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몇몇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연두 씨는 상냥한 사람인 것같아요. 친절하시네요. 같은 말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작품으로만 보다가, 실제 작가를 직접 만날 때가 있다. 작품을 보고 상상했던 작가의 이미지와는 다른 경우들이 있었다. 그럴 때도 역시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나도 창작물을 만들어 발표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걸 보고 나에 대해 나름대로 상상해볼 테니 말이다.
아무래도 타인을 대할 때의 나와, 창작을 할 때의 나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타인에게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나와, 작업실에서 온전히 몰입해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나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는 나 그리고 내가 만드는 창작물이 어쩌면 가장 솔직한 내 모습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를 모르고 나를 만나지 않은 사람이 내가 만든 창작물만을 보고 상상해보는 내가 어쩌면 진짜 나에 더 가까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미술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난 요즘에는 학교를 다닐 때보다 다른 분야의 창작물들을 접하는 일이 많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하고 일부러 그런 걸 찾아다니기도 한다. 다른 분야의 창작물들을 접하다 보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지점들이 보인다.
지난 7월에는 속초에 가서 장기하 콘서트를 보고 왔다. 칠성조선소 2층에 마련된 무대에는 장기하 님과 두 명의 세션, 이렇게 세 명만이 등장했다. 무대는 관객과 가까웠고, 최소한으로 구성된 무대라서 목소리와 연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무대와 관객이 서로 와닿고, 가닿을 수 있었다. 최소한이지만, 아니 오히려 최소한이어서 충분했다. 그리고 장기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만큼은 그가 솔직한 사람인 것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고, 공연이 끝났을 때는 깊은 밤이었다. 나는 비가 내리는 속초 밤거리를 걸었다. 장기하의 공연처럼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충분함으로, 진심을 담아 솔직하게. 내가 그린 그림을 보는 사람이 진실한 나를 느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