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3호선 대화-오금

by 임소라

집을 나서며 떠오른 노래 한 곡이 대화역까지 오는 내내 귓전에 맴돌았다. 원곡은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만화의 주제가로 다음과 같은 개사를 거쳤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참아
울고 울고
또 울지
참긴 왜 참아

그야말로 참긴 왜 참나 싶은 마음에 있는 힘껏 울면서 왔다. 엉엉까지는 아니지만 계속 흐느꼈는데, 이 프로젝트는 시작과 동시에 망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도 벌써 두 선이나 탔는데 여기서 멈출 순 없잖아!’와 ‘야, 이 미련과 욕심만큼 풍요로운 능력을 갖진 못한 사람아! 당장 여기서 멈추고 없던 일로 해!’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느낄 때 어떤 아저씨가 쌩하니 달려 10번 칸 끝의 쪽문으로, 마치 9와 3/4 플랫폼처럼 10과 5/4 칸으로 사라졌다. 바로 치직치직 소리가 나더니 열차 출발한다며 문이 닫혔다. 이제 막 움직이기 시작한 열차 안에서 일단 연신내까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를 계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 말아야겠다 싶으면 연신내역에서 내려 조용히 집에 가는 것이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사실 난 죽이 더 좋지만) 계속해야겠다 싶으면 오금까지 가는 것이다. 비장한 각오와 함께 도착한 주엽역의 역번호가 310번이어서 302번도 아니고 왜 310번일까, 앞에 8개 역이 더 생기거나 사라진 걸까 궁금했고 아무도 타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곤 승객이 한 사람도 없는 10번 칸에서 브라운 코성형 광고를 보다가 매사를 너무 함부로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젝트도 그랬다. (서문에는 뭔가 이런저런 이유가 있는 것처럼 써놨지만 사실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청소를 하다가 문득 ‘그래, 지하철을 타볼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자리에서 구글에 Shanghai metro, Bangkok metro 따위를 검색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맨 처음에 생각난 곳이 상해와 방콕이었다) 북한산, 소요산처럼 정발산이 있는 건가 싶을 때 정발산역에 도착했고 10번 칸으로 두 명이 탑승했다. 사람 구경이라도 하고 싶은데 두 사람 모두 10-1번 출입문 옆에 앉아서 10-4번 출입문 옆에 앉은 내가 (우는 것도) 보이지 않을 거리였다.

닫히는 출입문 위로 붙은 노선도를 훑었다. 구글 검색 결과 각국의 지하철 노선도와 운행 정보를 모아둔 사이트가 한두 곳이 아니었는데 처음에 잘못 눌러서 스페인어를 영어로, 영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읽을수록 이상한 이중번역의 혼돈에 빠져 고개를 갸웃거리던 때가 떠올랐다. 알록달록하지만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긴 노선도를 보니 왠지 지하철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느 도시든 다 가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샘솟았다. 용기는 온데간데없이, 세상 속 편한 생각만 하고 앉아있었다는 자책과 함께 마두역에 도착했다. 푸릇푸릇한 연두가 아니라 누런 연두색 정사각 타일로 꽉 찬 플랫폼을 앞에 두고, 막상 타보니 내 마음 같지 않았던 2호선과 1호선을 떠올렸다. 지하철 타고 가만히 앉아있는 얘기를 누가 궁금해할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도 타지 않은 마두역에서 출발한 열차의 객실 내 스크린으로 서울시가 다람쥐버스의 출퇴근 시간 운행을 늘린다는 뉴스가 나왔다. 다람쥐버스라니, 타요버스가 거대한 타요였던 것처럼 다람쥐버스도 거대한 다람쥐라면 유아 및 아동들이 다람쥐버스가 보일 때마다 “다람쥐야! 다람쥐야!” 외치며 손을 흔들텐데 재생되는 영상을 마저 보니 외양은 그저 일반 버스였다.

