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다니고,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대학 졸업하고 취업이 안되면 뭔가 큰일이 날 것처럼 주변에선 말했다.
친구들 중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에 들어가겠다고 졸업도 7번 연기하기도 한 친구도 있고, 뭔가 이상한 수법을 써서 가산점에서 점수를 더 따는 방법을 연구하는 친구도 있고, 매일 취업 서류를 정신없이 제출만 하는 녀석들도 있다.
오히려 그런 면에서 나는 주변 친구들보다는 조금은 자유롭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마침 졸업 전 학기에는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었기에, 취업이 혹시 안 되더라도 당장 먹고살 걱정은 없겠다, 하는 그런 생각.
주변도 주변이지만, 나 나름대로 취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정식으로 어디에 속해 있지 않으면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일 것 같은 느낌이 무서웠다. 친구들만큼은 아니지만 틈나는 대로 취업사이를 사람인, 인크루트, 리크루트, 취업뽀개기 등등등등을 보고, 관심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귀하의 능력은 출중하오나…’ 하는 식의 메일들을 숱하게 받으며, ‘우리 부모님이나 나를 좋아하지, 전혀 모르는 나를 누가 좋아하겠어’ 하는 식으로 위안 삼으며 굴하지 않고 이력서를 계속해서 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처음 합격한 회사에 첫 사회생활이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출근한 회사는 매일 저녁 9시에 마무리가 되었고, 매일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술을 마시든 고기를 먹든 아무튼 뭘 먹는, 그런 무의미할 정도로 아무 생각 없는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세계경기에 따라 유독 더욱 좌지우지되는 우리나라이기에, 서브프라임이라는 부동산 경기침체에 따라 급작스러운 경기의 불황이 시작되었다. 은행의 금리는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고, 기업들은 정리해고를 가감없이 진행했다.
그때 나는 어쩌면…
명함에 적혀있는 기업과 나라는 개체에 대해 생각했다. 좋아하는 부장님과 과장님들이 자리를 내놓게 되는 걸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짧게는 15년 길게는 25년 몸담았던 기업에서 ‘이제 필요 없으니 나가도 된다’ 아니, ‘나갔으면 좋겠다’라는 기업의 태도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 이렇게 나이들면 저렇게 될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된다, 생각했다. 나는 내가 먼저 결정하고 싶었다.
언젠가 될지 모르지만, 현재 소속되어있는 회사를 내가 스스로 정리하겠다. 그렇게 생각으로만 간직하고 있다가 책방이 해방촌으로 이전하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느꼈고 알게 되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이 시간이면 책방에서 어떤 걸 하고 어떤 걸 하고 어떤 걸 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커져만 가던 시점에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명함에 있는 내 이름이 진짜 이름이 아니라는 것.
회사와 나라는 개체를 동일시하지 않는 것.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서도 내 삶을 더욱 내 시간으로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