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취미와 특기를 답해야 하던 때가 있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그 사람에 대한 공식 데이터로 인정하던 시절, 난 취미는 대강 쓸 게 있었지만, 늘 특기에는 점을 찍었다.
잘할 줄 아는 것이 있다는 것은 무척 근사하고 멋지며 존경할 만한 일이다. 그런 만큼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기질이 중요할 것이다. 호기심이 많고, 그걸 배우기 위해 진입하는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자신이 못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고, 그럼에도 반복해서 성취해 갈 줄 알아야 한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해내는 사람들은 이런 과정 전체를 재미로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라면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는 투지 같은 것이 있다면 또 가능하겠다. 어느 쪽이든 그 사람의 기질과 관련이 있다.
부지런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할 일, 학생이라면 공부가 되겠고 직장인이라면 생업을 위한 일이겠는데, 이를 모두 마친 다음, 그리고도 생활을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 없을 리 없다. 거기까지 모두 완료하고 나서도 남는 시간, 피곤이 몰려오는 바로 그 순간에도 못하는 과정을 반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버티는 인내심과 체력이 필요하다. 정말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재능이라는 치트키도 있다. 한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대체로 뭐든 시작하면 남들보다 쉽게 잘 해내는 사람이 있다. 둘 다 재능이라고 부른다. 재능이 있는 이들에겐 뭔가를 잘하는 일이 비교적 쉽다. 부러운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기질과 부지런함, 재능 같은 것들이 적당하게 구성되어 있으면 그 사람은 뭐라도 잘하는 사람이 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나는 뭐가 문제인가. 분석의 시간이 왔다.
호기심은 많다. 그러나 진입은 잘 하지 않는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에는 게으르고 귀찮아하는 편이다. 진입을 위해 조사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고민하다 ‘아, 몰라’ 침대에 널브러진다.
누군가 혹은 상황에 의해 떠밀려 진입을 하게 된 경우에도 그다음 단계가 취약한데, 내게는 자신이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성숙한 구석이 있다. 처음부터 잘할 줄 알아야 재미를 붙인다는 건데 그건 마치 책의 앞 장과 마지막 장만 읽고 책을 다 읽은 걸로 인정해 달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천재일 수 없는 사람이 스스로 천재여야 가능한 조건을 주장하는 것이다.
언젠가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드는 1일 클래스에 간 적이 있다. 전문가가 쉽게 하는 아이싱이 너무 되지 않아서 벌컥 짜증이 났다. 그 이후 스패출러를 다시 잡아본 적이 없다. 학생 때 테니스를 잠시 배운 적이 있다. 늘 그렇듯 잘 안 되더라. 한 달간 아무런 진전이 없으니 재미를 느낄 수 없었고 그냥 그만뒀다. 그 순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내일의 나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며, 스윙 연습을 하는 만화 속 주인공의 투지는 나와 거리가 멀다. 반면 포기는 매우 빠르다. 결국, 나는 뭔가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조건을 너무나도 충실하게 이행하는 셈이다.
게다가 별다른 재능도 없는 것 같다. 처음부터 잘 해내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나에게는 저주와 같이 처음부터 잘 해내는 것이 거의 없다. 이케아 가구를 조립할 때도 ‘이건 안 되는 게 맞는 거야, 예외적으로 설명서가 잘못됐네, 이케아는 글로벌 기업이라면서 왜 이런 엉터리 설명서를 만들었을까?’ 하는 난관이 꼭 찾아온다. 하지만 설명서는 틀린 것이 없었고 모든 것은 나의 탓이었다. 어찌어찌 하면 힘들지만 되기는 한다. 그럴 거 왜 매번 한 번에 되지 않는 걸까.
그러다 보니 그보다 높은 수준의 DIY는 제대로 해낸 적이 없다. 조명을 달 때도 이상하게 우리 집 환경은 설명서의 내용과 전혀 다른 것 같고, 그도 아니면 내가 감전된다. 결국 뭐라도 배우기 위해서는 독사 같은 코치가 내 상태가 어떻든 나를 계속 압박하며 수년간 같은 훈련을 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나마 어린 시절 뭣도 모르고 배웠던 수영과 피아노가 그냥 할 줄 아는 것의 유일한 리스트로 남아있다. 이런 나에게 처음부터 훈련 없이 잘할 수 있는 재능 같은 게 정말 전혀 없을까?