4번 출구의 새빛안과의원 광고와 함께 도착한 백석역에서 열차의 왼쪽 출입문이 열렸다. 두 사람이 탑승한 후 닫히는 10-4번 문을 보며 왜 오늘 모든 게 다 망한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3호선은 옛 연인들이 연애 당시 살던 곳 또는 살던 곳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 가야했던 곳이자 연애가 끝난 지금도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큰 곳들로 처음부터 끝까지, 촘촘하게 구성된 선이었다. 대화라는 기점이 대과거라면 오금이라는 종점은 과거였다. 과거 이전의 사실로부터 이제 막 과거로 분류된 기억까지, 3호선이 통째로 원치 않는 시간 여행 패키지였던 것이다. 복통과 달리 이런 종류의 심통은 이유를 알면 제법 줄어들어, 걔들이 거기 살고 싶어서 산 것도 아니고 어떻게 살다 보니 동네가 거기였던 건데 뭘 어쩌겠냐고 생각할 때 열차가 지상을 달리기 시작했다. 고층빌딩과 비닐하우스가 공존하는 땅을 지나 전국 24시 콜화물 트럭이 달리는 다리 아래를 통과했다. 도착한 대곡역은 엉덩이쯤 높이 위로 전부 유리창이었고, 역사 앞 도로 맞은편으로 무단횡단 금지 현수막이 휘날렸다. 다시 지하로 들어간 열차의 객실 내 스크린으로 수지와 이동욱의 열애설 뉴스가 나왔다.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나타낸 두 사람의 키 차이 정보와 함께 도착한 화정역 플랫폼의 벽은 옅은 갈색 타일로 빼곡했다. 객실 내 스크린으로 시사회에 다녀온 지인이 절대 보지 말라고 당부했던 영화의 광고와 여수 여행 홍보 영상을 보는 사이 다시 지상이 되었다.

산을 끼고 반지하처럼 낮은 선로로 달리다가 도착한 원당역은 대곡역처럼 반은 타일, 반은 유리로 되어있었다. 열차가 다시 출발할 때 10-1번 문 옆에 앉은 사람이 외쳤다.
“아저씨, 경비실에다 맡겨주세요. 경비실, 아니. 거기 말고, 경비실!”
전달이 잘 안 되었는지 같은 말을 몇 번 더 외쳤다. 무덤이 듬성듬성 있는 언덕을 지나 다시 지하로 들어갔다. 이쯤 되면 기차 아닌가 싶을 정도로 꽤 오래, 정말 오래도록 암흑 속을 달리다 도착한 원흥역은 카드 찍는 곳이 플랫폼에서 바로 보였다. 계단도 없이 바로 카드 찍는 곳이었다.

모자와 신발, 상의와 하의 모두 검은색으로 맞춰 입은 아저씨가 장바구니라고 부르기엔 너무 크고, 캐리어라고 부르기엔 너무 허술하게 생긴,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10-4번 출입문으로 탑승했다. 객실에 자리가 많았는데 앉지 않고 10-4번 출입문을 향해 선 아저씨는 상의 안주머니에서 꺼낸 돈을 세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오만원권을 동시에 쥐고 있는 사람을 은행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뭘 팔면 저렇게 많은 돈을, 카드도 아니고 현금을 뭉치로 가슴팍에 꽂고 다닐 수 있는 걸까, 더 이상 빠져나올 목이 남지 않을 만큼 최대치로 길어졌을 때 아저씨가 계산을 마쳤는지 신속하게 현찰을 안주머니에 넣고 객실 통로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승객 여러분.”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울려서 나오는 목소리였다. 몸 밖에서 울리는 게 아니라 아저씨 몸 안에서 이미 울리면서 나왔다. 열명 남짓한 10번 칸 사람들이 동시에 아저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천 원, 오천 원입니다.”
아저씨는 돗자리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 않았는데 미래의 나는 그 돗자리로 못할 일이 없었다. 김치는 어머니가 매번 주시는데 왠지 나중에 김장이란 걸 하게 된다면 너무 유용할 것 같고, 창고 대신 방구석에 쌓여있는 재고 위에 덮어두면 먼지 털기도 좋을 것 같고, 이불과 달리 미끌미끌해서 바닥에 가끔 깔아주면 반려견 초배가 무척 좋아할 것 같다는 등등의 말도 안 되는 합리화로 현금을 항상 지참하고 다니지 않는 자신을 나무랄 때 삼송역에 도착한 열차의 문이 열렸다. 10번 칸에서 돗자리 세 개를 판매한 아저씨는 열차가 잠시 멈췄을 때 9번 칸으로 이동했다. 구매자에게 돗자리를 건네던 아저씨의 젠틀한 손동작을 재차 떠올릴 때 열차가 다시 지상으로 달렸다. 큼직큼직한 건물들이 서로 어색하다는 듯이 뚝뚝 떨어져 있는 간헐적 대형 건물 지대를 지나 도착한 지축역은 건물의 외벽 없이 플랫폼만 있는 형태였다. 열린 문으로 타거나 내리는 사람 없이 바람만 드나들었다.

