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대는 누구이고, 소는 누구인가?​

by 유재필

이 글을 쓰고 있는 장소는 망원동의 어느 아늑한 카페다. 처음 와보는 이 카페에서 나는 아이스 라테를 시키고 몇 시간째 앉아 있는 중이다. 그사이 이상하게도 배가 아파 화장실을 여러 차례 들락거렸는데, 지금은 ‘화장실을 여덟 번이나 갔다 온 다음이다.’ 하는 사실은 쓰고자 하는 글과는 상관없는 여담이다. 그리고 아홉 번째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는, ‘저 인간은 거슬리게 왜 저렇게 왔다 갔다 하냐’ 는 보이지 않는 시선이 따끔거려, 괜히 핸드폰을 얼굴에 갖다 대고 이번엔 (어딘가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으러 가는 척) ‘여보세요’ 하고 연기하듯 소곤대며 화장실로 향했는데, 이것 역시 여담이다. 그렇다. 이 글은 본문과 상관없이, 괜히 어느 얌전한 카페의 화장실에다 내 뒷구멍의 지린내만 남겼다는 쓸데없는 소리, 그러니깐 똥 같은 글을 시작 중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 정말 정말 죄송하게도, 이제 진짜 진짜 마지막 여담이지만, 내가 여기 와서 배 아픈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카페를 떠도는 피아노 연주곡들 하며 조금의 소음도 비집고 들어갈 빈틈을 허용치 않는 조용한 분위기에 압도된 탓인지, 공기 중으로 흘려보내야 할 가스가 바깥의 분위기를 살핀 후 소심하게 뱃속으로 다시 들어와 버려, 그래서 배가 더부룩했다는 이유를 깨닫고 너무나 부끄러운 기분으로 글을 적는 중이다.

이 글의 초고는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다 올렸던 글인데 하필이면 이런 냄새 나는 글을 올려, 나를 구독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림이 뜬다는 사실이 새삼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니깐 정말로 ‘새삼 부담스럽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부담을 느끼는 자라면 애초부터 브런치를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오랜만에 ‘유재필 님의 새로운 글’ 알림이 떠 클릭했더니 이따위로 주절대는 글이라 ‘에잇 뭐야 이 사람은!’ 하는 불쾌한 표정들이 떠오른다. 가까운 사람들도 아니고, 이런 민폐를 끼쳐도 될 일인가. 아니, 가깝지 않다는 표현은 맞는 말인가. 글을 올린 동시에 다른 이의 핸드폰 알림이 뜨기까지 과연 몇 초나 걸릴까. 이런데도 ‘가까운 사람들도 아니고’라는 표현은 맞는 말인가. 물리적으로 멀리 있으면서, (핸드폰이라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가위 모양으로 만든 검지와 엄지 사이에 턱이 꽂힌, 꽤나 멋진 모습으로 고민에 빠져 있다.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이런 똥글을 시작했더라도 쓰고 싶은 게 꼭 있는데, 여기 포근한 카페에서 너무도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성원을 당신은 아는가. 꽤 유명한 작가인 것 같아서 많이들 알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제서야 알았다. 그동안 이런 대작가를 모르고 있었던 이유를 ‘이름이 너무 평범하잖아, 나 중학교 때 박성원이라는 애만 다섯 명이나 있었던 것 같은데’ 라고 주절거리자니, 김영하도, 최민석도, 김연수도 너무 흔한 이름이지 않은가. 그래서 자고로 대작가가 되기 위해선 이름이 평범해야 한다는 법칙이 미신처럼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도 이참에 김지원이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아무튼. 박성원의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를 읽었다. 첫 번째 단편 <긴급 피난>, 그리고 이어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보았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 너무 좋다는 둥, 지렸다는 둥, ‘따봉’이라는 둥 이런 지루한 표현들. 똥글을 쓰는 주제에 식상한 말까지 할 순 없다. 그저 끝까지 읽어주신 고마운 분들께 박성원의 <긴급 피난> 중 내가 뽑은 엑기스° 문장을 남겨 놓는 것으로 똥글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육식을 하는 사자에게 부처의 도를 가르쳐 살육을 그만두게 한다면 결국 초식동물을 살리려고 사자를 굶겨 죽이는 게 아닌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누가 죽어도 죽는 건 죽는 게 아닌가. 그것은 누구를 살리고자 다른 누군가를 죽인다는, 결국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명분 논리에 불과한 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대는 누구이고, 소는 누구인가? 초식 동물은 누구이고, 육식동물은 누구인가? 박성원, <긴급 피난>, 「우리는 달려간다」 문학과 지성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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