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에서 사야 할 생필품을 둘러보던 중 어떤 상품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나의 걸음을 세웠던, 그리고 그 순간 사나이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 물건은 바로 ‘니베아 셰이빙폼’이었다. 그리고 셰이빙폼을 보면서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한 번도 셰이빙폼을 써 본 적이 없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인식하자 평범한 셰이빙폼을 신기한 물건이나 되는 듯 한참을 요리조리 바라보고, 만져다 보길 반복했다. 그러자 어쩐지 셰이빙폼이 나를 향해 ‘애송이 자식, 이제까지 나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거야? 후, 사나이가 아니구만’ 하며 조롱하는 듯한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어디 보자. 가격은 오천 원. 천 원짜리 제품으로 가득한 매장에서, 무려 오천 원이라니. 사나이를 상징하는 물건이라서 그런가. 가격도 터프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첫 경험을 접하는 일이 자주 만나는 건 아니기에, 약간의 흥분이 섞인 설레는 기분으로 물건을 집어 들고 바구니에 담았다. 그래, 오늘 저녁 나도 진정한 사나이로 다시 태어나는 거다.
집에 돌아와 처음 사용해 보는 이 터프한 물건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뒷면에 표기된 사용법과 주의 사항도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윗면의 버튼을 눌러 한쪽 손바닥에다가 폼을 얹어 인중과 턱에 골고루 펴 바르다가 거울을 보는 순간 민망해졌다. 그러니까 그동안 셰이빙폼이 나와는 연이 없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나는 인중에 수염이 나지 않는 염소수염, 냉큼 깎지 않고 어디 돌아다니기가 민망하기 짝이 없는, 그러니깐 흔히 내시라고 조롱받기 딱 좋은 수염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턱에도 수염이 얼마 나지 않고, 인중에도 옷에 터진 실밥처럼 몇 가닥 자라있는 풀때기를 제초하기 위해 셰이빙폼까지 바르는 건 사치라면 사치라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수염이 이런 꼴이니 당연히 내 생활에 셰이빙폼이 한 번도 생필품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셰이빙폼 첫 사용의 소회를 풀자면 무척이나 좋은 기분이었다. 뭐라고 할까. 얼굴에 수염이 자라고부터 몇십 년을 전기면도기로 대충 얼굴에 밀어대고 살아온 한 사내가 착륙한 셰이빙폼의 세계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살면서 과연 이런 걸 써볼 날이 있을까 하고, 평생 미지의 세계로 여겼던, 그렇게 머나멀게만 느꼈던 만큼 셰이빙폼이 알려준 미세한 부드러움과 정교한 개운함은 거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산뜻함을 계속 누리기 위해 셰이빙폼 구독료 오천 원 정도는 기꺼이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보다 폼을 바르고, 폼나게 턱을 살짝 치켜들고서, 거울 앞에서 폼을 부리는 그 행위란, 설명하긴 어렵지만 영화 <신세계>에서 이중구(박성웅 배우)가 ‘뭐 갈 때 가더라도 담배 한 대 정도는 괜찮잖아?’하는 멋과 허세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늘 쪼들리고 팍팍한 호주머니 사정이지만, 나도 매일 하는 면도에다가 ‘이 정도 멋과 허세는 괜찮잖아?’하고 말하고 싶은, 그런 느낌.
며칠 전 SNS에 돌아다니는 이국종 외과 의사가 한 말인 듯한 짤을 봤다. 남의 인생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고, 내 인생이 아무리 우울해도, 구내식당 점심 반찬이 잘 나온 것과 같은 사소한 일에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이 중요하다는 글이었다. 마찬가지로 내 손목에 롤렉스를 감고 다니는 허세와 멋 부릴 날은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셰이빙폼 정도의 사소한 허세와 멋 부리는 이것이 행복인지 모르겠으나 단순한 재미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최근에 일상에서 느낀 분명하고 소소한 활력이다. 그리고 고작 이런 염소수염이지만 거품 묻힌 얼굴을 면도날로 쓱쓱 밀어내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나도 영화 속 터프가이 배우가 된 것 같은 상상(착각)에 빠진다. 그러면서 중얼거린다.
‘갈 땐 가더라도 이 정도는 괜찮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