얼마간 지상으로 달리던 열차는 아파트 단지 사이의 대형 튜브 같은 곳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지하로 달렸다. 도착한 구파발역의 역 번호는 어느새 320번이었고, 대화역에서 출발한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탑승했다. 더 이상 앉을 자리는 없었고 서 있는 사람도 많아졌다. 주식 방송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이어폰 없이 재생시킨 채, 통화하듯이 귀에 대고 있는 아저씨가 내 옆에 섰다.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한 손으로는 기둥을 잡았다. 열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잘 안 들리는지 음량을 두 단계 정도 높인 후, 귀에 좀 더 가까이 댔다가, 못들은 부분이 있는지 자꾸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듣고, 또 돌아가서 다시 들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정보에 노출된 채, 이 열차에서 내릴지 오금까지 갈지 지금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호선과 2호선을 탔을 때보다 더 지루하고, 이참에 접으면 지하철을 다 타보겠다며 돌아다닐 시간도 절약하고, 책 만들어 판다고 인쇄소와 택배 업체에 쏟아부을 돈도 굳는 등 이 열차에서 내려야 하는 이유는 많은데 계속 탈 이유는 시작했으니까 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 뭔가 이렇다 할, 멋들어진 이유를 찾을 때 연신내역 출구 안내 방송이 나왔다. 도착한 연신내역의 역 번호는 321번이었고 ‘뭐라고? 내 생일이 3월 21일인데?’라는 얼토당토않은 전개 속에 자리를 지켰다. 객실 내 승객이 더 많아지자 주식 영상 아저씨가 내 옆 기둥에서 내 앞자리로 한 발 이동했다. 한 손은 여전히 휴대폰을 들고, 기둥을 잡았던 한 손으로 손잡이가 아니라 손잡이가 달린 기둥을 잡았다. 버스에서도 몇 번, 손잡이가 아니라 손잡이가 달린 기둥을 잡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왜 그러는 걸까, 나는 키가 이렇게 커서 여기까지 닿는다고 자랑하는 건 아닐 테고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궁금했다. ‘손잡이를 잡아도 흔들리는 것 때문에 고정된 기둥을 잡는 건가, 하지만 옆에도 있는데 구태여…’ 생각할 때 도착한 불광역에서 10-4번 출입문으로 두 사람이 탔다. 두 사람 모두 캉골 에코백을 들고 있었고, 아저씨는 기둥을 잡았던 손에 휴대폰을 옮기고 휴대폰을 잡았던 손으로 다시 기둥을 잡았다. 한국 효 요양병원 재활센터가 3번 출구에 있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녹번역에 도착했다. 내리는 승객 없이 두 사람이 탔고, 주식 방송 아저씨는 고개를 숙여 안경이 코 끝으로 내려가게 한 후 눈을 치켜뜨고서 영상에 집중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청년이 일어나서 방금 탑승한 두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두 사람이 서로 앉으라고 재차 양보하는 사이 열차가 출발했고, 청년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마저 일어났다. 두 사람 중 마스크를 낀 사람이 외쳤다.
“미안해서 어떡해!”
청년과 청년 옆에 앉아있던 사람 모두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대답이 없었다.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남의 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래서 김 집사는 어떻게 했대?”
“어쩌긴 뭘 어째, 놀라 가지고 뭐.”
“우리 시누 아들도 언제였더라, 몇 년 전에 그랬잖아.”
“큰 시누?”
“응, 큰 시누. 작은 시누넨 딸만 둘이고.”
열차가 홍제역에 도착했고, 아저씨는 영상을 끄고 게임을 시작했다. 두 손을 다 써야 하는지 더 이상 기둥을 잡지도 않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패딩을 입고 탑승한 사람이 열차가 출발하자 더운지 패딩을 벗어 손잡이 위 선반에 올렸다. 열차가 달리는 소리에 파묻혀 두 사람의 대화가 띄엄띄엄 들렸다.
“기도해야지, 기도.”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을 주셔, 내가 들었어.”

