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준비되지 않은 채로 팀장님이 된 나의 친구들에게

by 서해인

사나운 왕국에서의 양자택일
오늘은 얼마 전에 팀장님이 된 당신에게 메일을 씁니다. 친구가 선생님이 되고, 부모님이 되는 걸 바라보면서 느끼는 이상한 기분이 있는데요. 그건 친구가 팀장님이 되는 걸 보고 있을 때의 기묘함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매일 각자의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을 주고받던 가까운 친구나, 저와 비슷한 연령으로 추정되는 랜선 친구가 승진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 내색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아니 벌써 우리 나이가 팀장님이 될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다니!’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신설된 팀의 개척자거나, 조직의 규모가 작아서 팀장이 당신인데 팀원도 당신인 그런 1인 팀에 속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 기약 없이 함께 해야 할 팀원이 생겨버린 당신을 떠올리며 이 메일을 씁니다. 사실 저는 팀장으로 지냈던 시기를 저의 커리어에서 오랫동안 소외시켜 왔어요. 그리 성공적인 기억이 아닐뿐더러 그 시간으로부터 하나도 배울 점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의미 부여의 장인이 부여할 의미라고는 없는 경험을 맞닥뜨리게 되면 그건 또 그것만으로 얼마나 당혹스러운 일인지 알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수년 전에 저는 재직 중이던 회사의 조직 개편 덕에 갑자기 팀을 이끄는 자리에 가게 되었어요. 팀장이 되어보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저는 부담을 느끼며 생각할 시간을 조금 달라고 했는데, 동시에 마음 한 켠에는 잘해볼 수 있겠다는 기분도 들었던 것 같아요. 해오던 일의 성과를 인정받아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간다는 건 버겁고도 기쁜 일입니다. 아무튼 당신에게도 저처럼 기회가 왔고, 그대로 흘려보낼지 붙잡을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에서 후자를 택한 것이겠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비슷한 기로에 선 적이 있었던 사람들을 만나서 조언을 구했습니다. 나를 위하는 전형적인 답변들은 내가 바란대로 하나의 깔때기로 모이는 대신 두 갈래로 서로 나뉘었습니다. 해 봐 일단 하고 나서 감당해, 하지 마 쎄한 데는 다 이유가 있어. 그중에서 “저 할게요. 팀장!”을 외친 결과, 저와 비슷한 갈림길에 선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메일을 써야겠다는 마음의 빚을 크게 남겼습니다.

당신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어느 하나라도 배울만한 리더나 멘토를 만났는지 모르겠어요. 만났다면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겠죠. 이제껏 성에 차는 리더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더라도 그게 당신이 지금부터 팀장의 자리를 대충 연명해 나갈 만한 구실이 되어주지는 않을 겁니다. 과거의 리더들과는 조금 다른 리더가 되고 싶은 그 마음을 잘 가꾸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최악의 리더가 되지 않기 위해서,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지 않더라도 계속 가야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리더가 되고 싶었습니다.

답은 항상 여러 개 있다
지난주에는 팀원이었던 그곳에서 팀장이 되었던 첫날을 기억합니다. 출근하면서 하기로 예정했던 일들을 전혀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온갖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은 듯한 기분이 강하게 들었거든요. 실제로 팀장이 되고 보니 사내에서는 크게 다섯 가지의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했습니다.

A.팀원들과 나
B.팀원과 나
C.팀장들과 나
D.다른 팀 팀장과 나
E.대표님과 나

팀원으로 회사에 다닐 때에 비해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상황이 대거 늘어났습니다. 각각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서로 다른 품이 들었고요. 우리 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진행 상황을 파악하는 것(A)이나, 팀원이 하는 일에 상세하게 피드백을 주는 것(B)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리더급에서 결정된 사안(C)을 팀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전달해야 하는데, 저부터 설득되지 않는 경우에는 팀장들과의 논의를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그 미팅이 끝나고 다른 팀 팀장님께서 제게 다가오더니, 앞으로 특히 건강 챙기면서 일하라고 인사를 건네 오는 거예요. 사내에서 가장 연차가 낮은 리더를 바라보는 알 수 없는 시선을 느끼면서 또 일 얘기(D)를 했습니다. 이미 팀장인 사람들이 제게 텃세를 부렸던 건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번에 동료애 같은 걸 느끼기는 어려웠어요. 물론 그때의 저에게 다른 팀장들은 그다지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리더의 에너지는 일단 팀원들을 향해야 합니다. 그들이 어른다운 어른이라는 것을 믿어주는 것이죠. 진짜 어른의 대우를 받은 팀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합리적으로 일합니다. 관리의 다른 이름은 감시인데, 우리 그동안 그런 거 진짜 너무 싫어했었잖아요. 팀원은 이제 당신에게 프로젝트의 일정을 조정 해달라거나, 전사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 말을 걸어올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다시 ‘팀원들을 알아서 잘 설득하라’는 요구를 어디선가 받게 될 겁니다. 회사의 목표와 팀원의 목표가 다를 때 그것을 중재하고 최선의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일은 중요합니다. 나 몰라라 하지 않고요. 하지만 당신도 곧 알게 될 거예요. 그들을 어떻게 중재할 수 있겠어요? 머리가 큰 어른 사람들이 합의점을 찾아가도록 돕는 역할은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저는 매일 새우등 터지는 기분이 들어서 당분간 새우볶음밥도 먹지 않았어요.

