선 바둑을 제외하고는 장기 종류의 게임을 두는 것을 쉽게 보지 못했다.
아버지와 경기할 때면 나는 무조건 지곤 했다. 아버지를 단 한 번이라도 이길 수가 없었고, 그는 여태 딸을 위해 한 번도 져준 적이 없었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왜 딸에게 한 번도 져 주지를 않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장기는 일부러 져 줄 수가 없어. 방어하는 게임은 상대방이 수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에 공격만으로는 이길 수가 없다고. 그렇기에 결국 장기는 물러줄 수는 있지만 져줄 수는 없는 게임이야.”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물러주는 것도 져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나는 아빠에게 수도 없이 물러 달라 말했는데, 그는 이미 몇 번이고 그만의 방법으로 나에게 져준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나를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자식을 이기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나는 오랜 시간 아버지에게 지는 법을 배웠다.
매년 방과 후 수업의 마지막 날이면 늘 선생님과 대국을 뒀다. 교실에서 부원들을 포함한 전교생의 친구들에게 동그랗게 둘러싸여 꽉 끼는 의자에 태연한 척 앉아있자면, 늘 심장이 방방 뛰었다. 인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들이었다 졸업반 마지막 대국에서 기물들을 어디에 어떻게 뒀는지는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래 고심하던 선생님의 모습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적당히 주름진, 기미가 가득한 힘 있는 가지런한 심술 점 같은 것들이. 은색의 얇고 가벼운 안경을 툭툭 치던 경쾌한 두 번째 손가락도. 나에겐 그 시간이 정지된 화면처럼 남아있다. 모든 부원들을 제치고 올라오면 마지막 대결 상대가 되어 주는 건 언제나 선생님이었다. 용기를 내 공격했을 때, 그 짧은 1분의 시간이 대국을 치른 몇 시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아마도 마지막 공격이 이루어지리라는 사실을 말을 두면서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선생님의 말들은 피할 길 없이 꽉 막혀 있었고 초조하지만 차분하게 대처하는 선생님의 미간은 적의 말들에 둘러싸인 왕의 표정처럼 초연해 보였다.
그날 경기에서 이긴 나를 앞에 두고 선생님이 해 주신 말이 있다. “늘 방어만 하는 것처럼 보여서 상대방을 안심시키지만, 누구보다 적시에 날카롭게 공격하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나는 기물을 사용하는 모든 게임 중에서 가장 수비 친화적인 게임이 장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장기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담인데 축구를 보면서도 늘 수비수에게 눈길이 간다. 홍명보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지금은 김민재를 응원하고 있다. 피지컬이나 스피드를 떠나서 공간을 잘 지배하는 선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신력이 가장 중요한데 그들의 빈틈없는 안정감 또한 좋아한다. 어쩌면 나는 인생을 늘 수비수와 같이 장기의 마지막 대국을 대하는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늘 용기를 내야 하는 일 앞에서 적당히 수비하고 그것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온몸과 마음을 바쳐 수비를 해 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사람을 살고 있다. 물론 공격수처럼 골문을 두드리는 용감한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언제든 갑자기 찾아오는 인생의 시련이나 적의 공격 앞에서 후회 없이 내 자리를 지켜온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수비만 해오던 내가 공격을 시도했을 때의 그 위력을 나는 대국을 통해 믿게 되었다.
한동안 나는 장기부 부장을 맡아 방과 후 수업을 준비하고 정리하는 모든 것을 담당했다. 대국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에 가만히 서서, 펼쳐져 있는 장기판과 기물들을 보며 나는 늘 그날의 대국을 떠올리곤 했다. 삶에서 지는 기분을 느낄 때마다 내가 그날의 대국을 떠올린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알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