10-3번 출입문 앞에 선 사람의 통화 소리가 두 사람의 간증을 비집고 들어왔다.
“제가 지금 교육받으러 가는 중이라, 네. 그것 좀 수기로 써주시면 안 돼요? 아니, 지금 방법이 없잖아요. 교육 끝나고 바로 들어가긴 하는데, 아뇨. 그러니까 그걸, 아니.”
잠시 말이 없다가 도저히 답답해서 안 되겠다는 듯이 “아니, 그러니까!”라고 외치며 무악재역에 내렸다. “제가 어제 분명히!”, “그때도 몇번이나!” 같은 말들로 플랫폼이 쩌렁쩌렁 울렸다. 1번 출구로 나가면 새란병원 종합건강검진센터가 있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도착한 독립문역에서는 아무도 타거나 내리지 않았다. 객실 내 스크린으로 “사진 찍어드릴까요?”를 영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알려주는 영상이 나왔다. 언제 탔는지 ㅗㅂ지 못한 아저씨가 게임하는 아저씨 옆에 서 있었다. 한 입 베어 문 자유시간을 들고 있었다. 경복궁역에서 조금 내리고 아무도 타지 않았다. 두 사람의 화제는 꿈으로 바뀌어 있었다.
“근데 그날 꿈에 세상에,”
“나오셨어?”
“누워서 꼼짝도 못 하던 사람이 하얀 옷을 입고 서 있는 거야.”
“세상에…”
“나는 그게 천사가, 천사였다고 봐. 시어머니 몸을 대신해서 천사가 꿈에 그렇게,”
“응답을 주셨네.”
또 다른 응답에 대한 경험담이 이어지는 사이 도착한 안국역에서 내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내리고 자유시간 아저씨가 앉았다. 아저씨가 자유시간을 다 먹고 비닐을 아무렇게나 구겨 주머니에 넣을 때 도착한 종로3가역에서 주식 및 게임 아저씨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타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곧이어 자유시간 아저씨가 통화를 시작했다.
“그건 미리 말씀을 드렸습니다. 네, 저번에.”

아까 다 먹은 게 아니라 여전히 씹고 있는 중이어서 초콜릿 냄새가 퍼졌다. 을지로3가역에 도착했을 땐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삑삑거리는 경고음과 함께 “열차 출발합니다, 출입문 닫습니다.” 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내리려고 출입문 앞에 서 있던 승객들을 뚫고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먼저 탔다. 일행으로 보이는 너덧명의 사람들이 “어머니, 여기 앉으세요.”라며 서로 자리를 양보했다. 4호선 환승 안내 방송 후 도착한 충무로역에서 칼하트 배낭을 멘 사람이 “난 오빠가 된다는 건 줄 알았어.”라고 말하며 탑승했다. 화가 난 건 아니고 섭섭해 보였다. 한 손엔 마이구미를 들고 있었다.

