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떨어지면 잡은 뒤에라도 놔줘야했던 어린 술래, 더는 해 떨어지기가 안 무섭다길래 수가 생겼나 봤더니, 여긴 해 떨어지고부터 시작이다. 홍대. 말대로 홍익대는 아니고 그 주변까지 애매하게 일컫는다. 나는 그나마 조용한 곳에 원룸을 잡았지만, 밖을 조용하게 걷기란 쉽지 않았고, 걷다가 걷다가보니 다름 아닌 홍익대학교 안.
들어있던 학생들이 밤의 간판들 사이로 빠져나오면 나는 강의실 불들이 꺼진 홍대 안으로 들어간다. 개강한 지 얼마 안 된 때라고 학교는 텅 빈 밤도 신났다. 걷지만 홍익대학교는 별 볼 일 없다. 산을 빌려 만든 학교라 좁고 건물들이 복잡하다. 산 때부터 서 있었나 플라타너스들이 건물과 서먹한 자리다툼을 벌인다.
굵기로는 유명한 플라타너스 나무대는 무얼 기다리든 문제 없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올려다본 가지들. 대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은, 가지뿐인 제 몸을 흘릴 듯 가늘다. 아무 연락도 오지 않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이라도 찍어줘야겠다. 우습게 깨진 내 핸드폰 액정에 나뭇가지들이 실핏줄이 나듯 겹쳐진다. 사진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뭇가지 끝에 작은 열매 하나씩이 달려있다. 나뭇가지는 잘 기다렸다.
다시 학교를 빠져나와 집으로 가기란 또 조용하지 않다. 열매 같은 불빛들. 그 나뭇가지 사이를 뛰노는 청춘들. 해 떨어지는 게 그렇게 아쉬웠으니 홍대가 얼마나 신나겠는지. 실핏줄 같은 나뭇가지에 열매 하나 터지고 나니 나도 잠깐 놀이터로 보였다. 그러나 불빛 사이로 뛰어들 마음이 하나도 없다. 나는 스물 아홉이다. 어두운 쪽으로 걸으며 술래에게 저기 녀석이 숨었디고 속으로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