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연애를 통해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내가 ‘취향’을 정말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더 초점을 맞추느라 미처 알지 못했을 뿐. 영화 <소공녀>를 보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주인공 ‘미소’는 직업도, 집도, 돈도 없는 30대 여성이다. 가사 도우미로 생계를 유지하고, 비싼 월세 때문에 살고 있던 방을 빼고 친구들 집을 전전한다.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에서 그녀는 의식주 대신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택하기로 한다. 하루 한 잔의 위스키,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 친구. 친구들은 그 사랑 참 염치없다며 나무라지만 내가 본 미소는 누구보다 반짝반짝해 보였다. 물론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도 있겠지만 내가 초점을 둔 부분은 그녀의 확고한 취향이었다. 사람들의 무례와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걸 지키려는 꼿꼿한 심지. 그녀는 특이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나와 참 많이 달랐다. 나는 맛있는 걸 먹기 위해 한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수만 명이 한데 모인 야구장은 좋아했지만 야외 페스티벌에 가는 건 싫어했다. 나는 노리플라이 음악을 들으며 위로 받고, 영화 <라라랜드>를 보며 오열했고,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좋아했고, 잔잔히 책 읽는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그는 최신곡만 고집했고, <라라랜드>를 이해하지 못했고, 노희경 작가를 알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책 읽는 고요한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이색적인 풍경, 그날의 날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자유 여행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그는 랜드마크 위주로 다니는 패키지 여행을 선호했다.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닌, 그저 취향의 차이일 뿐이었지만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다른 어떤 것들보다 취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누구에게나 마음 속 빈 공간을 메울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걸 돈으로 채우고, 어떤 사람은 일, 어떤 사람은 종교로 채운다. 나는 그 ‘무언가’가 ‘취향’인 것 같다. 포기할 수 없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 팍팍한 일상에서 유일하게 가면을 벗고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나만의 안식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