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됐든 적당한 시간 동안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나면 개운하고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 영화관에 가면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한동안 영화관에 가지 못했었는데 요즘은 자주 간다. 관심이 가는 영화도 몇 편 개봉을 했고, 집에 있으면 이것저것 (말 그대로 이것저것, 여러가지 일들을) 하느라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를 하기가 힘들어 시간을 내서 영화관에 자리를 잡고 두 시간, 세 시간 영화를 본다. 영화만 보는 것이다.
어제도 영화관에 갔는데, 어제는 영화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영화 말고 다른 것에 신경이 쓰였다. 내 뒤쪽에 앉은 어떤 사람이 콜라인지 사이다인지 뭘 마시고 자꾸 트림을 하고 웅웅웅 알 수 없는 기묘한 소리를 웅얼됐다. 잊을만하면 웅얼대고, 잊을만하면 트림을 했다. 고개를 돌려 잠깐 뒤를 보긴 봤는데 그를 굳이 찾고 싶지는 않았다. 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아낸다고 해서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 대신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 영화관에 개구리 한 마리가 들어와버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여름 밤 어두운 개울 주변 풀숲에 숨어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크게 크게 개굴개굴하는 개구리 말이다. 그가 트림을 하고 웅얼댈 때마다 영화관 어둠 속에 정말로 커다란 개구리 한 마리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측은하기도 하고 마음이 그럭저럭 정리가 돼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와 비슷하게 가끔씩 영화관에서 갑자기 핸드폰을 켜는 사람도 있다. 그걸 보면 환한 핸드폰 불빛과 그 예의 없음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도 집중을 깨고 싶지는 않으니까 영화관에 웬 반딧불이 한 마리가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와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마음이 그럭저럭 정리된다. 영화관에서는 집중해서 영화를 보는 게 중요하니까 개구리든 반딧불이든 아무튼 나름대로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영화를 대충 보는 것보다 집중해서 보면 별것 아닌 이야기에서도 흥미로운 점을 찾을 수 있다. 잠깐 스쳐 가는 단역들의 연기도 자세히 보게 된다. 나는 그런 게 좋은데, 집에서 영화를 보면 그게 잘 안된다. 집에서는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집에 있으면 청소며 설거지며 미뤄두었던 일들이 생각난다. 더군다나 나는 회사나 가게에 출근하는 게 아니고 종일 집에서 일을 하니까 집에 있으면 내가 해야 하는 일들도 항상 있다. 집에는, 일이 있다. 그래도 여유를 갖고 좀 쉬면서 영화라도 한 편 보려고 하면 어김없이 아직 하지 않은 일들이 내게 그것부터 해결하라 요구를 하고 재촉을 해서 나는 결국 중간에 영화를 끄거나, 영화를 그저 켜두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게 된다. 집에서 영화만 보고 있는 건 내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는 어쩌면 집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건지도 모른다. 영화관에서, 영화만 보기 위해서.
집에서 해야 하는 이런저런 일들을 잠시 잊고 불 꺼진, 영화관에서 영화만 보다가 환한 세상으로 나오면 잘 자고 일어난 것처럼 기분이 좋다. 그렇게 비슷하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는 것도 요즘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다. 그래서 이제는 집에서도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연습을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인데, 집중해서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면 오히려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고,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제대로 확인해 보지 못해서 알 수는 없지만 어제 영화관에서 트림을 하고 웅얼거렸던 사람은 어쩌면 정말로 개구리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정말로 내 뒤쪽 자리에 개구리가 앉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싶었던 개구리가 잠시 사람의 모습이 되어 영화관 가장 어두운 자리에 정체를 숨기고 앉아 있었던 것인지도…… 트림을 너무 자주 해서 정체를 잘 숨기지는 못한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