요즘 팀원이 하는 일에 피드백을 주기 시작했나요? 아마 정확한 피드백을 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언제나 상사에게 원하는 만큼 피드백을 받지 못한 걸 아쉬워했던 저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팀장이 되자마자 알게 되고 말았답니다. 모든 피드백은 ‘팀원’이 아니라 ‘팀원이 한 일’을 향하는 것이고, 용납할 수 있을 만한 실수와 반드시 개선 되어야 할 문제를 구별해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 두 가지를 구별하려면 시간을 들이면서 그 팀원을 지켜봐야 할 테고요. 꼭 전달해야 할 메시지가 있다는 판단이 들면, 적절한 타이밍과 언어를 선별해서, 권위적인 기운을 빼고 전달해야 합니다. 물론, 당신이 이제 막 리더가 되었다면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고압적으로 굴지는 않을 거라 예상합니다. 그것만 빼고 다른 모든 것에는 의도치 않게 서툴지도 모르겠어요. 특히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있어서요. 어느 리더쉽에 관한 글의 서론은 이렇게 시작하더군요. “팀원에겐 팀장의 말투가 최고의 복지다.” 저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가 일하던 때에는 넷플릭스발 조직문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불었습니다. 넷플릭스의 조직문화에 대해 다룬 도서 『규칙없음』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메이어 지음, 이경남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20)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어요. 그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최고인사담당자가 리더급에게 “휴가 후일담을 많이 전해라” 하고 종종 말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넷플릭스 직원들은 무제한으로 휴가를 갈 수 있는 거 아시죠? 다름 아닌 그게 그들의 규칙이고요. 그런데 팀마다 휴가를 소진하는 비율이 다르다는 게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대요. 그도 그럴 것이, 최소 며칠은 꼭 휴가를 다녀와야 한다고 누구도 강제하지 않는 구조니까요. 넷플릭스의 마케팅 매니저 도나는 자신이 휴가를 잘 못 가고 있다고 인터뷰했어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도나의 팀장님이 휴가를 잘 가지 않기 때문이래요. 리더가 먼저 휴가를 잘 쓸수록, 그리고 그 휴가가 얼마나 자신에게 보탬이 되었는지 크게 떠드는 팀장이 있는 팀일수록, 휴가를 통해 환기하고 다시 일할 힘을 얻는 팀원들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일 중심으로만 모든 라이프 스타일이 배열된 일 중독자, 즉 도나의 팀장님 같은 사람도 있죠. 도나의 팀장님은 최소한으로 휴가를 가는 걸 주체적으로 선택했을지 몰라도 그게 팀원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이쯤 되면 정말 어렵죠. 팀장이라는 자리는 나의 계획, 나의 업무 스타일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자리이기도 한 거예요. 당신의 회사가 당장 제2의 넷플릭스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리더로서 당신이 보일 수 있는 작고 사소한 모범이 있을 겁니다.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진실
때로는 팀원과 헤어져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미국의 저명한 패션잡지사에서 일하는 세 여성이 주인공인 드라마 <볼드 타입>(2017)에는 처음으로 자신의 팀원을 해고해야만 하는 캣이라는 젊은 팀장을 다룬 에피소드가 있어요. 캣의 팀원인 나탈리는 자꾸만 실수를 저지릅니다. 엄청나게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회사 공식 계정에 거듭 이상하게 해석될 수 있는 해시태그를 달아서 게시물을 발행하는 거예요. 소셜 미디어를 담당하는 팀의 특성상, 어떤 팀장도 24시간 진두지휘를 할 수는 없습니다. 실수를 발견하고 해당 게시물을 신속하게 삭제하더라도 어떤 고객 때로는 회사의 주주가 그사이에 캡쳐본을 떠 놓으며 책임을 추궁하기도 하고요.

팀장인 캣에게도 상사가 있습니다. 나탈리가 저지르는 일에 대해 상사에게 질책당하는 장면에서 캣은 이렇게 말을 얼버무려요. “응원도 해보고, 이끌어도 주고, 엄하게도 해봤는데… 그리고 좋은 상사가 되고 싶어요.” 저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만인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좋은 영향을 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하니까요. 한 사람의 앞길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되는 건 좀 두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캣의 상사는 누군가를 보내주는 게 서로에게 최선일 때도 있다고 대답합니다. 단 한 사람에게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보다는, 여전히 당신과 함께하고 있는 팀원들의 일이 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떠나보내더라도 난 자리를 보며 다른 팀원들이 어떤 기분을 느낄지도 헤아릴 필요가 있어요. 저는 무엇보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누군가의 팀원으로서 배운 건 그게 거의 전부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조직을 만들어 가는 것도 리더가 된 당신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팀원이 불안해하고 있다면, 불안한 거예요. 당신이 그 사람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든 없든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제게는 일을 그럭저럭 잘했다고 느껴지는 시기가 있지만 리더를 그럭저럭 잘했다고 자부했던 시기는 없었다는 거예요. 저는 잘하지 못했습니다. 까다로운 이해관계 속에서 주어진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는 동안 책임과 권위의 무게를 느꼈습니다. 연봉 인상의 대가가 이렇게까지 버거운 일인가 싶은 순간을 예상보다 빨리 맞이했던 것 같기도 해요. 출발선 뒤에서는 어떤 경기가 펼쳐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선수는 자신이 때로는 기권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달려보기 전에는 알지 못해요. 하지만, 저는 당신이 부디 그럴듯한 팀장님으로 조금 더 오래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성세대와는 조금 다른 어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건투를 빕니다.

흑역사의 쓸모를 떠올리는
해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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