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Room

그럼 뭐 어때

by 원재희

얼마 전 은영이(전주에 그 은영이)에게 군산에서 우리가 한 일이 뭐가 있었냐고 물었다.

“도착하기 전에 이성당에 전화해서 단팥빵이랑 야채빵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고는 내리자마자 택시로 이성당에 갔잖아.”
“근데 심각하게 줄이 길어서 피자빵 하나 사 먹고는 서울에 맛있는 단팥빵 많다고 정신 승리하고 초원사진관에 갔었지?”
“맞아. 그리고는 적산가옥 갔다가 밥 먹으러 갔었지.”
“제육볶음!!!”
“제육볶음을 먹고 은파호수 공원에서 자전거 탔잖아. 그리고 호떡 먹었어야 했는데 문 닫아서 못 먹었고.”

그렇다. 또 먹고 말았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 그건 바로 우리.

이쯤 되면… 먹는 이야기만 있는 이 책을 읽다가 체기가 오른 분도 있을 거 같다. 그럴 땐 잠시 덮어두고 소화를 시켜보시길 바란다. 이야기가 끝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으니 말이다. 세상에는 맛있는 것이 너무 많고, 아직 그 맛있는 것을 다 먹어 보지 못했으니, 맛보지 못한 음식을 먹을 생각만 해도 즐겁다. 못 먹고 산 적도 없는데(오히려 더 먹었으면 먹었겠지) 먹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이렇게 넘치는 나를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래서 ‘제육볶음’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음식이라고 이렇게 먹는 걸 찬송하나 싶을 거다. 맞다. 군산에서 먹은 제육볶음은 먹어 보지 못한 음식도 아니거니와 엄청나게 특별한 음식도 아닐뿐더러 군산에 오면 꼭 먹어야 할 리스트에 오르는 음식도 아니다. 그런데 왜 제육볶음을 먹었을까.

먹는 걸 좋아하지만 호불호가 강한 편도, 식당 청결을 엄청 따지는 편도 아니다. 웬만하면 맛있고 웬만큼 더러워도 그러려니 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벌레가 들어가면 벌레를 걷어내고 먹고, 머리카락이 나오면 조금 짜증은 나지만 따져 묻진 않는다. 이미 먹었는걸(나갈 때 이야기는 한다). 그러니 어딜 가더라도 인터넷에 올라온 ‘OO에서 꼭! 먹어야 할 리스트’를 따르는 쪽은 아니다. 어떤 걸 먹어도 좋아하고 잘 먹는다. 데려간 사람을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맛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어지간하면 맛있다.

큰 불호가 없는 나에게 오히려 주저하게 되는 건 한참이나 기다려서 먹어야 하는 음식이다. 줄이 길게 늘어선 식당은 아무리 맛집이라 소개해도 쉽사리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맛이 보장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싶은 것은 아니다(아리송한 음식을 먹을 바에는 프렌차이즈 햄버거 세트를 먹는 편이 훨씬 좋다).

택시를 타고 이성당으로 향하는 길, 기사님은 ‘단팥빵’ 사러 가냐고 물었다. 얼마큼 인기가 많은지 몰랐던 터라 아주 해맑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그게 뭐라고 줄을 그렇게 서서 먹는지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으레 같은 지역에 사는 주민은 인기식당에 냉철하다고 생각하는 찰나, 점심은 ‘물짬뽕’을 먹으러 가냐면서 처음 들어보는 중식당 이름들을 읊으셨다. 물짬뽕이 뭔지도 몰랐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기사님의 발언에 물짬뽕을 찾아봤다. 방금 기사님이 말씀하신 식당이 줄지어 나왔다. 누구는 여기가 낫고, 어떤 이는 저기가 낫다는 글이 끝이 없었다. 점심으로 정해놓은 건 딱히 없어서 정말 이걸 먹어야 하나 고민했다. 새삼스럽지만 은영이와 난 중식도 좋아한다. 혹시 몰라 기사님이 추천하신 물짬뽕 식당을 기억해두고 택시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진 이성당의 줄을 마주하니 왠지 이곳의 줄이 빵을 쟁취함과 동시에 물짬뽕이 맛있다는 식당으로 옮겨질 거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그때부터 맛은 있되 줄은 길지 않은, 그렇다고 너무 실험적이지 않은 음식을 찾아봤다.

“여기 어때?”

은영이는 눈웃음을 씨익 짓더니 입꼬리 한쪽이 올라간 표정으로 위풍당당하게 사진을 보여왔다. 사진 속 음식점 외관을 보니, 아직 먹지도 않았고, 무슨 음식을 파는지도 몰랐지만 벌써 맛있겠다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물어봤다. 어떤 음식을 파는 곳이냐고.

“제육볶음.”

‘군산에선 단연 제육볶음을 먹어야지.’라면서 모두가 물짬뽕을 먹으러 갈 때 우리는 제육볶음을 먹으러 안동집에 갔다(군산에서 제육볶음도 웃기지만, 군산집도 아니고 안동집이라니). 초원사진관에서 안동집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라고 나오지만 단팥빵도 먹지 못한(피자빵은 먹었지만) 우리는 더 빠르게, 눈썹을 휘날리는 속도감으로 음식점에 도착했다. 큰 거리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보이는 안동집. 조금 전 사진으로 봤던 외관과 똑같은 모습을 마주하니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역시 우리에게 실패란 없다는 다부진 표정과 서로를 믿는다는 신뢰의 눈빛을 쐈다.

