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아버지와 색소폰

by 유재필

이런 날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깐 부모님이 아프셔서 병원을 찾는 일이 끼니처럼 돌아오는 일상 말이다.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힘든 게 사실이다. 각오했다면 대비도 뒤따라야 하는데, 마흔이 닥친 지금까지 여러모로 여전히 가난한 인간이라서,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죄송하기만 하다.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어서 면목이 없다. 2022년 여름 어느 날 어머니가 통화 중에 갑자기 수화기 너머로 울먹였다. 아버지가 간암이란다. 병원에서는 5개월 정도를 이야기했단다. 마산 병원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서울로 가보란다. 그 후로 한 달에 두 번 마산에서 서울 아산 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나날이 이어졌다. 다행히도 아버지 몸에 주사가 잘 맞아 들어서 2024년 지금까지 서울 아산 병원에서 치료받고있다. 그때마다 나도 파주에서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병원에선 보호자 신분으로 동행을 한 명만 허락해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치료 동선을 따라다니고, 그 시간에 나는 주로 로비에서 아버지를 기다린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은 식사하거나, 또는 로비에서 아버지가 진료를 대기할 때, 그리고 서울역 대합실에서 마산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릴 때 정도인데, 항상 그렇듯 아버지와는 할 말이 없다. 아버지와 무슨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까. 어색한 침묵을 벗겨보려 하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대화 주제를 찾아보려고 머릿속은 분주하다. 그 무렵 나는 책방이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어쩐지 조금은 후회를 하는지, 아니면 한번 사는 인생 원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으니 조금도 후회가 없는지 잘 모르겠는 어중간한 마음이어서, 머릿속에는 온통 ‘후회’,’좋아하는 일’ 같은 단어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골몰해 봐도 아버지와 대화할만한 소재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한편으론 아버지 인생에도 그런 후회가 없을까 궁금함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아버지께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뭐냐고. 그런데 어쩐지 암 판정을 받고, 생사의 주변에서 기웃거리는 사람한테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게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닌 아버지를 향한 순수한 관심이지만, 힘들게 병원을 오가는 사람한테 어떻게 들리겠나. 아버지 입장에서는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고’ 아들 새끼가 이따위 질문을 던지나 하는 ‘서운함’과 ‘괘씸함’으로 받아들이면 어떡하나. 의도가 그게 아니고, 분위기와 상황과 타이밍도 아니라면 그 질문은 안 하는 게 맞다. 그래서 나의 그 순수한 호기심은 머릿속에서 잠시 접어두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 때와 같이 진료가 끝나고 마산으로 돌아가는 수서역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의도적으로 흐름의 방향을 몰아갔던 게 아니었는데, 우연히도 마침 아버지와의 대화가 ‘후회’라는 주제 안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표정을 살펴보니 컨디션이 꽤 괜찮으신 것 같아서 자연스레 물어봤다. 아버지는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뭐냐고 말이다.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질문이 조금 당황스러웠는지 한참을 생각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지 내 기준에서 이런저런 상상이 날아들었다. (내 차가 경차라서) 혹시나 아버지도 ‘젊은 시절 좀 더 좋은 차를 타 볼 걸’이라던가, ‘주식에 일찍 눈을 떴으면’ 이라던가 나의 기준에서 상상하던 그 순간 아버지가 마침내 입을 여셨다. 글쎄, 후회라…하시더니

“그래 그게 후회가 되네, 젊을 때 색소폰을 진짜 배워보고 싶었는데 그걸 못 배운 게 후회되네”

색소폰이라니. 두 귀를 의심했다까진 아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겨우 악기라니. 나는 그거 지금이라도 배우시면 되죠,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 같은 말 따위를 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때론 늦었을 때는 진짜 늦어버린 때도 있다. 어찌하였든 아버지의 그 말이 어딘가 든든한 구석이 있었다. 세상의 기준에서 성공은커녕, 보통의 삶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은 책방 일을 하며 답답한 내가 듣기에는 적어도 소화제 정도는 될 것 같은 말이었다. 많은 돈도 아니고, 좋은 차도 아니고, 주식도 아니고, 강남의 아파트도 아니라서 다행이다. ‘겨우 색소폰 정도라서’. 인생 살아보니 겨우 <‘그 정도’가 후회되었다.> 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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