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라는 가수를 언제 처음 알게 되었냐하면 이십 대 중반 어느 바(bar)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이다. 당시 그 가게 사장님이 김민기의 ‘새벽길’을 좋아해서 자주 틀었는데, 곡을 듣는 순간 (정확히 ‘곡’이 아닌 ‘목소리’를 듣는 순간) 꽂혀서 이거 무슨 노래, 아니 이 사람 누구지? 했던 기억이다. 그렇게 김민기라는 가수를 알게 되었다. 그동안 살면서 고음을 내지르는 가요만 따라 부르며 좋아할 줄 알았지, 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가수에게 그처럼 푹 빠졌던 건 처음이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 또한 나를 사로잡는 데 한몫했지만, 그보다 인상적으로 느꼈던 건 새벽길의 가사였다.
새벽에 일어나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가보세 흠…
구둣방 할아버지 벌써 일어나 일판 벌려 놓았네 흠…
밤새 하늘에선 별들이 잔치 벌였나
어느 초라한 길목엔 버려진 달빛 고였나
희뿌연 바람이 헤진 옷새로 스며들어 오는데 흠…
해말간 새벽길 맨발로 걸어 가봐도 좋겠네 흠…
두부장수 종소리 깔린 어둠을 몰아가듯 울리네 흠…
밤새 하늘에선 별들이 잔치 벌였나
어느 초라한 길목엔 버려진 달빛 고였나
희뿌연 바람이 헤진 옷새로 스며들어 오는데 흠…
별들이 수 놓인 밤하늘 아래 새벽길. 어느 외진 길목에 누군가가 버려놓은 듯한 쓸쓸한 달빛이 바닥에 고여있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바람이 헤진 옷새로 시원하게 스며들어오고, 골목길 어딘가에선 두부 장수가 어둠을 몰아가듯 종소리를 울리며 새벽을 깨우는 풍경이, <새벽길>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한 편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졌다. 지금까지도 김민기의 노래 중에서 <새벽길>은 <기지촌>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그렇게 좋아하다 보니 <새벽길> 노래 가사처럼 어느 순간 김민기라는 사람이 내가 살아가는 길 위로 달빛처럼 고였다.
70년대에 이런 굉장한 음악가가 있었다니 하고 수도 없이 감탄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감탄하고, 음악가 김민기라는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를 좇아보면서, ‘음악가’ 말고, ‘인간’ 김민기에게 또 한 번 감탄했다. 이런 말도 안 되게 멋진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알고 보니, 또 말도 안 되게 훌륭한 어른이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좋아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그처럼 좋아하고, 경외하고, 흠모하고 존경할 수 있다니’ 하며 놀라면서 존경했다.
하지만 감탄하는 만큼, 번번이 한탄도 했다. 김민기라는 사람을 보면서 감탄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돌아보며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주를 생각하면 나라는 존재가 먼지처럼 느껴지듯, ‘김민기’라는 높은 봉우리를 올려다볼 때도 그런 감정이다. 흉내조차 어려운 아름다움을 마주하고 서 있거나, 근처도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은 훌륭한 ‘인격’을 보고 있으면, 나라는 인간이 보잘것없는 수준을 떠나서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러니 이렇게 나 자신을 한없이 보잘것없게 만드는 김민기라는 사람이 좋긴 너무 좋은데, 어쩐지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늘 함께했다.
최근 SNS에서 유재석과 황정민이 수다를 떠는 짧은 영상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예전에 유재석이 포르쉐 파나메라에서 내리는 황정민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포인트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깔깔거리던 별것 아닌 짤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워 아내와 수다를 떠는 중, 그 짤이 생각나서 아내한테 말했다. “황정민이 파나메라를 탄다네’ 했더니, 아내는 “한 분야 탑(Top)이면 파나메라보다 더한 것도 타겠지” 하고 무심히 말했다. (파나메라보다 더 한 게 있나? 아무튼 쓸데없는 소리고) 그 순간 나는 왜 또 입에서 김민기가 나왔을까. 나는 말했다. “김민기는 여러 분야에서 탑인데, 가난하게 살았잖아”하고 말하니깐 아내는 “그 사람은 재능은 엄청난데, 스스로 돈을 안 쫓고 살아서 그런거고.” “우리나 걱정해. 돈을 쫓을 줄도, 쫓는 방법도 모르면, 재능이라도 있던가. 아휴.” 그러게, 맞는 말이네. 아휴.
서 있는 곳에서 가급적 위를 올려다보지 말자는 주의다. 위를 봐서 뭐 하나. 괜히 위에 있는 사람들 보면서 비교에 빠지면 불행하기만 하지. 뭐 그런 생각에서이다.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건, 아니면 인품이 존경스런 사람을 보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늘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서 지금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행복할 줄 알자고 생각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그래도 내가 올려다보는 하늘에 돈 많이 번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김민기 선생님 같은 사람도 있어서 다행이다. 돈 많이 번 사람이든, 김민기 같은 선생님이든 어느 쪽을 보더라도 나 자신이 작아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김민기 선생님을 보는 쪽이 (비록 앞서 말한 것처럼 초라한 기분은 어쩔 수 없더라도) 마음이 풍족해지고 따듯해지는 기분이 동시에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달 7월 21일 김민기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들은 뒤로, 매일 김민기 선생님 이야기만 하고 있다 보니, 아내는 ‘떠나고 난 후에 그 사람을 많이 말하며 떠올리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그분이 살아있을 때 학전에 한 번도 간 적 없으면서 말이다. 그러니깐 아내의 말은 살아있을 때, 떠나기 전에 소중한 줄 알고, 지금이라도 그렇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서 만나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 떠나고 나니, 허전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동시대에 김민기 같은 선생님과, 김민기 같은 어른과, 김민기 같은 예술가와 짧은 시간이나마 같은 공기 마시고 살았다는 것 자체로 큰 영광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도 김민기를 알았다면 분명 1920년대 파리 말고, 한국의 70년대를 동경했을텐데. 이쯤 되면 나를 두고 김민기를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왜 이렇게 오바하냐고 그럴지 모르겠다. 오바는 무슨.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좋아하는 마음 십분의 일도 표현 못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