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순간 연두 | 인간은 무겁고 몸은 가볍다

by 연두

소은 님은 움직임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움직임 수업에서 나는 움직이면서, 소은 님을 보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에 둘러싸여 잘 움직이지 못하는 나와는 달리 움직이는 순간에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소은 님을 보고 협업을 하게 된다면 소은 님과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만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나는 움직이며 느끼는 것들을 그림 작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당연히 처음엔 나 자신이 직접 움직이며 느낀 것들을 수집해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용 수업에서 움직여보고 나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움직임 속에서, 나는 개인적인 경험을 표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소은 님에게 함께 작업할 수 있는지 물었고 다행히 그는 흔쾌히 내 제안을 수락해 주었다. 이렇게 작업해 본 적은 처음이라 나는 설레고 긴장이 되었다.

열흘쯤이 지난 볕이 아주 뜨거운 여름 한낮에, 나는 평창동 어느 스튜디오에서 소은 님과 만났다. 그는 무척 진지하게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해 주었다. 덕분에 긴장감을 슬쩍 뒤로 미뤄두고 나도 집중할 수 있었다. 작업을 이해하고, 함께해 준 소은님에게 고마웠다.

우리는 작업에 대한 개요와, 움직임으로 표현할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림과 무용은 소리와 글자로 말을 하지 않는 비언어적인 표현임에도 오히려 어떤 순간에는 더 솔직하고 순수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느꼈다. 소은 님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가 제시한 주제 안에서 그는 신체와 공간을 조정하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움직임이 잠시 멈추면, 내가 직접 움직였던 게 아니지만 나 역시 멈추고 무언가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움직임을 시작하고 그 과정 속에서 소은 님은 점점 더 움직임에 몰입된다고 말했다. 움직이고 감각하고 생각하며, 다음 심상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소은 님은 수행자, 나는 수집자였다.

수행자인 소은 님이 만들어내는 움직임과 그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시공간에 수행자인 나 역시 온전히 몰입했다. 그가 움직여 만드는 시공간 속에 나도 함께 있었다. 어떤 구성이 될지, 어떤 공간에 놓일지,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 시공간이 소은 님의 시공간에 동화되는 느낌이었다. 그건 이해의 영역이 아니었다. 이해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림 앞에 서서 어떤 말이 없이도 그림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아무 말 없는 그의 움직임 앞에 서서 그걸 바라보는 나도 그랬다. 말없이, 충분했다.

인간은 무겁다. 그에 비해 몸은 의외로 가볍다. 움직이는 소은 님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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