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죽는 연기를 가장 실감나게 잘하는 배우는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by 유재필

예전에 적은 어느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막연하게 “뮤지션 중에 누가 최고라고 생각하나?” 는 둥, “영화감독 중에 누가 최고라고 생각하나?” 는 둥 이런 식의 질문을 받으면 선뜻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의미도 없다. 그런데 유독 그런 질문들 앞에서는 이상하게 빠질 필요도 없을 고민에 매번 빠지게 된다. 그런데 최근 스스로 일어난 조그만 변화를 관찰해 보면 오직 영화에 한해서 만큼은 그런 질문을 받아도 이전과는 다르게 곧잘 대답이 흘러나왔다.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다. 첫 번째, “그동안 봐온 영화 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영화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나는 주저 없이 “저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레퀴엠>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를 물어보면 전도연을 말할 테고,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말하라면 왕가위 감독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보고 또 보고 몇 번을 봐도 또 볼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를 물어보면 <올드보이>와 <봄날은 간다>를 말할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질문에 답한 것들은 내가 살아오면서 본 영화보다 살아가면서 볼 영화들이 수두룩하니 언제든지 바뀔지도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절대로 변치 않을 것 같은 단 하나가 있는데, 만약 “이 세상에 죽는 연기를 가장 실감 나게 잘하는 배우는 누구라고 생각하나요?”하고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다. 배우 황정민을 말할 것이고, 또 그것만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두 번 이상 봤던 영화는 지금 떠올려봐도 몇 편 기억나지 않는다. 웬만한 감동과 재미가 아니라면 한 번 봤던 영화를 또 보는 일은 드물다. 우선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또 본다는 것은 줄거리 이외에 재차 감상하고 싶은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 엊그제 두 번째 보게 된 <부당 거래>가 그런 경우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배우가 간혹 소름 끼칠 정도의 훌륭한 연기를 보여줄 때가 있다.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황정민이 총을 맞고 바닥에 주저앉아 펼치는 연기에서 그러함을 느꼈다. 다시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다. ‘음, 아마 총을 맞고 죽으면 저렇겠지’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배우가 TV 예능 프로에 출연해 영화 속 액션씬 중 리얼한 연기 이면에 숨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줄 때가 있다. 하지만 리얼이라는 것도 어느 선까지 한계가 있는 법. 그동안 살면서 싸대기를 맞아 본다거나, 뒤통수를 맞아 본 경험 정도는 누구나 한 번쯤 갖고 있을 테지만 총을 맞는다는 것은 일반 사람에게 여간해서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배우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분명 배우들도 그런 고민을 할 것 같다. 총알이 살을 뚫고 지나갈 때의 고통은 어떤 느낌일까? 하고 상상해 볼 것이다. 하지만 실감 나는 연기를 위해서 실제로 사전에 한 번 총을 맞아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주변에 총을 맞고 죽은 사람을 수소문해서 찾아가 총 맞고 죽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호흡은 어떻게 조여오던가요?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 그 찰나의 순간은 어떤 느낌이고, 그 순간 어떤 생각이 스치나요? 하고 물어볼 수가 없다. 이미 죽고 떠난 사람과의 대화가 가능할 리 없다. 물론 전쟁에 참전했다거나, 그 이외에 어떤 이유로 자신의 삶이 날아다니는 총알들 사이로 휘말려 죽을 뻔했던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총을 맞고 죽을 뻔한 사람 역시 총을 맞고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의 체험은 알 수 없다.
그러하여 죽음을 연기하는 것이야말로 오로지 상상력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의 진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죽음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죽는 연기 자체가 어느 하나 쉬워 보이는 게 없다. 살아있는 그 누구도 온전한 죽음을 경험해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만약 연기에 목숨을 건 독한 연기자라면 교살당하는 씬을 앞두고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힘껏 감싸 누른 채 참아볼 때까지 참아볼지도 모른다. 그래도 도저히 해볼 수 없고, 도저히 상상조차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칼로 온몸을 수십 차례 난자당한다거나, 탄환이 심장이나 머리를 가르는 순간의 표정과 고통의 일렁임, 그런 것들은 살아있는 자가 경험을 하고 재현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자, 당신이 배우라고 생각하고 한번 상상해보자. 빠앙. 방금 총을 맞았다. 이제 몇 초 뒤쯤 눈을 감아야지 자연스러울까. 눈동자에서 죽음이 밀려오는 그림자는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서서 맞았다면 과연 몇 걸음 정도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는 게 그럴듯할까. 점점 불안정해지는 호흡은 어떻게 몰아쉬어야 하나.

영화 <부당 거래>의 마지막 장면에서 황정민이 목에 총을 맞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간헐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장면은 이전까지 여느 배우들이 보여줬던 죽음의 연기와는 사뭇 다른 한 차원 웃도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화 <신세계> 엘리베이터 씬에서 칼 맞는 연기를 보며, 그의 연기에 다시 한 번 엄지손가락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의 연기에는 총 맞고 몇 초 비틀거리다 자빠져 눈 감으면 전부가 아니라는 듯, 죽음의 순간이 놀랍도록 섬세히 빚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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