동대입구역에 도착하기 전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안내 방송이 나왔고, 도착한 플랫폼에는 대나무를 자른 것처럼 무척 얇고 긴 타일이 한데 모여 기둥을 이루고 있었다. 10-4번 출입문으로 할아버지 두 분이 탑승했고 객실에 자리가 많아 10-1번 출입문 옆으로 옮겼다. 누가 금방 내렸는지 의자가 따뜻했다. 언제 내리셨는지 남의 아들과 꿈에 대해 이야기하던 두 사람 자리엔 눈을 꼭 감은 채 묵주를 돌리고 있는 사람이 앉아있었고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자유시간 아저씨가 내린 약수역에서 빨간 바탕에 하얀 도트 무늬 스카프를 두른 사람이 탔다. “언니 도착했어? 나 좀 늦을 것 같아, 거기 호남선 앞에 레스토랑 있는데 거기 있어!”라고 말하며 두리번거리다가 내 옆에 앉았다.
“아니, 우리 표가 11시는 맞는데 조금 늦으면 다음 차 타면 돼. 나 저번에 그렇게 탔다니까, 어. 태워주지, 그럼!”
11시 되려면 10분도 안 남았는데 다음 차 안 태워준다고 하면 어쩌나, 남의 걱정을 하며 금호역을 지났고 열차는 이내 지상으로 올라왔다. 해가 쨍했다. 볕이 반가워서 눈을 감고 있을 때 도착한 옥수역은 한강이 가까웠고, 천장이 유리인데 지저분해서 하늘은 잘 안 보였다. 다시 출발한 열차가 한강을 건넜다. 도로가 바로 붙어있어서 2호선이나 2호선처럼 시야에 한강이 꽉 차진 않았지만, 계속 지하에 있다가 잠깐 지상으로 올라온 것만 해도 속이 시원했다. 묵주를 돌리던 사람이 눈을 떴고, 손톱만 보던 옆 사람도 고개를 들고 통화를 마저 했다.
“아냐, 거기 일단 있어 봐. 늦은 김에 여기서 밥 먹고 출발해도 되잖아. 우리끼리 놀러가는 건데 한두 시간 늦는다고 뭐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한두 시간이면 큰일 아닌가 생각할 때 페이스라인 3번 출구 광고와 함께 열차가 다시 지하로 들어갔다. 압구정역 플랫폼에는 하늘을 나는 새 형상이 타일로 장식되어 있었고 갑자기 “날라리!”라고 외치는 가수 이적의 목소리가 떠올라 입을 꾹 다물었다. 사람들이 꽤 많이 타서 서 있는 승객이 많아졌다. 강남구 신사동과 관악구 신사동, 은평구 신사동 이렇게 3개의 신사동은 新沙, 新士, 新寺 로 ‘사’자가 모두 다르다는 걸 굳이 찾아볼 때 열차가 신사역에 멈췄다. 세무 기장 대리 계약서를 든 사람과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 앞에 섰다. 계약서를 든 사람이 물었다.
“바꿀까?”
남자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몇 년 했지?”
“5년? 아닌가, 6년 넘었나.”
그때 옆 사람이 다시 통화를 시작했다.
“어, 언니. 그래, 그럼 시켜놓고 있어. 나? 아무거나, 아무거나. 아니, 그거 말고.”
어느 식당의 메뉴와 어느 세무사 사무소 직원의 불친절함 사이를 오가며 잠원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의 천장이 둥글었고,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맞은편 10-2번 출입문 앞에 맨살이 다 보이도록 찢어진 바지를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청년의 가슴팍에 대문자로 적힌 .BRKLIN IS HERE’를 한 단어씩 속으로 따라 읽을 때, 메뉴를 아직도 정하지 못한 옆 사람이 일어섰다. 곧이어 도착한 고속터미널역에서 객실 내 대부분의 승객이 내렸다. 내리면서 누가 이때다 싶어 방귀를 뀌었는지 잠시 냄새가 났고, 내린 사람들은 일제히 플랫폼 벽의 사선이 가리키는 터미널 방향으로 걸었다.

