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 SF 장르의 창시라 일컬어지는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원작(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무수한 팬을 확보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내용을 좀 더 풀어쓴 동명의 소설, 영화 외에 드라마와 연극, 만화와 게임 등 다양한 형태로 발표되었다.1 소설은 국내 번역 출간된 합본호 기준 무려 1,235쪽의 분량으로, 영화는 이 중 1권에 해당하는 초반부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어 원작의 팬들 입장에선 다소 아쉬울 수 있으나 작품의 중요 설정과 인물을 커버하고 있어 초심자들의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하다.
출간 당시 영미권에서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끌었던 원작 소설에 비해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이하 <안내서>)의 흥행 성적은 꽤 초라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당시만 해도 SF 시장이 마이너 중 마이너라 상영관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장르가 가진 한계 외에도 <안내서>는 당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에는 결정적인 핸디캡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시종일관 구사되는 영국식 블랙 유머다. 영화는 분명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일련의 과학적 설명에는 일체 관심이 없어 보인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에게 거창한 목표나 정의감 따위는 없으며 ‘어쩌라는 거지……’ 식의 실소를 부르는 허무한 개그가 가득하다. 하지만 바로 이 무책임함과 병맛스러움이 작품의 세계관이며, <안내서>를 사랑하는 팬들을 사로잡는 핵심 정서라 해도 무방하다.
영화 <안내서>는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똑똑한 생물인 돌고래가 곧 사라질 지구를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돌고래 무리가 인간에게 남기는 마지막 메시지이자 그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배경으로 흐르느 유쾌한 노래의 가사는 “안녕,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이다. 이 행성에서 자연의 질서나 균형을 지키지 않는 인간의 지능은 첫 번째가 아닌 것도 모자라 심지어 돌고래 다음인 세 번째다(혹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가장 똑똑한 존재에 대해 밝히지 않겠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구는 문자 그대로 사라진다.
주인공 아서 덴트의 집은 새로 생길 도로의 동선에 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철거당하는데, 똑같은 이유로 지구 역시 우주 초공간을 가로지르는 은하계 고속도로의 건설을 위해 폭파되는 것이다.
정부에서 집주인인 아서에게 이미 몇 달 전부터 공사를 공지했다고 주장하듯, 지구 철거를 맡은 보곤 사령관 또한 은하계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자치의회의 결과를 지구 시간으로 50년 전에 (관심이 없다면 결코 찾을 수 없는 곳에) 공지했다고 뻔뻔하게 말한다.
그렇게 지나가는 우주선에 히치하이킹을 해서 타게 된 아서와 그의 친구, 안내서의 조사원인 포드는 언제 어떻게 쓸지 모르는 타월 하나 달랑 들고 은하수를 여행하게 된다. 어딘가 허술하고 맹해보이는 아서와 포드 외에 이중인격의 우주 대통령 자포드와 (아서 외의) 유일한 지구인인 천체물리학자 트릴리언이 우주선 ‘순수한 마음 호’를 타고 여러 행성을 돌아다닌다는 게 이후의 주된 내용이다.
이렇듯 시작부터 영화는 환경 문제라든가 인간의 이기심, 행정주의의 불합리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듯하지만 분위기는 그와 반대로 시종일관 경쾌하다. 무엇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 모든 에피소드나 설정들은 지구와 인간 사회의 것들을 패러디하고 있어 무엇 하나 낯설거나 새롭지 않다.2 모든 게 인간 사회에 대한 메타포로 해석 가능하다는 점 외에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큰 특징은 기존의 SF 영화가 견지하던 근엄함과 설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가볍게 무시한다는 점이다. 즉, <안내서> 우주를 배경으로 하되 그 설정들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 따위는 애초에 하지 않는다. 사실상 시공간적 제약 없이 무한한 속도로 이동하는 우주선의 원리가 ‘불가능이 불가능’하다는 불가능 확률 추진이라든가, 모든 대답에 대한 질문을 계산할 수 있는 컴퓨터 ‘심오한 생각’이 우주와 생명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무려 750만 년 걸려 찾아낸 답이 ’42′(밑도 끝도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숫자)라는 식이다.
무책임함의 극치인 듯하지만, 영화에는 더없이 기발한 설정과 매력적인 장면들이 가득하다. 이를테면 지구의 노르웨이 해안을 설계한 경력이 있으며 우주 종말의 위기에 대비해 행성을 제작하는 슬라타바트패스트의 경이로운 작업실, 상대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무기가 있어 극도의 우울증에 빠진 로봇 마빈이 상대 군단을 쏘자 모두 자괴감에 빠져 자살해버리는 광경, 소소하게는 빵을 자르는 동시에 구워주는 레이저(갖고 싶다!!)이나 귀에 꽂으면 똥을 쌈으로써 다른 언어를 번역해주는 물고기 등등. 그 밖에도 예수에 대해 ‘어느 목요일 기분 전환도 할 겸 이제는 사람들끼리 좀 잘해주면 좋지 않겠냐고 햇다가 나무에 못 박힌 남자’라고 표현한다든가. 물리학적으로 우주에서 빛보다 빠를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것이 나쁜 소식이라는 식의 농담 역시 ‘아니면 말고’라는 뻔뻔함과 너스레에서 나온다.
결국 이 작품을 즐기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자세는 첫째, 너무 당황하지 말 것(Don’t Panic), 둘째, 지나치게 진지하게 굴지 말것(Don’t be serious) 정도가 아닐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이 모든 걸 거대한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거다. 언제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구에서 살아가면서 결국 챙겨야 할, 각자에게 타월 같은 의미를 가질 준비물 한 가지를 꼽는다면 그건 역시 ‘유우머’가 아닐까 하고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는 그저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걸 행운이라 생각하시라’는 식의, 어찌 보면 시니컬하지만 독설보다는 냉소에 가까운 영국식 유머의 향연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어느 순간 깨달음이 찾아올 것이다. 어느 현자의 말대로 우리 모두 결국은 우주 속 한 톨의 귓밥일 뿐이며, 그렇기에 우주의 귓밥으로서 행복해야 한다는 것.
오늘날 이 영화가 가진 넘치는 병맛과 B급 정서의 매력이 수많은 추종자를 확보하고 있는 바, 멋지고 똑똑한 주인공이 지구나 인류를 지켜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에 고군분투하는 심각한 영화에 지쳐 해맑게 뇌를 세척하고 싶은 사람에 기꺼이 이 영화를 추천한다.