“이미 맛있는데?”

문밖에선 몇 명이 서성이며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고 있었다.

이 집이 맛있는 음식을 파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들어가기 전부터 알 수 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인데, 맛있었냐고 묻는 주인장에게 맛없었다고 말할 한국인은 몇 명 되지 않을 테다. 그러니 계산을 마치고 문을 등진 상태의 표정이나 발언들을 확인하곤 한다. 일부러 확인하는 것은 아니고 본능에 끌려 하는 행동이다. 안동집의 문을 등지고 이를 쑤시는 그들의 표정에서 만족함이 느껴진다. 더불어 이쑤시개를 쓰지 않는 다른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드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양껏 아니 그 이상을 먹을 정도로 젓가락을 쉬지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 이렇게 맛을 보지 않아도, 음식점에 들어가지 않아도 맛의 유무를 유추할 수 있다. 여기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외부의 모습도 맛에 한 몫을 더한다. 오랜 시간 같은 모습으로 한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던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거다. 난 그 오랜 시간을 믿는다. 이런 과정들을 종합해 이 집은 무조건 맛있다는 결론을 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만석이었다. 자리가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우리에게 후다닥 한 자리를 안내해 주셨고, 우리는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제육볶음 2인분을 빠르게 주문했다. 음식을 마주하기 직전에는 늘 상기돼 있는 편이긴 하지만 맛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경우, 심장박동도 빨라지고 광대뼈도 빠르게 상승해 하강할 줄 모른다. 거기에 행동까지 빨라진다. 테이블 위에 유일하게 올려진 물컵을 연신 들었다 놨다 한다. 나이가 지긋해 지면 맛있는 음식을 접하는 일을 최소화해야 할 거 같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심장운동을 격하게 하면 밥상을 앞에 두고 큰일을 겪을까 싶어서. 겪더라도 밥상의 밥은 뜨고 싶다.

우리의 제육볶음이 테이블 위에 차려진 순간,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젓가락질부터 했다. 대체로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카메라를 들 수가 없다. 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보다 당장 맛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뇌에 먼저 도달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장에 빨갛게 볶아진 제육을 입속으로 넣어야만 다른 정신들이 돌아올 듯했다.

두툼한 제육을 입에 넣고 야물야물 야무지게 씹어 넘겼다. 만족스러웠다.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강하지 않았다. 물론, 돼지고기의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록 붉고 거친 양념이 냄새를 모조리 앗아갔다고 생각한다. 그럼 또 뭐 어때. 양념 맛으로 먹는 거지. 돼지고기를 먹고 싶었으면 그냥 구이를 먹었을 거다. 우리는 제육볶음을 먹으러 온 것이니 이 벌거언 양념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제육볶음처럼 양념이 센 음식은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쉬운 음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령, 제육볶음의 경우 양념이 너무 되직하면 굽기 자체가 쉽지 않아 속은 익지 않고 겉은 타서 굽는 내 마음도 타들어가게 한다. 또 너무 묽을 때는 이게 볶음인지 국인지 헷갈린다. 양념을 시스루로 묻힌 돼지고기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안타깝다. 음식 앞에서는 좀처럼 차분해지지 않는 나도 묽은 제육볶음(국) 앞에서는 세상 차분한 사람이 된다. 그래도 간이 맞으면 상관없다. 되직한 양념은 약한 불로 잘 저어가면서 볶다가 마지막에 강한 화력으로 탄 듯 볶아서 먹어주면 그런대로 맛있다. 불향은 고기를 빛나게 해주니까. 묽은 양념은 국과 볶음 그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밥에 국물을 퍼 자작하게 말아(?) 비벼(?) 먹으면 된다. 그런데 간이 맞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게 소용이 없다. 맛의 시작은 신선한 재료에 있겠지만 맛을 결정짓는 데는 간에 있다고 본다. 벌건 양념이 너무 짜도 안되고 벌건 모양을 하고 온갖 센 척은 다하면서 막상 먹으면 세상 싱거울 때도 많으니 말이다. 음식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긴 한 것 같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존경과 감사의 의미로 그저 그릇을 싹 비울 뿐이다.

까다롭지 않은 척을 하더니 되게 까다롭게 먹네 싶겠지만 정말로 음식에 후한 편이다. 내가 맛없다면 미식가들은 아마 씹지도 않을 수준일 거다. 아무튼 안동집의 제육볶음은 맛이 아주 좋았다는 말이었다. 조금 센 듯한 간이었지만 흰 쌀밥과 함께 먹으면 알맞았다. 고춧가루, 고추장, 다진 마늘이 당연히 들어갔을 온갖 양념에 볶인 돼지고기를 다시 향긋한 깻잎 위에 올리고 편 마늘을 살짝 올려 야무지게 싸 먹는다. 이건 과연 돼지고기를 먹은 건지 향채들을 먹은 것인지 구분이 어렵지만, 그래도 맛있는 걸 어떡한담. 온갖 향이 입속에서 넘실거린다. 이 조화로움을 어찌한담.

계산을 하고 문밖으로 나와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은영이를 향해 엄지를 치켜올렸다. ‘역시 군산에서는 제육볶음을 먹어야 한다’는 소리를 낄낄거리며 다시 했다. 들어가기 전에 만났던 아저씨들 무리처럼 두둑한 배를 두드리며 사랑니 어딘가에 두툼한 돼지고기를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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