원당역에서 원흥역 사이만큼은 아니지만 꽤 오래 달려 도착한 교대역에서 “이리 와요, 이리!”, “아냐, 저쪽도 있어!”라는 말과 함께 일행으로 보이는 다섯 사람이 탔다. 경로석 맞은편의 휠체어 석에 서 있다가 열차가 출발하자 내 옆쪽과 그 맞은편에 두 사람과 세 사람으로 나눠 앉았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이 그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보고 말했다.
“앉는 게 최고야.”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대답했다.
“뭐라고?”
내 옆에 앉은 사람이 그 옆에 앉은 사람과 작게 웃더니 다시 말했다.
“예은 엄마 예쁘다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그 말도 안 들렸는지 일어나서 “응?”하고 물었고 이번 역은 남부터미널, 예술의전당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내 옆에 앉은 사람 둘이 손뼉을 치며 웃었고 일어섰던 사람도 웃으며 앉았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안내 방송과 함께 양재역에 도착했고 옆 사람들의 대화에선 예일, 숭의, 숭문 등의 단어만 간간이 귀에 들어왔다. 다섯 명 모두 ‘생각하는 수학 교실’이라 적힌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애들은 다 어디 가고 부모들만 학원에 다녀왔나, 팔로알토 목소리 정말 좋아했는데, 프라이머리는 요즘도 상자를 쓰고 다니나 생각하며 매봉역을 지났다. 옅은 베이지 타일과 짙은 적갈색 타일이 한 줄식 반복되는 플랫폼이 끝나고 사방이 다시 까매졌을 때 내 옆에 앉은 사람이 일어났다.
“다음 설명회 때는 좀 일찍 만나서,”
“네, 그래요. 거기 카페가면 되니까.”
“그땐 제 차례니까 먹고 싶은 거 다들 생각해두시고.”
“투표해, 투표. 카톡으로.”
다섯 사람이 와하하 웃을 때 도곡역에 도착한 열차의 출입문이 열렸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내리자 맞은편에 앉았던, 아까 잠깐 일어났다 앉았던 사람이 내 옆으로 옮겼다.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이 대치역에서 내렸고, 내 옆에 앉았던 두 사람은 학여울역에서 내렸다. 항녀울, 항녀울하고 이미 끝난 안내 방송을 따라 할 때 객실 내 스크린으로 화재 시 행동요령 영상이 나왔다. 역과 역 사이는 평균 1km, 2분이 소요된다는 정보와 함께 사고가 날 경우 열차에서 함부로 내리지 말고 객실 안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안내가 이어졌다. 코와 입을 막고 자세를 낮춘 채로 역무원의 안내에 따라 열차와 역사를 빠져나가는 배우들의 질서정연한 연기를 보며 실제 상황에서 사람들이 저렇게 한 줄로 차근차근 걸을 수 있을까, 연기가 저렇게 아래에만 살짝 깔릴까, 걸어 나가다 돌아서서 찡긋 웃어보이며 역무원에게 감사를 표할 시간이 있을까, 나는 열차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 있을까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새 역 번호는 346을 지나 있었다. 아무도 타거나 내리지 않는 대청역에서 열차 간격 조정을 위해 잠시 멈춘다는 안내 방송도 없이 한참을 출입문이 열린 채로 서 있었다. 10번 칸에는 나까지 11명이 타고 있었고, 다시 출발한 열차의 스크린에는 심폐소생술 영상이 이어졌다. 정사각 회백색 타일로 빼곡한 일원역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통화를 하며 탑승했다. 출입문이 닫힌 후 내 맞은편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시며 외쳤다.
“일원역이여? 원래 내리는 역이 일원역이여? 아까 일원역에 내렸다가 다시 타가지고 지금 일원역 지나는 중이라 전화한겨!”
할아버지 목소리도, 통화 상대방의 소리도 무척 큰데 열차가 움직이는 소리는 더 커서 귀가 위위 울렸다. 통화가 석연치 않았는지 할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다시 앉았고, 수서역까지는 꽤 멀었다. 교회 의자 같은 나무 벤치가 띄엄띄엄 놓인 수서역 플랫폼에서 재차 통화를 시작하는 할아버지를 내려두고 열차는 다시 출발했다. 내가 앉은 의자와 나란히 놓인 경로석에 앉은 사람과 10-1번 문을 통해 눈이 마주쳤다. 코트가 무척 빨개서 아까 연신내에서 타는 걸 보고 놀랐었는데 아직도 안 내리고 계셔서 한 번 더 놀랐다. 저분도 탈 때 날 봤다면 지금까지 타고 있는 게 썩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고개를 숙였다. 이제 내리시는지 일어나시더니 10-1번 출입문 앞에서 코를 신나게 푸셨다. 피처럼 새빨간 코트를 입은 사람이 내린 가락시장역은 타일이 아니라 회백색 벽이었다. 주황색으로 3호선 표시도 없이, 검은 폰트로 ‘가락시장’이라 쓰여있고 8호선으로 환승하는 곳만 자주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10번 칸에 혼자 남은 채로 도착한 경찰병원역 역시 3호선 표시 없이 회백색 벽에 검은 폰트만 있었고, 문이 닫히자마자 CM송이 나왔다. 오금역에서 내려 화장실로 향할 때, 출입문이 열린 채로 열차 안에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안내가 계속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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