수십 년간 살며 발견한 것들이 정말 전혀 없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더라. 나에게도 소박하기 짝이 없는 재능 몇 숟가락 같은 것이 들어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오래전 태백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상가 건물에 들어와 있는 분식집에서 이것저것 시켰는데 그중 떡볶이에 카레 가루를 뿌리는 모양이구나. 그러면서 계산할 때, 무심코 “아주머니 여기는 떡볶이에 카레를 넣으시나봐요?” 했더니 아주머니가 너무 놀라며 자기가 지금 여기서 장사를 십몇 년간 하고 있는데 그걸 알아차리고 말해준 사람이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 아주머니의 놀람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카레 냄새가 특이하고 강하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그 외에도 남들은 맡지 못하는 카레 향을 맡아낸 적이 몇 번 더 있었던 거 같기도 하다. 카레 냄새 감별 능력. 정말 나에게 있는 하찮은 초능력인건가. 나중에 이 말을 들은 W는 다 쓸데없고, 카레 전문점에서 설거지가 제대로 됐는지 검수하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능력이라고 나의 초능력을 준엄하게 평가해 주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쓸 곳은 없다.
비슷하게 계란 비린내도 잘 맡는다. 계란찜, 계란말이, 그리고 계란이 많이 들어간 디저트류에서도 셰프가 맡지 못하는 계란 비린내를 맡는 적이 종종 있다. 홍대에 제법 잘 나가던 디저트 가게에서도 계란 비린내가 심해서 나 혼자 깨작거렸던 적도 있었다. 여전히 별달리 쓸모없는 재능이긴 하나 모두 후각에 관련된 거니 그걸 개발하면 조향사까지는 아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맥주의 아로마나 이취(술을 잘못 만들어서 이상한 맛이나 향이나는 걸 off flavor라고 하는데 이를 보통 이취라고 번역한다)를 정교하게 감별한다든지 하는 쓸모 있는 능력으로 전향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나의 능력이 천재적인 것도 아닌지라 훈련을 해야 하는데, 위에서 이미 말했듯 게으르고 귀찮아하며 투지 같은 것도 없는 나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냥 여기까지인 것이다.
최근 D가 인정한 나의 또 다른 능력에는 이메일 쓰기가 있다. 상대에게 뭔가를 얻어내야 할 때, 예의도 차리며, 요점을 말하는데 제법 거절하지 못하게 비즈니스 이메일을 잘 쓴다는 말이었다. 이건 매우 쓸모 있는 능력이라 기분이 좋았지만, 20년의 직장 생활을 하면 이건 저절로 얻어지는 기본 아이템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하찮은 초능력에서는 제외하기로 했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몇 분을 말하겠다 생각하면 프레젠테이션을 끝내고 시계를 봤을 때, 애초에 생각했던 시간에 근접하는 능력도 있다. 그러니까 시계를 보지 않고, 원하는 시간만큼 말하기라는 소소한 능력이라는 건데, 아직 검증된 능력이라고 말하기에는 데이터가 부족하다. 검증된다면 제법 쓸모 있을 또 하나의 하찮은 초능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능력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잘 자는 능력이 있다. 이건 행운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R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회사를 그렇게 오래 다녔는데, 퇴사하게 된다면 내가 뭘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말할 게 아무것도 없다. 그냥 이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나 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고서 만들고 사업이 되도록 행정 처리를 하는 건데 그게 밖에서 무슨 소용이냐, 결국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말을 들은 R은 이 직장에 다니면서 그거라도 할 수 있으면 그게 할 줄 아는 거지 뭘 더 바라느냐고 했다. 딱히 그런 답변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의외의 말에 살짝 위로가 되면서 또 맞는 말로 들렸다. 내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이라고, 온종일 회사에 묶여있는데 그 회사에서 해야 하는 것만이라도 잘 해내면 기본은 아닌가.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잘하는 게 많은 삶은 풍요롭고, 일상에서 성취를 느낄 일도 많을 것이다. 하나하나가 레이어를 만들며 삶을 화려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멋지고 부러운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특기에 점을 찍는 삶은 어떨까. 해야만 하는 일이 많고 바쁘며, 누구나 그렇듯 멍때리기 좋아하는 만큼만 게으르고, 매일의 결심 같은 것들은 잘하지 못하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온 에너지를 쓰게 되는 삶은 어떨까. 화려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좋아하는 것들과 수십 년간 쌓인 심심한 경험으로 뭐라도, 그저 나를 닮은 레이어를 몇 겹은 만들어냈을 것이다. 누구든 시간과 함께 좋아하는 것이 생기다 사라진다. 그러면서 뭐라도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다만 작고 평범해서 자랑할 거리가 없다는 게 문제인데, 요즘은 거기까지여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 대부분은 지금 그 자리에 있기 위한 무언가를 이미 잘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이메일을 제법 쓴다는 평을 듣는 것처럼,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겐 하찮은 초능력이 있다. 카레와 계란 비린내 감별 능력보다 쓸모 있거나 아니면 그보다도 소박한 초능력일 수 있겠지만, 그건 분명 당신이 가지고 있는 비슷비슷한 레이어들 중 한 장에 재미있고 말도 안 되는 패턴을 그려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나만 해도 오래된 태백 여행에서 아직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추억을 만들어 준 하찮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