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한강을 걷는 시간

by 김로로

서울살이가 힘이 들 때마다 한강 다리를 건넜다. 처음으로 퇴사를 하던 날,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보고 싶던 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날에도 어김없이 한강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널 때면 늘 힘을 빼고 걸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는 길이라면 힘주어 걸었을까. 가장 좋아하는 마포대교는 이른 낮이나 늦은 밤에도 구경할 사람이 하나 없었고, 무엇보다 엿들을 대화가 없어서 좋았다. 아무리 혼자 중얼거려도 누구도 듣지 못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뺨을 때리는 유일한 소리만 들릴 뿐, 오롯이 마음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주저앉고 싶었는데 때마침 걷게 된 곳이 한강 다리라 참 다행이었다.

저마다 나름의 시간과 사연을 가지고 이 다리를 건넌다. 생명의 다리. 가장 높은 투신자살을 기록한 한강의 다리에 드문드문 적혀있는 희망을 찾는 문장들, 그것이 내게 시사하는 바를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지나간 일들에 대한 회상은 강에 담긴 절망의 심연과 다리의 안팎을 자주 넘나들었다.

한 남자가 저만치 앞에서 차도를 등지고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아프고 서럽고 주저앉고 싶을 때 마주하는 풍경을, 나도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잘 정돈된 뒷모습에는 그의 눈물이 배지 않은 곳이 없었다. 행복은 그나 나에게 있지 않고 그와 나 사이에 얽힌 한강 다리 아래로 가만히 내려가 있었다. 어떤 사이가 그를 한강 다리로 데리고 왔을까.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그래서 더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때로는 가족들이 가장 먼 사람일 때도 있었다. 서로를 이미 너무 많이 안다고 생각하면 결국엔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나는 가족과 친구, 가까운 누구에게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가 침묵하며 한강 다리의 가장자리를 걸었다. 나도 그를 따라 조용히 가장자리로 걸었다. 일몰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소리 없이 찾아왔다. 다리 위에 멈춰서 가만히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 해가 아쉬웠고 서럽기도 했다.

우리는 매 순간 방향을 정하고, 선택의 순간을 선택한다. 펼쳐진 모든 가능성 중에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걷는다. 나는 그저 선한 방향으로 걷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방향 없는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강을 걷기까지 하루, 떠나온 고향에서 다시 한강을 걷기까지는 12개월, 마포대교의 끝에서 끝까지 마음을 다잡고 걷기까지는 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나는 무척이나 두려웠다. 마음에서 그 두려움이 사라지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사람마다 회복의 시간도 모두 다른 것처럼, 그 시간이 10년 하고도 하루의 시간보다 길었지만 나는 결코 조바심 내지 않았다. 행복에 기대지 않았고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렇게 걷는 것, 먹는 것, 식물을 돌보는 것,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사소한 움직임만으로도 더는 행복에 기댈 필요가 없었다.

이제 더는 그때의 나와, 한강을 찾은 그가 훼손되지 않은 채 한강 다리를 걷는다면 좋겠다. 나는 이제 조금은 헛헛해진 마음으로 다리를 걷는다. 우리가 마포대교를 걷지 않게 될 수 있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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